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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쑝 Nov 10. 2016

터치 마이 소울

맑은 영혼을 꿈꾸다

page # 1. 탓이 아닌 덕분으로



평범한 여자 사람이 어느날 문득 입을 뗍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데, 굳이 삶이란 것을 국수 면에 비유해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하루 하루를 연결해서 길게 쭈욱 뽑아 놓은 것이 인생 혹은 삶이라 이야기를 꺼내는거죠.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모든 삶이 잘 빠진 면처럼 그렇게 끊김없이 길고 반듯하니 예쁘기만 할거란 우스운 기대를 한 적도 있었노라고.


기계로 뽑아낸 것이 아니라면 잘 뽑아 놓은 수타면이래도 각기 그 모양과 정도가 일정하게 모두 같진 않겠죠. 찰진 정도와 쫄깃한 식감, 굵기 등 어떠한 재료를 사용했는가로 모양과 맛이 정도, 제각기 용도와 환경에 따라 모두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떠올려보니, 그 자연스러운 수타면이 기계적으로 뽑아낸 면보다 맛이 없고 불편해지기만 했어요. 자연스러운 것이 점점 손해처럼 느껴졌죠.

모두 같아져야하는것 다르면 안되는것, 더 화려하거나 아름다운것 그리고 얼마나 더 이익이 되고 쓸모가 있느냐 세상의 가치는 내 안에 세운 나만의 가치관이나 목표에 대한 판단 기준과 자연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죠. 매일 입으로 떠들어내는 사회 속 기준치에 도달하느냐 못하느냐로 분류가 되고 그것마저 나의 탓이 되더란 말입니다. 모두 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나 있나요. 사회 속 기준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나만의 가치관이 상실 된 채 그 기준만을 따르며 영혼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펑' 소리와 함께-




인생 중 가장 햇 병아리같던 시기에는 커다란 야자수 잎파리의 그늘로 여름 한 낮이 그리 더운지 모르고 살았더랬는데, 그래서 그게 더욱 당연했던거예요. 나무도 꽃도 하늘도 모두 그렇게 사는 것 같았죠. 무뎌지게 만든 그늘 속 겹겹이 가려진 그늘 안에서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떠한 계기로든 인생의 큰 변화가 와요. 당연스럽고 편했던 그늘이 사라져버리고 점점 온 몸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죠. 갑자기 외톨이가 되었다는 당황스러움에 몸 둘바를 몰라요. 늘 보다 높은 곳에 먼저 떠 몸을 태울 듯한 태양이 불편하고 싫어져요.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늘에 가려져 편했던 인생에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방해꾼라 여겨져 미움이 불같이 일죠. 세상이 만들어낸 이미지라는 틀 안에 갇혀 살아있긴 하나 분별력을 잃은 영혼이 힘들어진다고 해야할까요. 결코 인정하기 싫어지는 순간.


그때부터 여자사람은 화풀이 대상을 찾아나섭니다. 뜬금없는 방해꾼이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내 모든 것을 그대로 돌려놓겠노라고. 그늘을 만들어내라 나무를 흔들고 때립니다. 가지는 모두 꺽고 꽃들을 뭉게버리기도 하고 잔디풀도 모조리 뜯어요. 지나가는 개미 한마리 살려보내는 법이 없어요. 여자 사람 주변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죠. 그 뿐 아니라 앞과 뒤를 잴 것도 없이 눈 앞에 나타난 태양을  욕해요. 태양과 맞서 볼 온갖 방법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계획을 짜며 뒤늦은 방황에 시간을 버립니다. 사실 태양은 느닷없이 나타난 방해꾼이 아니란 것을 깨닫지 못해요.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섭리 같은건데 말이예요.


싸우다 지친 여자 사람은 쓰러집니다. 비로소 모든 일을 멈추고 나에 대해 집중해 보기로 합니다. 의 소중함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함, 나만의 특색있는 가치관의 희소성을 부자연스럽게 해석한 이유를요.

생각이라는 것을 해봐야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수많은 나날 한숨과 자포자기의 심정을 짜내며 별 볼일 없이 쪼그라든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기 반성을 해봅니다.


@ 지나쑝



목표를 어디에 두었는지 그 모양은 어떤지 결국 행복이라는 것에 중점을 맞추며 최소한의 것을 위해 찾아 떠나는 여정. 인생길이라 말합니다.

