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던 군인이 손을 들었다

by 다몽 박작까


어제는 일산에 있는 군부대에 다녀왔다. 강의 주제는 전날과 같았다. 덕분에 마음이 꽤 여유로웠다. 강사가 편안하게 시작하니 분위기도 덩달아 느슨해졌다. 병사분들 반응도 활기찼다. 역시 강의의 공기는 분위기보다 강사의 마음가짐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 같다. 호응을 받으니 나도 더 신이 났고 강의는 예상보다 경쾌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한쪽이 문제였다. 전멸이었다. 꾸벅꾸벅. 거의 단체로.


'모두를 집중시키는 건 역시 불가능한 일일까?'


아쉬움을 안고 강의를 마쳤다. 1시간 교육이 끝나자 방금 전까지 졸던 병사분들이 조용히 일어나 말했다.


"저희는 조리병사들이라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새벽부터 수십, 수백 명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점심까지 만들었을 그 얼굴들. 지금 시각은 오후 두 시 반인데. 이제 또 저녁 준비를 하러 간다니.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 이건 졸음이 아니라 노동의 결과였구나.'






두 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 병사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수업 내용은 좋았는데요. 중간중간 질문을 하면 더 참여가 잘 될 것 같아요."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질문은 던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받아낼 때까지 가야 비로소 소통이 된다. 주입식으로 말하는 강의보다 서로 오가며 만들어지는 강의. 나는 아직 그 중간 어딘가에 서 있다.


강의를 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요즘은 그 아쉬움이 조금 반갑다. 아직 더 나아질 여지가 있다는 뜻이니까. 모두를 깨우진 못했지만 또 하나의 이유를 이해했고 또 하나의 질문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래서 어제의 강의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며칠 뒤, 파주군부대에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교육을 다녀왔다. 이날 강의는 유난히 만족스러웠다. 아마도 이유는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 때문일 것이다. 강의 시작과 동시에 맨 앞줄에 앉은 한 군인이 졸고 있었다. 고개가 천천히. 아주 성실하게 떨어졌다.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강의를 이어갔다. 이제는 이런 장면에도 조금은 익숙해졌으니까.


강의가 한참 진행된 뒤 깜짝 퀴즈를 냈다. 그 순간 그 군인이 고개를 들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아. 그때의 기분이란. '


놀랍고 반갑고 무엇보다 너무 귀여웠다. 사람이 깨는 데에는 각자 자기만의 타이밍이 있다는 걸 그 순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계속 강의를 하다 보니 나도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힘은 덜 주고 호흡은 더 안정적으로. 강의가 몸에 붙어가는 중이다는 느낌.






강의가 끝난 뒤 실습 모형을 정리하느라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때 교탁 위에 놓인 강의 평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슬쩍 봤는데 대부분 '매우 좋다'에 체크되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괜히 자세가 반듯해졌다. 비고란은 거의 비어 있었지만 2~3명이 "강의가 재미있었다."라고 적어놓았다. 그 몇 글자가 하루를 통째로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강사가 만족스러운 강의를 해야 듣는 사람도 만족할 수 있다. 그건 아주 당연한 말인데 오늘은 그 말이 몸으로 와닿았다. 졸던 사람이 손을 들고 평가지는 조용히 놓여 있고 나는 혼자 모형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꽉 차 있었다. 오늘은 강의도 사람도 그리고 나 자신도, 모두 조금씩 깨어 있던 하루였다. 이런 날이 있어서 또 다음 강의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