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 버린 그들의 공간-
왕래가 없다 하더라도 한번이라도 스쳤기에 인연이라 말하고,
함께했던 추억들이 있기에 그들을 친구나 지인이라 여긴다.
세상 속 떠들어대는 뉴스 속의 주인공이
나의 만남 속, 추억 속 그들이라는 생각은 접어둔 채 영혼없는 말로 중얼거린다.
'어쩌다 죽었대....'
가까운 사람에게 부고의 문자가 도착했다.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때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던 친구 하나가 우울증으로 뛰어내려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30대 중반에 아직 미혼인 그는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일하고 있었고, 어릴 적 순하디 순한 순둥이라 친구들의 가방을 잘도 들어주던 어리버리하지만 착한 녀석이었다고 한다.
중고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부터 약자와 강자의 위치가 가장 확실하고 저돌적으로 보여지는 시기가 아니던가.
쓸데없는 시간을 떼우며 영웅이 되고픈 질풍노도의 청소년시기- 보기 껄끄럽지만,, 나도 겪어봤기에 이해 못하는것이 아니므로 당연한듯 현재도 과거도 그러한 일들은 여전히 건드릴 수 없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간단히 들은 이야기를 전하자면,
최근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강남위치 꽤 잘나가는 룸쌀롱 아가씨였고 접대든 회식을 통해 그곳을 드나들기 시작하며 만남을 가진것으로 보였다.
친구는 그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의 직업을 남자로서 두고 볼 수 없어 몇 천만원에 달하는 빚을 갚아주었다. 둘은 한달에 몇백 가까운 월세를 내며 강남 오피스텔에서 함께 은밀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그 친구가 죽음을 선택하기 바로 전까지도 다른 친구들이나 가족, 주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했다.
나름 잘 나가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해도 월급쟁이는 월급쟁이일뿐이다. 그는 그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그의 월급을 탕진했을것이며 신용대출로 화려한 그녀의 욕구를 대신 채워주었을것이다.
그녀도 그와 같은 시선으로 사랑 했을까.
마음만 먹는다면 하룻밤 그녀가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는 일반 사람의 한달 월급이 훌쩍 넘을수도 있는일이다.
그녀의 직업 특성을 잘 알고 싫었기에 빚을 대신 갚아주었지만 일을 그만 두지 않고 끝내 거짓말을 들켰던 것같다.
돈에 대한 알 수 없는 욕구와 갈망은 -
갈증의 연속이다.
채우려하면 더욱 채워지지 않는 깨진 장독대와 같고, 쫓을 수록 더욱 멀리 날아가는 가벼운 깃털처럼....잡았다 해도 언제 손 사이로 빠져 나갈 지 모르는 위태로운 물질이다.
그러면서 마찰은 시작 된 것으로 보여진다.
만남은 겨우 6개월 남짓.
'니가 원하는 것들과 명품들, 보테가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
자필의 유서.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순간, 보테가 브랜드가 사람목숨보다 귀해지는 순간이었다.
친구들 다 가지고 있는 샤넬 하나 없는 나지만, 그깟 보테가가 뭐라고...헛 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물질보다 우선 순위로 따져야 할 것들은 무수히도 널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망설임도 없이 12층에서 뛰어내려 아까운 그의 영혼을 하늘에 흩뿌렸다.
이야기의 끝을 맺던 지인은 한참을 투덜거리며 하염없이 욕설을 허공에 내뱉었다.
그때 뭔지모를 마음이 전달되었다.
투덜거림은 죽은 그를 여전히 보내지못하고 끝까지 붙잡고 싶은 심정이라는것을...
잘 알지도 못하는 그의 죽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해줄 말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인에 대해 함부로 떠들고 싶지 않아 말없이 들어주었다.
그저,,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순응해야하는 것들이란 알수없는 감정으로 뒤범벅된 채.
이야기의 내용과 그만의 사정이 어떤 모습이든, 분명 괴로움과 그 어떤 고통에 시달렸음에는 틀림없었을거라 짐작이 갔다.
어찌되었든 사람 사이 일어나는 모든 관계와 감정이라는 것들은 포장되어 보여지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짓눌려가는만 가는 돈의 그림자, 그럼에도 더 해줄 수 없음에 어쩌면 본인 스스로 무능력하다 낙인을 찍었을지도 모를일이고, 결코 같은 시선의 사랑이 될 수 없었음에 한없이 슬프고 한편으로는 격한 배신이라는 감정도 공존했을것이다.