억만장자는 아니래도 쓸만큼 두둑히 신용카드를 품고, 스치는 유행에도 민감하게 대처하며, 감성을 되찾고 미니멀한 라이프를 꿈꿉니다. 이성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 또한 자유라 크게 외치고 세계 곳곳 여행을 떠나 맛집을 찾아요. 나른한 오후 고급진 차 한잔과 감미로운 음악, 독서로 그 해답을 찾았노라 느낄 즘 또 다른 의문이 듭니다. 현재 느끼는 자유로움, 소소한 즐거움, 여유가 진정 내가 원하던 행복의  전부인지를요.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과 빈 공간은 무엇이 대신해줄까요. 완전한 해답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 자리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더란 말이죠. 아마 머리 속 저 편 어딘가는 이미 더욱 강렬하고 자극적인 무엇을 찾아요. 끊임없는 이 허덕임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죠. 보이는 모습의 변환 작업이 아닌 깊숙한 곳 진정한 변화가 절실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목표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데도 끊임없이 갈증을 느끼며 한 걸음 한걸음 도달해봐도 이미 머리 속 다음 걸음에 대한 조바심때문에 견딜 수 없음에 숨이 막혀왔습니다.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외롭고 힘든 긴 터널 속 싸움처럼 느껴질 뿐이었어요.


우리가 보거나 느끼는 것 혹은 묻어난 모습들은 거의 다 비슷하다 여겨집니다. 아주 달라보인다 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만 그 시기와 소재가 다를 뿐.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시기 누구나 겪죠. 여자 사람은 본인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이때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그것은 다만 어떠한 행위로 가능한것일까도 말이죠.


민감하게 이 순간을 포착하는 것.

누군가는 계기의 시작과 동시에 불행하다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괴롭던 지난 날을 계기의 시작을 통해 청산해버리고 행복한 나날들로 채울지도 몰라요. 놓지 않은 희망 끝자락에 매달려 있음을 보게 되죠.




행복은 영혼이 진정한 쉼을 느낄 때입니다.

 

여자 사람은 조심스럽게 이런 기분을 느끼면서 살짝은 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당장 급급한 방패막이가 될 그늘을 찾지 못해 괜시리 태양을 탓했던거예요.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말이죠. 그게 뭔지 몰라요.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죠. 단지 이 편이 가장 쉽다고만  여겼어요. 여자 사람은 힘겨운 싸움에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스스로 영혼이 지쳤다고 합니다. 더불어 사는 법을 모르니 강한 빛과 더위가 이익이 될리 없었죠. 실제로 태양 빛으로 인해 어둠 속 세상이 밝아지고 과일이 익어감에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이 여자 사람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급기야 강한 빛때문에 태양을 마주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의 요소라 착각합니다. 여자 사람은 태양과 싸워 영원히 없앨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가 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견딜 수 없는 더위와  타 들어갈 것만 같은 뜨거움, 목마름은 결국 그녀를 쓰러뜨려요. 뙤양 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려봐야 태양은 그 자리에서 이글거리며 보란 듯 더욱 뜨겁게 타올랐죠. 깨어나봤자 항상 그 자리에 이글거리는 태양만이 있을 뿐이었죠.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바보처럼 무거운 짐처럼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태양 이라 믿어버렸기 때문에.


때로는 착각이 의심이 되고 그로 인한 의심은 잘못된 믿음으로 확고히 자리잡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탓을 하면 할 수록 인생의 무게가 여자 사람의 어깨를 더욱 거칠게 짓눌렀어요. 동시에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함께 오랜 시간 상처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처해있는 환경 속에서 기 죽지 않으려 더욱 허리와 고개를 최대로 곧게 펴고  거침없이 입으로 독을 뱉어요. 보여지는 환경과 시기가 눈속임이라는 것을 결코 알리 없죠.


어느 날은 뜨겁게 달구어질대로 달궈진 흙먼지 투성이의 황량한 길 한가운데서 태양을 맞서다 또 한번 쓰러지기 직전의 위기 상황을 맞닥뜨려요. 그런데 그날 따라 웬일인지 날씨가 참 이상해요. 영원히 타오를것만 같던 태양에 약속없던 구름이 살포시 가려진거죠. 덕분에 내리쬐던 뜨거움도 가리워지며 한풀 꺽였어요. 여전히 태양은 빛나고 있었지만 이내 구름이 하나 둘 늘고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여자 사람은 그녀 인생 처음 맛 본 단비와 같은 소낙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깨닫기 시작합니다.


태양은 맞서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임을.


아주 잠시였지만 소낙비에 젖는 동안 희미하게 태양의 이면을 보게 되었어요. 동전 한닢에도 존재하는 양면을 실제로 들여다보고 의미를 부여하며 사용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요. 동전은 그저 쇠덩어리에 불과할까요. 그 안에 숨어있는 엄청난 의미를 깊숙히 들여다보기란 어렵기만 합니다.


