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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Jan 06. 2023

아기와 새물내

우리 모두 살아남을 존재들 4

*새물내: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

*향그럽다: '향기롭다'의 시적 표현

*청적하다: 기분이 깨끗하고 상쾌해지다.

*분분하다: 매우 향기롭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소한 행복의 원천으로, 빨래한 옷의 냄새를 이야기했다. 잘 세탁하고 말린 옷을 입으면 가붓하지만, 말린 빨래에서 나는 섬유유연제의 냄새를 매일매일 맡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좋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공감하기 조금 어려웠다.


 본가에서 빨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실 귀찮다. 빨래는 우리에게 집안‘일’, 그뿐이다. 사용하는 섬유유연제 냄새를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말리면서 간혹 좋지 않은 냄새가 스며들기도 하는데 불쾌하기도 하고, 전날에 고르고 골라 입고 나가기로 한 옷이 그럴 경우, 누가 내 옷의 냄새를 맡지 않을까, 내내 신경 쓰인다. 한 마디로 우리가 신경 쓰는 건 빨래가 잘 되냐, 못 되냐일 뿐 소소한 행복으로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언니의 집에서, 왜 하루키가 그 냄새를 사랑했는지 알게 되었다. 언니 집에는 5살, 8개월 된 아이가 두 명 있는데, 여린 아이들의 살결에 해가 될까, 섬유유연제부터 빨래하는 과정까지 꼼꼼히 신경 쓰고 있다. 고민하다가 건조기까지 샀다 했다. 언니 본인이 허리가 안 좋기도 하고, 여기저기 말리다 위생에 문제가 생길까 봐 장만했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했다.


 어제 언니의 집에서 둘째 조카를 안고 토닥이는데, 이 녀석이 하도 어깨 부분을 물고 오물거려서 침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침 흘린 게 뭐가 대수라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 같이 온 엄마가 그래도 외출도 해야 하지 않냐고, 빨래하는 김에 같이 하자고 해서, 입고 있는 후드티를 맡겼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건조기에서 세탁이 다 되었다고 알림이 울렸고, 엄마는 세탁물 중 내 옷을 찾아내어 건넸다. 그리고 막 나온 뜨끈한 옷을 입는데.


 나는 갓 나온 빵의 냄새가 향긋한 건 알았지만, 갓 나온 세탁물의 냄새가 그렇게 향그러운 줄 몰랐다. 아침 일찍, 빵집에 가면 갓 구운 빵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꼭 입에 넣지 않아도 뱃속을 풍성하게 만드는, 그런 넉넉하고 감미로운 냄새가 있다. 이스트와 소금을 넣은 듯한, 그런 유의 냄새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조카들에게서 나는 보드랍고 고운 냄새. 돌처럼 굳은 마음이라도 누그러지게 만들고야 말 그런 냄새.


 둘째 조카는 내가 바닥에 앉은 채로 자기를 안으면 꼭 버둥거리고 얼마 안 가서 짜증을 낸다. 들어서 안아야 흡족해한다. 그런데 그 새물내가 물씬 풍기는 옷을 입고 앉히니 바동거리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끔 노래에 맞춰 다리를 흔들거리기만 했다.


 이 녀석이 내 옷에서 나는 새물내를 맡고 편안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날 녀석의 기분이 ‘이모도 고단하니 그냥 가만있자’였는지 잘 모르지만, 그 순간은 마치 아주아주 포근한 거위 털 위에 드러누운 것처럼 마음이 물렁물렁해졌다. 빨래 냄새 하나로 새 물을 끼얹은 것처럼, 마음이 이렇게 청적해진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무르고 무르다.


 지금도 그 옷을 입고 있다. 이젠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그 순간의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을 불러오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마음속엔 다시 새물내가 일렁이고 있다. 아,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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