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의 추억

by 다몽 박작까

마약중독과 도박중독에 관한 교육을 하는 날에만 등장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있다. 바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강의 내내 집중하느라 인상 쓰던 얼굴들. 혹은 멍하니 앉아 있던 얼굴들이 이때만큼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풀린다. 마치 '지금부터는 잠깐 인간 모드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신호처럼.


종이를 나눠줄 때의 표정 변화도 흥미롭다. 처음엔 '이게 뭐지? 뭐 하는 상황이지?' 하는 당황스러움. 그다음엔 '아. 귀찮다...'는 귀찮음. 그리고 막상 펜을 잡으면 갑자기 진지해지는 눈빛. 사람은 가끔 참 단순하다. 종이 한 장 앞에서 갑자기 성실해진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발사 순간.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순간은 말 그대로 하이라이트다. 이때만큼은 군인이 아니라 초등학생이다. 함박웃음을 짓고 조금이라도 더 멀리 날리려고 온몸을 쓰는 표정. 그 와중에 늘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장난꾸러기들. 종이비행기를 접으랬더니 굳이 종이학을 접는 군인. 종이배를 접는 군인. 미니카를 만들어 굴리는 군인. 순식간에 강의실은 '군부대 종이접기 경연대회'가 된다. 처음엔 조금 황당했지만 나중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것도 다 추억이 되겠지.'


종이 위에 올라온 마음들. 비행기 안에 적힌 내용도 정말 다양하다. 전투적으로 '나는 절대 마약을 하지 않겠습니다.'를 선언문처럼 쓴 군인도 있고. 어느새 캠페인 포스터가 된 문구를 또박또박 적은 군인도 있다. 말보다 그림이 편한지 한컷 만화로 모든 걸 설명한 군인. 마약 중독 4행시를 기막히게 써 내려간 군인. 마약 하면 퇴직금 포기하거나 100km 행군하겠다고 강력하게 의지를 말하는 군인. 아예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해 온 군인도 있다. 그 정성 앞에서는 괜히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물론 모든 비행기가 진지한 건 아니다. 아무 말도 안 쓰고 비행기만 유난히 잘 접은 군인도 있고 다짐 대신 오늘 점심 메뉴를 크게 적은 군인도 있다. 뭐라도 썼으니 안 쓴 군인보다는 낫다. 심지어 자기 핸드폰 번호를 적어 놓은 장난꾸러기도 있다. (연락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나는 이 비행기들을 아무거나 골라 읽는다. 잘 쓴 내용에는 간식 선물도 준다. 그래서 강의실에서는 내 목소리로 누군가의 진심을 읽고 다 같이 감동하고 다 같이 웃는다. 가끔은 읽는 내가 더 부끄러워지는 종이비행기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 하나의 비행기가 있다. 칭찬과 재치가 넘치는 비행기 가운데 유일하게 냉철한 조언이 적힌 종이비행기였다. 아마 간부님이셨을 것이다. 강의의 아쉬운 점을 조목조목 짚어 주신 글이었다. 하필 그걸 많은 군인들 앞에서 내가 직접 내 목소리로 읽게 됐다. 마치 공개 자아성찰 시간 같았다. 내용은 분명 건설적인 피드백이었는데 사람 마음이 또 그렇다. 조금은 상처가 났다. 그래도 끝까지 웃으며 마무리했다. 그게 어른이니까.


집에 오는 길에 그 종이비행기를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이상하게도 칭찬만 있는 글보다 이런 글이 훨씬 오래 남는다. 나는 비판 앞에서 쿨하게 수긍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아직은 마음이 먼저 가라앉는다. 경험치 부족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더 단단해지기로 한다. 노련한 화법. 매력적인 전달력. 듣는 사람을 끝까지 붙잡는 힘을 가진 강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건 상처가 아니라 기회다. '





그날 이후 마약, 도박 중독 강의 자료를 다시 파고들었다. 관련 자료와 통계, 사례를 더 자세히 찾아보고 PPT를 전면 수정했다. 결국 그 종이비행기 덕분에 강의의 밀도는 훨씬 높아졌다. 다음번에 이런 조언을 건네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해야지.


"감사합니다."


종이비행기는 잠깐 날아갔다가 사라지지만 그 안에 담긴 말은 오래 남는다. 그날의 비행기 한 장이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날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