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씨

by jina S Kim

....앉아서 키보드 위에 손만 얹어도 분명 잘 쓸 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역시나 착각이다.

조금이라도 떠오르는 생각을 놓쳐 버리면 그걸로 끝장 난 것 마냥 팔 다리와 온몸을 굵은 동아줄로 꽁 꽁 묶은 것만 같다.

그때 쓸껄...후회만 남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 속을 헤짚고 떠 다니던 그 많던 문구들과 단어들이 사라지기 전에 남겨두었던 작가의 서랍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요즘같은 때는 내가 한 눈 판 사이 벌써 불친절한 누군가가 쓰레기통 정리라도 한건지 깨끗히 비워져있다.

나의 게으름에 문득 속에서 뭔가가 치솟는다.

글은 쓰고 싶어 미치는데 상황이 어려워 쓰지 못할 때면 서랍 속에 간단한 메모를 남겨두곤 했는데 없다. 곳간에 채워 둔 양식이 없어 얼어붙은 겨울 내내 어찌 버티나 싶은 게으름뱅이 귀뚜라미 심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쓸만한 재료가 없어 나는 지금 너무나 고프다.

언제든 쓰면 술술 나올 줄 알았던지 어느샌가 자라 버린 자만과 뭔지도 모르는 멋진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불러 낸 부작용인것같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글쓰기 중독자이고만 싶다.


원하는 상황에 내가 상상한 모습의 글들이 완벽한 자태로 나와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지만 탁월한 필력과 재능을 갖지 못한 이상 언제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여길 수 밖에.

원할 때 마음껏 고운 자태를 뽐낼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아무때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글을 얽매이지 않고 쓸 수 있어서 다행인것의 구분이 확실하니 그걸로 족하다.


그렇지 않아도 느려 터져 꾸물대 익숙한 그 이름, 나태함씨 때문이라도 위 언급한 내용들에 대한 감사함은 꼭 마음 판에 새겨야만 좋아서 하고 있는 이 행위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랍 속 모아둔 짧은 단어들이 모이면 희미해져 가는 글의 밑그림이 되어주고 그에 걸맞는 색과 모양의 모습으로 완벽한 재료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퍼뜩 떠오를 적에 재빨리 글로 옮길 때와는 확연히 그 신선함이 다르다.

좌절스러울 만큼 형편 없거나 필자가 의도한 상상 속 그림의 초점과는 전혀 다른 글이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아이디어가 번뜩일 그 순간 당장 떠오르는대로 바로 백지에 옮길 때만큼은 공중에 붕 떠 신 들린 듯 쉬지 않고 떠오르는 영상들을 놓칠새라 몇 시간씩 앉아 양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만 가만히 놔두어도 놀라울만큼 빠른 속도로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춘다.

날개 달린 단어와 그 문구의 날개짓을 놓칠까 싶어 알수 없는 긴장감과 미세한 떨림도 생긴다.

가끔은 살아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길게 늘어진 문장 하나 하나가 새 생명을 품은 듯 따끈한 숨소리로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에 깊이 빠질 때도 있다.

그럴땐 가슴이 벅차오른다.


설레이는 순간의 맛을 알기에


능력이나 실력과는 별개로

어떻게든 계속해서 글을 쓰는건지도.


자꾸 욕심을 품어 그런지 아직은 결과물이 생각보다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으나 얼굴에서 묻어나는 개기름처럼 과한 문장들이나 표현, 머리숱만큼이나 빈약한 어휘력과 몸매만큼이나 뚱뚱한 덧붙임, 쓸데없는 수다 등 늘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이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그런지 무리하게 낭떠러지로 밀어부친다.


더. 더. 더. 더. 더. 더.


글쓰기를 괴롭힌다.

귀청 떨어지는 큰 소리와 함께 터지기 직전,

씁쓸한 웃음으로 뉘우쳐본다.



기대치를 낮추고 천천히.


설익은 과일의 문제점을 짚어 안달복달 해봤자 소용 없다. 인공적으로 익힌 과일은 겉 모습만 그럴싸할 뿐 적당한 수확 시기에 따낸 과일과는 맛도 영양가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품질의 차이가 난다.


글이라는 것도, 중도 포기만 아니라면 시간에 따라 내공이 쌓일 것이다. 분명-

쌓이다보면 그 맛과 질의 수준이 확연히 달라질텐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은가.


And God is never late.


글쓰기가 지금 당장 행복하다면 기쁜 그 마음 그대로를 표현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겸손히 나만의 색깔을 가진 글에 만족하면 된다.

나만의 틀 안에서 그렇게 분류하니 실제로 오늘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착잡함과 무거운 기분이 사라졌다.



글도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듯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처럼 나의 글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적용된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다.

더불어 보너스로 '나의 글은 특별해'라고 속으로 살짝 말해 본다.




그 날, 그 시점, 그 순간이 아니면 도저히 제대로 모양을 갖추기 힘든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에 소중한 아이들이 모두 모여 글이 되거나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같은 하늘이래도 어느 시점이냐에 따라 어제 본 하늘은 파랑이었고 오늘 본 하늘은 시뻘건 색일 수 있으니 말이다.

느낌이라는 것이 그 순간이 아니면 도저히 끄집어 낼 수 없음을- 글로 옮겨보니 확실히 알겠더라.

글을 쓰기 전에는 잠시 1초였더래도 그 찰나의 순간을 옮기기 쉬워보였으나 다만 몇초 몇분 잠깐 움직이기만 해도 희뿌연 연기처럼 사라지는 뒤꽁무니만 보고 그것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써본 후 절실히 느낀다.

그럴수록 갈증을 느낀다.

그 갈증이 더해지면 어떤 때는 골머리를 부여잡고 머리털을 쥐어 뜯으며 기억해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갈증에 눌려 탈수 증세를 보이며 널부러져 아예 '삭제' 버튼을 누르고 글쓰는 일을 잠시 중단해 버린다.

우습지만 쉰다'는 찬란한 명목 아래.

어느 작가님의 말씀처럼 직업가로써의 작가였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생각만 해도 철렁거려 가슴을 쓸어내린다.


작은 불씨하나


요즘 나는 불씨를 꿈꾼다.

온 몸을 훨 훨 태워도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나 나의 미천한 글 한자, 단어 하나, 문구 하나를 읽은 다른 이에게 그 불씨가 옮겨 가는 것.

엄청난 에너지와 풍요로운 생각, 다양한 소재를 공급해줄수만 있다면.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가는 그런 불씨.


촌스런 조명도 이렇게 쓸모가 있구만


그림자의 역할이라기보다 내가 공급원이 되면 또 누군가 나와 또다른 이의 공급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 가짐으로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부족한 글들이 언젠가 실제로 살아 움직여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듯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나은 유전자를 가질 수 있지는 않을까.


나도 불씨가 되고

너도 불씨가 되는 것-


나의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를 위해 쓴다.

마치 뒷배라도 생긴듯 큰 힘이 되어주고 그 속에서 뜨거움을 느낀다.

작은 불씨 하나 하나가 모여 어둠에 빛이 되기도 했고,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따뜻함을 선물하기도 했다. 배가 고플 때 식사를 데워주기도 했으며 위험 속 무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불이 꺼질새라 불안함을 안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입김을 불기도 하고, 누군가는 마른가지를 모아 넣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기름을 가질러 갔을 것이다.

애써 걱정하지말자.

행여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이 꺼지더라도 다시 모여 처음 그 불씨의 힘으로 새로이 더 화려한 불을 태우면 될테니.


보. 고. 싶. 습. 니. 다.


July 15. 2016



매거진의 이전글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