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07 16
꽃다운 20대.
설레이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으로 시집 오게 된 로즈.
문화도 언어도 다른 낯선 땅 한국에서
어떻게든 견뎌보려 참으로 서글프게 살다가
혼자 차가운 길바닥에 외롭게
몸을 뉘운채 그렇게 떠났다.
로즈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밝히는 것과
그녀의 삶이 서글펐는지
행복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나의 몫은 아니다.
확연히 드러나있는 사실만 보았을 때
혼자 오랫동안 힘들었을꺼란
추측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씁쓸했다.
탈북자, 외국 노동자,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건너오게 된 외국인들에 대한 시선과 그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어쩌면 이유있는 편견이래도
나 역시 그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것은 사실이다.
경험으로 이해를 한다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기에 거기선 그렇게,
여기선 또 이렇게 역할을 바꾸어가며
이중 가면 놀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중 가면 놀이라 하더라도 가슴 한켠,
아직 내 안에 작게 나마 인간에 대한 사랑과 동정, 도덕 따위가 살아있는지 뭉클하고 안쓰러움을 동시에 맛보았다.
몇차례 코피노' 아이들을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었다.
최대한 담담히 티비 속 화면을 응시하려했지만 충격의 도가니탕 속에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기에 그랬을까.
아직은 내가 순수한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이란 나라가 돈과 힘을 무기로 악을 저지르고 과시하며 살았단 말인가.
집단 촌이 생길 정도의 수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것이 대부분 사랑의 결실이 아님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아빠를 진심으로 기다리며 한국어를 공부하는 아이들.
그것을 단지 어린 날 충동적 실수로 치부하기엔 죄였고, 끔찍한 저주였다.
'놀이는 끝났다-'
꼭 그말을 던져주고 슬그머니 제 한 몸만 빠져나온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압도적으로 지배했다.
이유라는 것도 핑계라는 것도 아마.. 존재했겠지.
나는 '본능에 충실하라', '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라는 카피글이 불편하다.
왜냐하면 살기위한 본능은 필수지만, 본능을 충실하게, 혹은 열심히 한다는 것을 굳이 꼬집어 말한다는것은 충실한 나의 본능 뒤 책임은 다음일것 같은 암시를 하는것만 같아서이다.
아무것도 안하는것.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에 역으로 너무 많은 것을 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일종의 환희와 같은 문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굳이 격하도록 아무것도 않고 싶다는 것이 그 이미지만으로 아직 무분별한 판단력을 가진 젊은 새싹들을 부추기는 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과연 격하게 노는것도 안하고 싶을까.
개인적으로 살만큼만 먹고, 죽지 않을만큼 자고 싸고, 불필요한 섹스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본능이 아닐까 한다.
한발 더, 한발 더 그렇게 쫓다보면 곧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하튼, 동시대에 어느 공간에서 무럭 무럭 자라나고 있는 코피노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또 태연히 모든걸 훌훌 털어버린채 잊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또다른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아빠라는 사람들이 몹시도 밉고 가증스러웠다.
뭐랄까...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존재의 이유가 있음을 완전히 부정당하는것-
누군가에게 온전히 잊혀지는 존재라는 것-
인간에게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있을까.
인간에게는 위에 해당하는 본능 외 그 다음,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인정받고자 하는 본능과 무의식이 살아있다고 그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지 않을것이다.
어찌보면 우리 나라 역사에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
흔치 않던 혼혈아들.
흑인 모습을 한 한국 아이들.
그런 어두운 시대에 고통받던 여성들과 아이들이 있었다.
로즈는 국제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건너와 살면서 남편으로부터 8년 내내 갖은 폭력과 학대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한국말이 서투른 그녀가 답답했던걸까.
왜 그토록 잔인하게 아내를 대했던걸까.
2명의 아이를 낳고 살면서 그녀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낯선땅 처음 만난 남편 뿐, 그녀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로 줄곧 소외감과 외로움을 혼자 느끼며 정신적으로 늘 힘들었을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것이다.
이러다 아무도 없는 낯선땅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맞아 죽을것만 같은 두려움.
아이 둘을 데리고 가출을 감행한 그녀는 얼마 안되서 남편에게 붙잡히고, 남편은 그때부터 가정에 소홀했다는 이유(엄마, 아내로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가출했다는)를 앞세워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아이들과 격리시켰으며 위자료와 양육비까지 청구했다.
