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2)

by jina S Kim




'감사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19500이 찍힌 영수증과 책을 건네받고 어색하고도 황급하게 돌아섰다.

웬지 책을 받아들고 나오면 당당할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너무 오래 이 서점에 머무른게지.. 쪽팔려'


일단 구입할 책이 확실했고,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섰다해도 단 5분정도면 끝이 나 돌아설 수 있었을 텐데..

좀 전 급박했던 순간에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 당당함은 커녕 위축된 마음이 더 컸다.

방금 전 일어난 그저 작고 사소한 해프닝에 과민한 반응을 떨쳐 버리고 싶어 좀 더 어깨를 펴고 발을 힘차게 구르며 걸어 버스 정류장에 다달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머리가 묻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나에 대해 질문을 던져댔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조급함만 가지고 안달복달하는건 아닌지..
그저 손에 쥐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일거라 여기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렇게 손에 넣어도 웬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오는건 아닐까....하고 순간 드는 위협적인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산 이 책-


책을 손에 넣기 위해, 비싼 이 책 값을 치르기 위해, 그 서점 안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식은 땀까지 흘리며 했던 노력들에 대한 이유는 곧 집착으로- 지갑 안의 재정 상태를 미리 돌아 볼 여유도 없이 서점 안으로 돌진했던 이유는 무모함으로- 다가온 나의 착찹한 심정은 마음 구석 구석에서 제멋대로 널뛰기를 해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지갑 안의 재정 상태와 연결지어보았다.

현재는 집착과 무모함으로 똘똘 뭉쳐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갑이라는 사물이 무한하다는 생각이 들자 나의 재능 역시 발견을 못했을 뿐, 꺼내어보면 분명 엄청 날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그 안에 백원이 있던 백만원이 있던 간에 언제든 노력해서 지갑의 주인이 채워넣어주면 그만인 것을 그 지갑을 채우기 위해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는가 나 자신에게 다시금 묻는 기회가 되어 서점 안에서의 혼자만의 작은 소동은 창피함이 아닌 감사함이 되어 있었다.


'그래... 내가 하고자하는 일을 위해 달리고 있지만 결국 얼마나 채우느냐에 따라 달린거지..힘내자. 으쌰-

내 지갑이 지금은 가벼워도 내 재능은 무한해-'


최면을 걸듯 중얼거리며 정류장 안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발견하고는 얼른 줄을 서기 위해 생각을 잠시 멈추고 가방 안 지갑을 다시 꺼내들었다.


'띡-'


아직은 퇴근 시간이 되기 전이라 여유감이 도는 버스 안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무표정에 회색 빛이 감돌았고, 그 중 유난히 더 어두운 낯빛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사로 잡혀 자리가 많이 비어있는 뒷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덜컹 덜컹 버스는 힘차게 달렸다.

한동안 달리다보니 다시금 하던 생각에 자연스레 젖어들었다.


사실 서점에 들어서기 전 지갑 안을 확인만 했더라면 그 안에서 그렇게 좌절감을 맛보진 않았을것이다.

얼마전 공모전에 떨어진것이 떠올랐다.

한동안 가슴 속 열정이 불타오를것만 같아 방안을 서성이기만 하다 시작된 글쓰기.

열정이 집착이 되어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글쓰기에 도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알면서도 뛰어들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여기까지 온것이 아닌가.

나의 재능을 탓하진 않았다.

다만,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나의 자세에 화가 조금 났을 뿐.. 불타오르는 열정이 전부가 아닌데- 매달리고 있는 그 집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웃기지만 열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 사진을 찍고 스투디오에 취직을 했을 때만 해도 그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일만 주어지면 여기저기 발길이 닿는 곳 어디로 달려가 평일도 주말도 없이 일만 해댔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매일이 야근이었고, 매일이 출장이었다.

몇년을 그렇게 일하다 몸에 이상이 생겨 방황을 하게 되었다.

끝없는 무기력함에 시달리며 좌절감을 맛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다시금 일어설 수 없었다.


'그때도 나에게는 여유로움이란 손톱만큼도 없었어. 그저 바쁘게 달려온 시간들에게 분명 무언가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을거란 욕심때문에 쉼없이 더 뛰기만 했지...'


당시에는 해가 뜨면 출근해 늦은 새벽에나 겨우 새우잠을 잤다. 늘 잦은 출장과 회식 자리에서 선배들의 잔 신부름도 마다하지 않고 온갖 비위를 맞추며 뛰어다녔고 집에는 몇 달에 한번씩 들어와 옷가지만 챙겨가는 것이 전부였기에 내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본 게 언제적인가 싶을 정도였다.


