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pills ♡ 위로
말로만 하는 위로는 아름다운 소음과 같다.
몸이 무거운 풍뎅이가 뒤집어졌을 때 짧은 다리들로 끝없이 버둥대는 모습이 꼭 나와 닮아 있던 시간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긍정의 단어들을 조합해 극복하고자 온 힘을 다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인 시간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것 때문인지 널리고 널린 힐링에 관한 책들을 외면하고픈 마음은 아직도 크다.
작게나마 깨달은 점이 있다면 힘든 시기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내 안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내안의 있는 것으로 지극히 이기적이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진행형이고 죽을 때까지 그 고리들을 연결해 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 시기가 지나면 자꾸만 잊어버리는 구멍난 기억력 때문에 끊임없이 글로 남기기를 시도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 인생에서 누군가 답을 얻었다고 하는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당신이 느낀 것이 내 것이 아닌데. 지극히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떠봐도 헛수고였다.
어쩌면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쓰기로 계속하는 이유는 이 글을 통해 누군가 도움을 받거나, 힐링이 되기를 바래서가 아니다. 그저 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나의 엉터리 기억력과 느낌을 되새김질 하느라 나 스스로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혼자 어두 컴컴한 터널을 불빛 하나, 먹을 것 하나 없이 힘겹게 땅 위를 기어가고 있을 때, 그나마 터지는 핸드폰 너머 들리는 한 줄기 기대했던 희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데릴러 갈 수 없으니 조금만 참고 혼자 힘으로 나오라며 희망의 메세지 대신 또 다른 좌절의 혹을 붙여준다.
그것은 희망 고문이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쓰잘데기 없는 위로, 그래서 그 이름을 아름다운 소음이라 하고 싶다.
터널 속 나의 허기와 어둠 뿐인 두려움을 덜어줄 수 없는 누군가에게 크게 기대한 덧없는 욕심의 결과이기에 그것으로 더욱 곤두박질 쳐지는 허망함과 분노가 온다한들 분통을 터뜨릴 수조차 없는 노릇이었다.
그 시기 타인이 들려주는 입술 위 맴도는 위로는 그저 떠도는 유행가와도 같이 어떻게든 여기를 빠져나가면 스며들대로 스며든 외로움만큼은 보상받을 수 있겠구나 싶은 막역함만 그 자리를 버티고 있었다.
별 감흥도 실질적인 도움도 되지 않는 위로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소음
미래 어느날 내가 괜찮아졌을 때나 알 수 있을까.
그러나 아직은 느껴보지도 못한 하찮은 보상 심리를 기대하는 일은 아픔을 감소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배가 되게 해줄 뿐이었다.
두루뭉실한 희망 메세지-가 아픔이 될 줄이야. 결국 그 조차도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 낸 허구의 결과물임을 알고는 씁쓸해졌다.
나 스스로 소원하며 소망하는 기대와 희망은 꼭 필요하다.
몸이 커도 마음은 그에 비례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혼자 힘으로 살아보지 않았다는 증거가 명명 백백히 드러나는 최악의 순간이었다.
늘 부모의 든든한 백과 그늘 아래 기대어 해결해보려는 의지력조차 무뎌진 삶을 타인 누군가에게 기대한것은 아니였을까.
또한 익숙히 살아왔던 것이 믿겨지지 않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습지만 머리속 상식과 나의 실체의 모습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부끄러운 심정. 나는 최근 이러한 감정을 참으로 많이도 느낀다.
그러다보니 위로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제는 다르게 다가옴을 느낀다.
"힘내. 괜찮아질꺼야.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말로만 위로가 되는 경우를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내 곁에서 진심을 다해 서 있어주는 것이 오히려 더욱 큰 위로가 됨을 알았고, 그렇게 서 있어준다는 것은 의도야 어떻든 나를 동정하거나 연민에 가득찬 눈빛을 말하는 게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만난 사람.
갑자기. 불쑥. 대뜸. 내 인생에 파고든 그 사람을 아직도 천사라 나는 속으로 되내인다.
그 사람은 나에게 어느날 그렇게 문득 찾아와 내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고 내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묵묵히 나의 곁에 서서 나를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나만큼이나 아픔을 안고 있었지만 그녀에게서는 그런 아픔을 그녀가 드러내기 전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한 듯 보였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특별한 사람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마음이 비단결 같이 곱다거나 그녀의 행동이 수녀 테레사 같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깊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은 결코 누군가를 위해 희생과 봉사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은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위로는 사실 아주 사소하고 평범하며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나는 늘 그녀에게서 배운 위로를 힘든 누군가를 위해 적용하길 바라고 바란다.
며칠 전 그녀를 떠올리며 힘들어 하는 또 다른 그녀에게 네일용 손톱을 내밀었다.
대단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다만 여자들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위로였다 본다.
'오늘 가서 꼭 붙이세요- 우린 여자니까 예뻐져야지.'
기운 없어 보이던 그녀의 얼굴에 웃음 꽃이 피는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행복했다. 별거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로란 이런 세심한 것을 다독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자는 힘들거나 우울할 때 손톱 하나에만 변신을 주어도 기분을 전환함으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
요리할 때나 운전할 때나 가계부를 쓸 때도 손톱을 보면서 잠시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고 기분까지 좋아지니 말이다.
사소한 것 하나로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만들어 내는 위로. 그로 인해 낳은 다음의 결과가 행복을 낳고, 그 행복 안에서 또 다른 위로가 덧입혀지는 것- 그렇게 작게나마 서로를 떠올릴 수 있음이 더욱 값진 위로 아닐까.
나를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있고, 또한 기쁜 마음으로 보여줄 누군가가 있으니 위로가 된다. 그리고 말없이 든든히 서 있는 서로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티 나지 않게 일상을
서로 채워주면서 주고 받는 위로
특별히 아름다운 단어를 꾸며대지 않아도 커다란 힘을 발휘함을 느꼈고, 실질적으로 엄청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든 순간이 오면 힘든 사람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상대방에게 도움이나 위로가 될 수 있고, 실제로 행하였을 때 현 자신의 상황의 변화가 없더라도 달라져 있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됨 또한 알게되었다.
특히나 힘든 순간에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남을 위해 행하여진 도움이나 위로의 기쁨은 맛 보면 계속 하고 싶어지는 중독성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어려운 상황에 놓은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알고 나니 고통이 아닌 기쁨이 되어 돌림 노래처럼 되돌아왔다. 그 순간은 아픔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상상 이상의 위로였을 뿐 아니라 더 하고자 하는 강한 이끌림으로 나를 살게했다.
결국 내 안의 고통을 덜어내는 최선의 방법은 조금이라도 살아 남아 있을 내 안의 기쁨의 묘약을 섞어야만 한다는 것이었고 나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위로의 방법을 찾는 일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적절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삶이 어려운 것은 명확한 답이 없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의 경우 사실 곳곳에 흩뿌려진 그 답을 찾아 나설 움직임이 부족했기에 끝없이 좌절하기만 했던 것이다.
조금은 먼 길을 돌아왔지만 최악의 순간일지라도 남이 가진 긍정의 기운이 아닌 내 안에 분명히 살아 존재하는 선한 감정을 찾는 일과 행동에 옮기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위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 힘든 순간이 아니였다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었을 값진 이득이었고 살아가는 여정의 길 동반자가 되어준 또 다른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