이글거리며 뜨겁디 뜨거웠던 고된 길, 산과 들판, 풀이고 강이고 메마른 듯 쪼그려 고개를 숙이고 헉헉 댔던 방금 전의 온 세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반가워하며 온 팔을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죠. 사실 여자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눈으로 봐 온 것들은 진실이었을까요? 뜨거운 화창함으로 온 세상을 구석 구석 빠짐없이 비추고 있던 태양의 얼굴을 먹구름으로 가리고 보니 그제서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가 있었던거죠. 뿌옇게 보이는 듯 했으나 태양의 손길이 그 어디에도 닿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눈부심으로 가려졌던 세상의 완전한 모습을 흐린 빗물 사이로 보게 된거예요. 이상하리만치 상쾌한 기분이 여자 사람의 온 몸으로 전해졌어요. 이제껏 소통해본 적도 만져 본 적도 없는 자연이 숨을 내쉬는 향내도 맡았죠. 분명 다른 모습이었어요.

그토록 미워했던 뜨거운 태양을 살며시 가린 구름과 속 시원히 쏟아진 소낙비 덕에 여자 사람 눈에 세상은 더이상 죽어있지 않았죠. 그 안에는 수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춤과 노래의 흥겨움으로 물들었어요. 기쁨과 환희로 들썩거리며 춤추고 싶어진 여자 사람의 내면에 엄청난 에너지가 충전되어감을 느꼈죠.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지나쑝


바라보는 목표의 이상을 온전한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 안에 있는 특별함과 소중함에 집중해보니 감히 누구도 상상해내지 못하는 힘이 만들어지고 결코 놓치기 싫은 경험이었다는 것을 여자 사람은 알게됩니다. 더불어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보던 눈을 씻어 버리고 나니 매일 행복에 젖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도요.

간단히 글을 쓰면서 사물의 이면을 바라보는 눈이 생기면 창의적인 전혀 새로운 글이 탄생하는 것과 같다고 봐요. 너무나 멋진 일이죠.


감사함은 인생을 새롭게 뿐 아니라 진정 바로 보게 해줄 수 있어요.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여 능동적으로 나의 편이 되게끔 만들어야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행복해짐을 알게 됩니다. 별 볼일 없이 느껴지던 인생도 삶도 그 가치관과 목표를 통해 전혀 새로운 것으로 탄생되어지는 신비한 힘이 있다는 것 또한.


세상의 눈속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은 탓할 일도 아닌데 실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끊임없이 속삭여대는 편안함과 무뎌진 틈 사이로 중독성 강한 독극물이 마음 깊숙한 곳까지 퍼지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기에 영혼의 자리는 갈 곳을 잃었어요. 소리없이 나의 존귀한 영혼이 깊이 잠들어 버린것이죠.


육체가 아닌 영혼을 다스려 정돈하고 만져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덕지덕지 붙어있는 때를 벗기고 스스로를 맑히다보면 무엇이 중요한지가 보여지는 것처럼요.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끊임없이 노력해보는 것이죠. 눈과 마음이 향하는 곳에 나의 몸도 자연히 그곳에 있을테니까요.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달콤한 휴식은 그런 곳에 있을테죠. 


@지나쑝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

아담한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아름다운 곳.

어디로부터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게 넘쳐 흐르는 생명수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반반한 돌을 찾아 조심히 발을 대보니 잔잔히 퍼지는 물 울림이 나의 발 끝 신경을 간지럽게 합니다.  서서히 몸을 담그고 지긋이 눈을 감으면 푸르른 나무들 사이를 수도 헤어릴 수 없을 만큼 반짝거리며 통과하는 빛 줄기들로 인해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희뿌연 연기처럼 잔잔히 피어오르는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아지랭이와 더불어 스멀스멀 퍼지는 수분 가득 마법의 향내를 맡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기운이 솟구쳐 올라 주체할 수 없음을. 활기찬 에너지 그대로 내 몸에 흡수되어 가득 채워지는 느낌. 감히 인간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미지 세계의 야릇한 에너지와 기운은 흐름에 손을 맞잡고 끝없는 왈츠의 향연을 펼쳐댑니다. 이제껏 맛보지 못한 영양분을 골고루 공급받은 신선하고 강렬한 느낌을 통해 스스로의 영혼이 정돈되어지고 맑아집니다. 그리고 가만히 가만히 다독여집니다. 신이 주신 선물인걸까요. 신비한 체험 다음 계속해서 쓰다듬고 유지하고픈 강한 의지가 나도 모르게 샘솟아 매일 그런 생각을 하는거죠.


모두에게 탓은 상처를 만들지만 달리보면 덕이 될 수 있덕분은 감사로 이어집니다. 탓함에게 휴식을 주니 덕분이 되어 다시 태어났고 영혼을 다독여주는 신비한 경험은 감사가 되었어요.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나누어지는 아름다움까지. 릴레이는 계속 되어야겠죠.


다음 스텝을 기대합니다.

  

오랜 시간을 다독이며 어루만졌습니다. 또 긴 글이 되고 말았네요. 저의 글은 늘 부족하지만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조급함이 가져오는 결과물은 해결방안이 아니기에. 개인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소중함과 그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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