가족과의 식사나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었기에 몇 년간 연애는 꿈도 못 꿔본 삶이었다.

내가 좋아서 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 열정의 불씨가 몸에 붙었지도 모르고 있었기에 더욱 활 활 타올랐을지도...


오롯이 나를 위한 단 하루의 시간도 허락해주지 않았던 직장을 위해 몸을 바쳐 일했지만 정작 몸 상태가 나빠지자 작은 위로나 따뜻함은 커녕 오히려 더 살벌한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로 들어온 신입에게 밀리는 느낌은 매일같이 나를 악몽으로 몰아세웠고 말을 듣지 않는 내 몸은 절벽에 데롱데롱 매달린 채 바둥대기만 했다.

그럴 수록 좋아하는 일이였지만 제대로 된 성과도 없이 선배들에게 욕을 먹으며 견디기 힘들어 제대로 발 붙일 곳조차 없는 답답함을 느꼈을 때 깨달았다.


이대로 살다간 제 명에 못죽지!


그리고 그 끈을 놓았다.

끈을 놓고 나니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이 밀려오긴 했지만 속은 후련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할머니가 계신 미국 고모집의 더부살이를 자청했다.


'자 유 다 '

그 곳 생활은 더 없이 편안했다.

어느 손자 손녀보다 끔찍히 사랑해주시는 할머니는 기력도 그대로셨고, 나를 보자 더욱 화색이 돌아 젊어보이기까지 했다.

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무엇이든 먹이려하셨고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는 많으셨지만, 그 눈빛에서 만큼은 낳아준 부모님 보다 더한 사랑이 실려있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눈빛과 손이 참 좋았다.

늘 오후 해질 무렵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할머니와 손을 잡고 초록이 번져있는 집 앞 공원을 산책했고 늘 시끌벅적한 풍성한 식탁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나누는 평화로운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고모는 아이가 둘이나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를 큰 딸인양 자기 친 자식보다 더한 사랑으로 대해 주셨고 독립을 한 후에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 서른 살이 된 나의 안부를 항상 제일 먼저 물어 오셨다.

고모부 역시 고모와 연애 시절부터 죽 지켜봐왔고 무뚝뚝하고 바쁜 아빠와 비교가 더 잘 될만큼 자상하고 유한 분이셨기에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어릴 때는 놀이공원도 함께 가고 늘 정성스러운 카드와 선물을 가득 안겨주었던 고모부가 키다리 아저씨는 아닐까..하고 12살때까지 남몰래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일을 그만 두게 된 사정을 뒤늦게 알렸을 때 누구보다도 큰 위로를 해주셨던 분들은 할머니와 고모 가족이었다.

아빠에게는 전화 한통이 없었지만 섭섭하지 않았다.

놀고 있으니 미국으로 들어오라고 하루 건너 한번씩 새벽에 전화로 성화를 부려주는 통에 성가시기도 했지만 누군가 나와 함께하고 있음에 고마웠다.

그 분들의 존재는 부모의 부재에도 언제나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외롭고 그늘지게 크지 않도록 그나마 지금의 나와 나의 삶을 지켜주고 붙들어 주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속 마음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그게 언젠가는 될테니-


그 고마움을 잘 알기에 할머니와 고모 가족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로하고 지내는 동안 큰 딸같은 살가움으로 마음을 표했다.



오래 전부터 사진은 그렇게 구석탱이 숨어있는 나의 외로운 마음을 너무나 잘 다독거려주었다.

렌즈 안을 통해 비춰진 풍경들은 내가 경험해 본 세상과는 다른 듯 신비하게 다가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면 이상할 정도로 내 심장은 쿵쾅거렸다.

내가 접해보고 싶은 세상이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아 그 곳을 찾기 위해 쉼없이 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1호로 지정해 둔 나의 보물은 고모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진반에 들었을 때 사주신 카메라다.

그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준 첫 번째 남자가 아빠가 아닌 고모부라는 사실이 가끔 가슴 속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도 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사진에 매달렸다.


그 후 일터에서 본 카메라 안의 모습은 보면 볼 수록,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삭막해져 감을 느꼈다.

렌즈 안의 세상은 이제 내가 꿈 꾸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비추었고 그렇게 변해만 갔다.

