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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an Apr 26. 2018

2_자유에의 갈망_
프랑스로 떠나기 한 달전

잃어버린 서울의 여름 (2)_프랑스워킹홀리데이

어제의 전날 나는 책방에 갔다. 그곳에서 라캉의 정신분석을 연구한 프랑스 철학박사의 책을 펼쳤다. 보통 그러하듯이 목차를 먼저 훑었다. '신경증'과 '정신병'의 차이를 구분해 놓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라캉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자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내게 보여줬고, 편지를 써주었다. 그는 내게 요리를 해주었고 그것을 정말 잘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아차리고는 와인과 함께 자랑스럽게 내놓기도 했다. 


처음으로 저녁을 함께 먹을 때 그가 라캉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과거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열심히 이야기하던 때에 내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정말 자주 생각했던 사실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그는 정신분석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이유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그래서 라캉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나는 라캉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을 한 두번 들어본 것 뿐이어서 알은체를 전혀 하지 않은 채 들었던 것 같다. 그와의 시간에 대한 나의 기억에 대한 문장이 '같다'라는 모호한 말로 매듭지어지는 것은 과연 그것이 선명하지 않음을, 강력한 신호가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것일까.


그런대도- 그의 마음을 뒤로하고도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라캉의 책을 들추며 

그를 생각하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라캉의 책을 들여다 본 것은 내가 과연 지금 '정신병'을 앓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예컨데 내가 정말 정신병의 단계로 들어서는 건가라는 생각이 요 며칠새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 설명된대로 라면 '상징계'와 '현실계'를 구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새'와 '경찰'을 구분할 수 있으며 그것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므로 정신병이 아니었다. 


정신병의 문제를 뒤로하고도, 나는 이제 정말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다양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떠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큰 사건이 될 것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 해를 부정하고 이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한 떠남이라기보다는 다 비우고, 더 비우기 위한 떠남/헤어짐이 목적인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걷어내고자 한다. 


별볼일 없는 지식으로 나를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을 피하려고 외로워질 것을 택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무척이나 고독하게 될 것이다. 어제의 달콤한 대화가 오늘 소멸하는 경험을 하며 그저 공간의 이동과 부재가 줄 수 있는 감사함에 의존해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근원을 알 수 없는 실망감,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을 지나치게 의심하는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용하지만 철저하게 다른 사회로의 이동을 시도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7년전 서울에서 태어난 적이 없는, 아빠의 가난한 딸인 적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이 차곡차곡 쌓이지 않고, 먼지처럼 훅하고 사방으로 퍼져 흔적도 남기지 않는 느낌이 머릿속에서 너무도 끊임없이 소용돌이 친다. 


그토록 익숙했던 목소리, 몸짓, 표정, 함께 나눈 시간과 대화는 무색하게 금세 희미해지고, 눈이 마추기도 낯선 사람은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갑작스레 나의 세계를 탐험하려고 든다. 그토록 보고 싶던 사람이 허무하게 손을 흔들고 가버려 또 다른 어리석은 밤의 날들을 보내던 나는, 오늘 내 앞에서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에게 
수줍은 척 웃는 것이다. 

떠날 수 있을까를 상상한지 9년여만에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생각한지 한 달여만이다. 떠나는 이유를 정의할 필요는 없어도 정리해서 말하고 싶은 걸까. 내가 택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나를 귀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공간적-시간적 분리를 추구하여 끝내는 정서적-심리적 분리까지도 이루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고 해야 할까. 


떠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당장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없고,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것과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이곳에서 쉽기만 했던 일들을 해결해가는 것만으로도 삶의 이야기가 풍부해 질 것이고 그것이 나의 오감을 다시 자극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쌓아두었던 나의 많은 꿈들의 막연한 행방의 실마리를 찾기를 기대하며 떠나는 것이다. 


영원히 내 곁에서 나와는 분리하여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을 나의 탐험의 공간에서 다시 재회하는 것, 

그리고 다가오는 시간을 충분히 낭비하는 것. 


이 여행의 시작과 마침은 그것뿐이다. 


2017년 2월 28일

[다음이야기: 3_낯선 설레임_'장미의 도시'로 떠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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