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는 없었지만 집중은 있었다

by 다몽 박작까


광명에 있는 군부대에서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늘 강의는 개인적으로 기록 하나를 세웠다. 인원은 제일 많았고 호응은 제일 없었다. 이건 나쁜 기록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기록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의 청중은 군인 병사분들이 아니라 군무관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늘 스무 살 언저리의 애기애기한 군인 분들을 만나 초코파이로 분위기를 풀어왔다. 초코파이는 웬만하면 배신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초코파이는 힘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존재감을 숨겼다.


무대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강의장은 커다란 체육관 정도의 크기였고 무대는 높았다. 큼지막한 계단을 여섯 개쯤 올라가야 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보다 연배가 훨씬 높아 보이는 분들이 질서 정연하게 앉아계셨다. 고개는 모두 나를 향해 있었지만 표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솔직한 심정.


'아... 오늘 쉽지 않겠다.'





강의 시작 전 조금 쫄았다. 괜히 말을 줄여야 할 것 같고. 괜히 웃기면 안 될 것 같고. 괜히 초코파이를 꺼냈다간 초코파이만 민망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주 아주 차분하게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의 전략은 이거였다.


튀지 말 것

분위기 흔들지 말 것

가볍게 웃기지 말 것

마치 '저는 오늘 조용히 할 말을 하러 왔습니다.'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느낌으로.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호응은 없었는데 강의는 오히려 잘 흘러갔다. 질문에 손 드는 분도 없었고 웃음도 없었다. "아~" 같은 감탄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졸거나 딴짓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말 그대로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그 집중이 강의실의 공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소리는 없었지만 밀도는 분명했다. 강사는 청중의 온도를 닮아간다. 그 공기 속에서 나 역시 달라졌다. 말을 덜 던지게 됐고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차분히 정리해 꺼내게 됐다.


농담 대신 맥락을. 속도 대신 정확함을. 호흡 대신 의미를 선택하는 강의. 누군가 웃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아도 '아. 지금 이건 전달되고 있구나' 하는 감각이 분명했다. 이건 박수로 확인하는 강의가 아니라 침묵으로 확인하는 강의였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조용히 다가와 질문을 건네는 분들이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손을 들고 질문하기 어려웠을 테니 쉬는 시간이나 마무리 후에 찾아온 것이다. 그 질문들은 대충 들은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집중했기에 가능한 질문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질문 하나하나가 유난히 더 고마웠고 조금 더 천천히 진심으로 답하고 싶어졌다.






초코파이는 오늘 조용히 퇴근했다. 초코파이 드릴 분이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가방 안에서 초코파이는 자기 몫을 다했다는 얼굴로 말없이 자리를 지켰다. 꺼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다는 걸 초코파이도 아는 것 같았다. 대신 나는 새로운 강의 현장을 하나 얻었다. 호응이 없어도 강의는 충분히 깊어질 수 있다는 것. 반응이 없어도 전달은 분명히 일어난다는 것. 웃음이 없다고 강의가 실패한 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강의가 떠들썩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강의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웃음이 많은 강의가 있고 질문이 쏟아지는 강의가 있으며 그리고 이렇게 조용히 스며드는 강의도 있다. 오늘의 강의는 말수가 적은 사람처럼 자기 이야기를 크게 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소리는 없었지만 집중은 또렷했다. 박수는 없었지만 이해는 천천히 깊게 내려앉고 있었다.

경험치는 늘 이런 식으로 쌓이는 것 같다. 화려한 성취보다 조용한 깨달음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오늘도 경험치를 하나 더 얻었다. 아마 다음에 이런 무대에 다시 서게 되면 오늘만큼 쫄보는 되지 않겠지. 사람들의 표정이 움직이지 않아도 강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호응은 없었지만 집중이 있었고 그 조용한 집중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강사로서 웃음을 끌어내는 법 말고도 침묵을 견디는 법을 하나 더 배운 날. 그게 오늘 강의의 가장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