문화도 언어도 법도 다른 그저 낯선 땅일 뿐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그녀 자신은 점점 고립되어갔을게 뻔하다.
특히 물질, 돈은 사람을 가장 비참하고 나약하게 만드는 도구이다.
이혼 소송 과정, 준비와 그녀가 어디서 일을 했는지, 누구와 동거를 했는지 그 다음 행적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단지 로즈라는 사람이 그 힘겹던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했으리라는 짐작만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아마 남편의 지독한 그늘에서 벗어남만으로도 그녀는 잠시나마 행복과 안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오해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돈을 목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 자신보다 20세 혹은 30세 많은 한국 시골 남자와 국제결혼을 하는 모습에 눈쌀이 찌푸려졌을 뿐..
같은 여자로써 그녀들의 아픔을 이해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더불어 남편-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이렇게 지독하고 잔인한지 몰랐다.
처음 데리고 왔을 때는 그런 마음이 아니였겠지.
일종의 사랑도 했을것이라 본다.
시간이 지나고 사랑이 바래지고, 권태기라는 이름이 찾아오면 누구나 그렇듯 마음이 식을 수 있다.
하지만, 동등한 인격이라 생각을 조금이라도 품고 있다면 그런 취급을 하지는 않는다.
폭력이나 보험을 위한 살인, 살인 미수.. 강제이혼으로 위협하는 그들의 신원과 신변. 이어지는 범죄.. 흔한 뉴스 속 이야기가 맞으리라 추측한다.
그저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몰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나의 감정들은 추측이 아닌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고 남자들의 그런 마음이 참으로 미워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개XX 가 나왔다.
사람을 그토록 짓밟을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 말이다.
그들에게는 분명 홀로 버려질 외국인 아내가 약자로 보였기 때문에 마땅히 가져야할 인간으로써의 권리조차도 허락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것이 혹독한 괴롭힘으로, 학대로, 폭력의 모습으로 진화한것은 아닐까.
차라리 조용히 보내주었으면 어땠을까.
로즈는 원치 않았을까.
지옥같더라도 거주할 집과 의지할 남편, 아이들이 있는 그곳에 남아야만 했던걸까.
누구에게 극도의 불안감에 떨며 그토록 쫓기고 있었던걸까.
의미없는 질문들만 무수히 쏟아져나왔다.
결국 쓰라린 멍자욱과 가슴 속 억울함을 품고 버려졌을껄.
스스로 목숨을 끊었든,
동거남 혹은 타인으로부터 잔인한 죽임을 당했는지 알길은 없다.
로즈의 결말은 그녀의 가녀린 목을 관통한 긴 가위와 어설프게 쓴 유서 한장 뿐이었다.
죄 송 합 니 다
염병.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범죄 프로파일러 말에 의하면,
이 유서가 그녀의 상태를 대변해준다고 했다.
아마도 8년.. 기나긴 시간 속 그녀의 모습은 늘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른체 매맞고, 울고, 빌며, 매달리며 억울했을거다. 위협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해봤자 거기서 거기. 제자리 걸음, 절망감으로 꽉 채워져있었을 것이다.
그저 스스로 못나서, 모두 다 내 탓이라는 생각에 짓눌려 로즈 자신의 자존감은 바닥상태-
이 말에 심장이 떨어져 나갈것만 같았다...
나도 언젠가 했던 무시무시한 생각의 고리들.
그 연결 고리들의 끝엔 한없이 작아진 내가 초라하게 서있었음을 로즈를 통해 다시 보았던 것이다.
슬프고 애잔하고 원통했다.
내가 나이들어 더 무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함께 아파하고 싶었다.
그런 로즈가 죽을둥 살둥 힘을 다하여 견디려했지만 끝내 행복한 결실을 맺지 못한 억울함이라는 열매.
로즈는 그녀의 열매를 어떤 모양이든 마지막 순간 인정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서툴고 어설프게 쓴 낯선땅의 언어로.
마음으로나마 마음껏 슬퍼하며 로즈의 인생 한자락이라도 되짚어 그녀의 열매를 가만히 쓰다듬어주는 것이 매일을 시달리다 허무하게 가버린 그 소중한 영혼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로즈 그대를 존중하고 있음을
멀리서나마 느끼며 긴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