센스는 준비의 다른 이름이다

by 다몽 박작까


오랜만에 군부대 강의에 다녀왔다. 이번 강의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절반쯤 성공한 느낌이었다. PPT 첫 화면만 있고 아직 마이크도 잡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센스 있고 배려 깊은 중위님 덕분이다. 이 분은 교육 전 연락부터 남달랐다.


"필요한 건 없으신지요?"

"도착 시간은 괜찮으신가요?"


문자 하나하나가 꼼꼼했다. 마치 체크리스트처럼. 그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 분은 일 잘하시는 분이구나.'






이런 예감은 대개 틀리지 않는다. 배려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부대에 도착하니 중위님이 직접 마중을 나와 계셨다. 주차할 장소를 안내해 주시고 무거운 짐도 자연스럽게 들어주신다. 교육장에 들어서니 실내는 이미 쾌적하게 유지되어 있었고 장비는 말끔하게 세팅 완료. 거기에 물과 망고주스까지. 이쯤 되면 배려가 아니라 환대다. '강사님 오늘 여기서 편하게 일하세요.'라는 메시지 같다. 강의 시작 전 소개는 또 얼마나 화려한지.


"국방부에서 인기 강사라 힘들게 모셨습니다."


순간 몸 둘 바를 몰랐다. (아니에요. 뻥이에요. 불러만 주시면 어디든 달려갑니다만)


환경이 준비되면 강의는 저절로 흐른다. 온열질환을 포함한 응급처치, 심폐소생술, 식중독까지. 의뢰해 주신 주제들이 하나같이 내가 좋아하고 자신 있는 것들이었다. 그날 강의는 이상할 정도로 매끄러웠다. 설명이 술술 풀리고 질문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럴 때 강사는 안다.


"이건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환경이 나를 도와주고 있구나."






며칠 뒤 가평에 있는 또 다른 부대를 찾았다. 이번엔 오전 강의였다. 교육 장소는 조금 특이했다. 바로 식당. 150명 가까운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식당뿐이라 식당 한가운데에 빔프로젝터와 이동식 칠판을 설치해 놨다. 아침 시간이라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난다. 묘하게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는 환경. 그때 여군이었던 인사행정관님이 앞으로 나와 한마디 하셨다.


"우리를 위해 멀리 남양주에서 오신 강사님입니다. 오늘 교육은 응급처치, 심폐소생술, 식중독으로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필수 안전교육이니까 조는 사람 없이 전원 집중해서 교육 듣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


온화한 얼굴. 그런데 목소리는 단단했다. 그 말을 들은 군인들은 동시에 외쳤다. "네! 알겠습니다!"


시작이 다르면 강의의 디폴트가 달라진다. 그 한마디가 강의의 공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미 '집중하는 상태'가 기본값이 된 것이다. 덕분에 군인들은 내가 뭘 해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내 말솜씨보다 그분의 한마디가 더 큰 교육 효과였다.


그날은 내가 새로 시도하는 방식도 있었다. 게다가 인사행정관님의 완벽한 주의 집중 멘트까지 더해지니 강의는 거의 날개를 달고 흘러갔다. 모두 초롱초롱한 눈으로 집중하니 2시간 동안 힘들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었다.






강의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강의를 하다 보면 자주 착각한다. '강의는 강사가 만든다.'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느낀다. 강의의 완성도는 절대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는 걸. 조용히 환경을 세팅하는 사람. 미리 장비를 챙기는 사람. 시작 전에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잡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을 때 강의는 훨씬 부드럽게 훨씬 깊이 있게 흘러간다. 센스 있는 한 사람이 백 명의 강의를 편하게 만든다. 오늘은 그걸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