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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쑝 Aug 04. 2016

되받아치다


며칠 전 사건으로 지난 날 나의 모습이 다시 나에게 화살이 되어 부메랑같이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뼈와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의 순간이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몇번이나 할 수 있을까 어안이 벙벙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거울을 통해 외적인 나의 모습을 보는 일 외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또한 타인의 입을 통해 나라는 인간이 단정 지어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는 일을 과연 누가 쉽게 할 수 있으랴.

상상만으로도 무척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 피하고 외면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내가 가진 모든 의지와 능력을 총동원해 무시무시한 언어력으로 그것을 되받아치기 급급했다.


그럴 때마다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알수 없는 에너지를 보너스로 얻고 전투력 점수가 급격히 상승함을 느껴 공격에 대한 방어막과 교만의 갑옷이 나의 온몸을 휘감는다. 그 동안 쌓아왔던 쌈박질의 내공과 신무기의 장착으로 내 자신의 인격체 지수가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며 그것들을 휘두르고 살아왔희한하게도 일처리 후엔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희열과 승리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사람간의 관계에서 실질적으로 싸우거나 꼭 전투하지 않고 신경전을 펼치더라도 상대방의 기와 콧대를 꺽은 후 맛 본 통쾌함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희열과 통쾌함, 승리감으로 인해 실제 내 삶의 질과 수준이 높아졌는지, 나의 인격체가 절정에 다달아 완벽해졌는지, 나의 관계와 소통이 온전한 평화를 찾았는지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과연 되받아치는 삶이 가져다 준 효과가 무엇이었기에 나는 끊임없이 전투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래, 약간 업이 되었다 굳이 말한다면 망할 놈의 기분 뿐이었다


답을 얻어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에 언급한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았고, 그 답을 얻어내려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만이 사실로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남은 게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불뚝 불뚝 올라오는 충동과 굳게 다져진 자존심, 보이지 않게 하나 하나 정성들여 쌓은 관계 속 투명한 벽.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격면- 나의 싸가지.


가끔은 아무런 방어막이 없는 나를 공격하는 외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가만히 있기에도 억울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 어느때고 수시로 찾아온다.

그것을 되받아치고 나를 정당화 + 합리화 시키기 위해  늘 남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였다.

그러자 마음은 잠시 편해졌으나 여전히 나는 그 상황 안에 멈추어 있다.


분명 내가 있는데, 내가 없다 거짓을 말한다.


니 탓은 있지만 내 탓은 없다고 한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마음으로 해야만 가능하다라고 말해야 할것 같다.  

왜냐면 이상하게도 그것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을 경험했을 때 나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 깊숙한 어느 곳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태연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그리고 그것을 물 흐르듯  인정했을 때 오는 잔잔함.

누구보다도 나 자신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면의 깊은 모습을.

처음에 당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 말이 맞다라고 인정했을 때 한없이 부끄러워 없어지고만 싶을 정도였다.

정말 누군가 의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제발...멈춰다오.

렇게 성장하는 것일까.


성장통.

사실, 만들어진 나의 이미지 속  이제껏 내가 축적해 온 나의 경험치를 통틀어 보았을 때 나의 성장은 더 이상 내 인생과 삶에서 중요치 않다 여겼다.

스스로를 이제 할만큼 했다라고 여겼고, 그런 내 자신을 칭송했고 높였다. 콧대는 하늘을 찌르고 나의 교만이 끝을 달리고 있을 때 나의 깊은 곳은 은근 불편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모른척 외면했다.


***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속이며 스스로를 포장했고, 그 포장 표면 위로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박살이 났을 때의 기분을 느끼고는 한동안 심장에  총알이라도 박힌 듯 멍멍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깨지면 절대 안되는 판도라의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 나의 밑바닥 숨기고픈 모든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아직 나의 근육과 피부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 허물을 억지로 한꺼풀 벗겨내는 듯한 느낌.


한동안 멍한 상태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 시점 다른 내면의 깊은 곳의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잔잔함을 동반한 오류에 대한 인정이었다.

아팠다.

인정하기 싫었던, 인정해야만 했고, 고통을 겪는데 걸린 시간 수십년, 인정하는 순간은 단 몇분이 걸리지 않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바닥 깊은 곳, 땅위를 꼬물거리며 힘겹게 움직이는 애벌레와 다를게 없는 모습이라 초라하고 힘겨웠다.
곧 허물을 벗고 탈피한 후엔 아름답게 천국을 향해 날아갈 날개가 생기기를 가만히 기대해 본다.  



되받아치기에는 너무 익숙한 오늘날 나의 삶.

받아들이는 일을 간단히 고개돌려 외면하며 단 한번의 찔림조차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 늘 옳다 맞다 여기는 내가 거짓이었다.

그 의미에서만큼은 숨쉬는 나 조차가 거짓이었다.


이번 아픔은 되받아치기에 급급했던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와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기회를 기꺼이 받아 들이는 것과 그것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아는 것. 즉 깨닫고 적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기에 이 또한 감사로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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