만약 그것이 살면서 처음 느낀 그만의 순수한 사랑이었다면- 두번 다시는 오지 않을것만 같은 그런 달콤함에만 집착했던거라면-
많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선을 긋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바보같은 짓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단지 죽음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벗어나기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넋두리도 잠시 지껄여본다.
나는 천천히 비록 간단히 전해들었지만, 유서의 내용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써내려갔던 로즈의 죽음과 같은 패턴... 스스로 잘못한게 없었음에도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 분명 둘은 다른 관계의 틀과 상황을 이루고 있었지만 나에게 보여지는 그들 감정의 공통점이 억울함과 낮은 자존감이라 여겼다.
자존감이란, 현재 최고의 기록을 세울지라도 언제든 나도 모르게 그 기록이 바닥을 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느껴본 바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하면서 나타나는 우울한 감정의 증세를 느낄 때 일기의 형태나 메모를 적어 남기는 경우가 참 많다고 한다.
글을 써서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압박과 불안이 해소되며 억눌린 자신의 감정을 어떤 경로로든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쉽고 좋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다행히 나는 아직 살아있다.
글을 써내려가며 상처났던 마음에서 잠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시선을 돌리니 또 다른 희망이란 끈을 붙잡게 되었다.
나의 상처를 올려다보는것이 아니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 상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직은 어떻게든 덮을 방법을 찾아나섰기에 조금 더 노력을 해보는 중이다.
그래, 상처를 마냥 덮어둔다고 아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살이 돋도록 최대한 뭐든 해볼 수는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가 희망이 될 것이므로 앞으로도 나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것이다.
나의 빈 공간만을 허무하게 바라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그들의 상처가 새살이 되어 돋아나지 못함이 왜이리 가슴 아픈지.
늘 나의 몫이 아니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보기도 한다.
좀 더 따뜻해질 방법은 없을까,
누구를 대하더라도 좀 더 관심을 가져보는것이 어려운 일은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유서 대신 해소의 글을 써내려가는것이 불필요하다 느꼈거나 아니면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소중한 목숨 하나를 건질 기회가 분명 어딘가에는 있었을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부르르 떨리는것을 느꼈다.
더 가까운 사람의 일이라면....하고 말이다.
최근에는 혼자만 우려했던 나의 가까운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전해듣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 만났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
그와는 15년이상 연락이 끊긴 상태였지만 최근 친구들을 통해 전해들었다.
우울증 혹은 약물과다로 인한 죽음이라는것 밖에는 달리 아는 내용이 없다.
그렇게 아까운 젊은 인생 또 하나가 끝나버렸다.
자신이 속해있는 울타리가 전부가 아닐텐데,
그들은 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조금만 더 버텨보지 않았을까.
아님 나의 상상 이상으로 버틸 수 없을 만큼 그들은 한없이 지쳐 영원한 세상으로의 단꿈만 바라본걸까.
그들 마음에는 언제부터 싱크홀이 생겨버린것일까.
빈공간을 채울 길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다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비참함..마음 한 구석 울분의 도가니. 시끄럽도록 외쳐대는 비명소리-
그렇게...
귀를 막고 싶었나보다.
눈을 감고 단잠을 자고 싶었나보다.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고 싶었나보다.
웬지 모를 씁쓸함만이 맴도는 새벽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모두 내 주변 어딘가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그 사람들.
그들의 자리는 그렇게 소리없이-
그 곳을 가만히 비워 둔 채
서러움을 움켜쥐고 텅 빈 공간으로만
기억 속에 남겠지..
나 역시 허공을 향해 투덜대고 있었다...
요즘 하늘에 잔뜩 낀 먹구름들처럼 내 이야기는 우울의 끝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였지만,
이렇게 스산함이 깃든 오후엔-
햇님이 얼굴을 내비치는 기분 좋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나의 글에는 햇님이 없어진 지 꽤 오래됨을 스스로도 느낀다.
방글거리는 햇님같은 해맑고 기분 좋아지는
글을 언젠가 진솔함을 담아 쓰기를 기대해본다.
오래 전 묵혀두었던 Empathy'를 다시 펼쳐본것은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SELAH
April 8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