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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an Apr 25. 2018

1_프랑스에서의 일 년의  기록,
그 시작

-잃어버린 서울의 여름 (1)_프랑스워킹홀리데이 



잊고 있던 서울의 여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날씨에도, 여전히 나는 영화 '수면의 과학'에서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스테팡처럼 한 달전의 과거와 지금의 일상의 조각이 뒤섞인 채로 살아가는 것만 같다. 


서울을 떠나 무작정 프랑스로 가겠다는 나에게 이른바 면죄부였던 것은 '다른 사회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마주친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왜 이곳에 왔는지를 물었다.  나는 '프랑스 문화와 말을 배워보고 싶어서, 파리에서 살아보고 싶어서'와 같은 예상가능한 말로 지루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이 년전, 처음 파리에 왔을 때 나는 파리 5구에 있는 초록색 대문 아파트에서 지냈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작고 텅빈 마당이 있었고 작은 유리문을 통하고 나면 오래된 갈색 계단과 신식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두 명이 타면 알맞고 세 명이 들어가면 비좁은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는 내가 파리에 오기 얼마전에 설치된 것이라고 A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무척 운이 좋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나는 가끔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좁고 둥근 계단이 좋았다. 


나는 6층에 머물렀다. 에메랄드 빛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하얀색 테이블이 있었고 거실이라고 하기에는 비좁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 가장 안쪽으로는 쇼파가 있었는데 펼치면 두 명은 거뜬히 잘 수 있는 침대가 됫다. 쇼파 옆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하얀 가짜 벽난로와, 거울 그리고 하얀 서랍장이 있었다. 마주보는 공간은 작은 방이었는데, 여기저기 어지럽게 옷들이 널려 있었다. 방에는 낮게 설치된 하얀 선반이 있었고 액자 두개가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동양인 여자아이가 있었고 나는 A에게 누구인지 물었다. 그는 조카라고 했다. 삼촌은 베트남 여인과 결혼했다고 했다. 나는 우리도 그런 미래를 생각하게 될까 잠시 혼자 상상했다. 


그곳에 머무는 닷새동안, A는 평범한 파리의 직장인처럼 여덟시가 되면 집을 나섰고 나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하얀 테이블에 앉아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아침 갈 곳들을 정했다. 그는 꽤 먼곳까지 운전을 해서 출근해야 했고,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늘 일곱시가 넘었다. 나는 그를 기다렸고 우리는 매일 저녁 불켜진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사랑의 도시, 파리에서 재회했고 에펠탑앞에서 키스를 나누었고 센느강의 유람선에서 함께 파리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할 때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런데도 나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그의 앞에서 와인잔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퍼진 붉은 와인은 그를 잊기 위해 보내야 하는 수많은 고독한 밤을 예고했다. 어리석은 낭만과 눈물이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다가온 것이었다. A는 거칠고 깊은 포옹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고 나는 그가 던진 눈빛에서 애정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왜 파리로 왔느냐는 질문에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솔직히 답하지 못했다. '다른 사회를 보고 싶다'는 이유는 사실 실패한 기억으로 남아버린 A와의 관계에 대한 회복을 위함이었다는 말로 대체되어야 했다. 그것은 아마 나의 '극복의 방법'이자 '집착의 결과물'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하나의 경험은 결국 나에게 낭만적 우울함을 일깨우는 사건이 되었고, 그것은 어느덧 인생에 대한 불안감으로 심화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것은 오랫동안 생각했던 '자유에의 갈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가 당시 내가 있던 '서울'과 나의 '울타리'안에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순간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파리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 위해 떠나기로 했다. 


2016년 겨울

[다음이야기: 2_자유에의 갈망_프랑스로 떠나기 한 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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