아니, 그 모습은 그대로 였겠지만 나의 시선이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다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아름다워보이지 않을 때 그만 두어야 한다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너무 슬퍼서 너와 절교하겠어- 실망감에 결심을 하고는 목 놓아 울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지만,

그것이 카메라나 사진의 문제가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내 안에 아빠에 대한 분노가 일고 있는 것을 느꼈다.

늘 하고자하는 것을 반대만 하시는 분.

엄마가 돌아가시자 새로운 여자를 나에게 엄마라고 데려오셨던 분.

사진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냉정하게 지원을 끊고 쫓아내며 했던 지독한 말들 때문에 나는 늘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가 나고 있어도 치료할 수 없어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언제나 혼자만 잘먹고 잘살고 있는 그런 분.

그렇게 아빠를 내 마음에서 버렸다.

언제나 아빠 대신 나를 안아준 것은 할머니와 고모 가족이었다.

그런 것들로 인해 할머니에 대한 나의 마음과 생각이, 또한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빛이 더욱 따뜻하고 애절하게 통하는 것이 아니였을까.

그래도 불쌍한 동정이나 싸구려 연민이 아닌것에 늘 감사했다.

언제나 진심을 다해 나를 사랑해주고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고 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모, 할머니 오늘 뭐하셔? 나 없다고 고모한테 잔소리만 늘어나고 있는거 아니야?'


문자를 보내자마자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고모의 답장이 왔다.


'새벽에 문자질은...안그래도 할머니 잔소리가 더 느셨다. 너 없으니까 금방 또 외로우신가봐-'


'에이.. 어차피 안자고 있는거 다 알거든. 그리고 당연한거 아냐-우리 할머니한테는 내가 최곤데- 그러니까 고모도 할머니가 좀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해. 또 싸우지 말고.. 한동안 여기 있으려고.. 하다 안되면 도움 요청할께. 아무 걱정마시고-'


'어련하시겠어.. 연락이나 자주해 이것아.

밥 잘 먹고 아직 상태가 좋아진 건 아니니까 건강챙겨야해.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알리고'


엄마한테 받아야 할 연락이지만, 엄마가 없는 나에게 이렇게 따뜻한 말이라도 전해주는 고모가 있으니 참 다행스러웠다.

고모가 엄마가 되어 줄수는 없지만, 친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도 고모처럼 나에게 대해주셨을까. 잠시동안 의구심을 품었다. 20대까지도 늘 이런 생각을 해왔다. 고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집에 도착하니 이제 5시 반-

배고픔에 옷 갈아입기 전에 얼른 라면 물부터 끓이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 도착하자마자 당분간만 지내기 위해 고모 친구 분을 통해 싼 값으로 월세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내부에 기본적인 가구들과 전자제품이 잘 구비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가격이었다.

고모의 입김이 작용도 했을것이고, 다 큰 여자애가 혼자 살것을 걱정한 할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고모가 감시하겠노라 할머니의 역정을 달래놓으신 이유도 있었다.

짐이라고는 옷가지가 들어있는 큰 가방 두개가 전부였고 그것 마저도 정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편하게 생긴 아무 옷이나 갈아입고 나와서 팔팔 끓고 있는 냄비 속 물에 라면을 담그며 콧노래를 불렀다.

뜨거운 라면 냄비를 옮기려다 보니 어디갔는지 받침이 보이질 않았다.

워낙 음식을 천천히 먹는 편이라 살짝 덜 익은 상태로 불을 끄고 불기 전 재빨리 입에다 밀어넣는 게 습관인 나로썬 라면 받침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여간 밉살스러운 일이 아니였다.


'짜증나-이놈의 라면 받침.'


뜨거워진 손가락의 감각 때문에 어디에든 놓아야할 것만 같아 아무 생각없이 보이는 책 위에 라면 냄비를 던지듯 놓았다.


'아 배고파....'


입 안 가득 침이 고였고, 김치 하나 없이 라면을 먹어야 하는 조촐한 식탁이 안쓰럽게 느껴지긴 했으나 아무려면 어떤가 온 집안에 가득 퍼져버린 기분 좋은 라면. 징징거리며 꼬르륵 거리는 배를 살살 달래며 빨리 크게 한 젓가락 가득 라면을 집어 최대한 낼 수 있는 입의 압력을 이용해 후루룩하고 흡입했다.

한 서너차례 더 흡입을 하고 나니 처음 느꼈던 그 라면의 매혹적인 자태는 사라지고, 김치가 없음에 아쉬워하고 있을 즘..아까 서점에서 구입했던 새 책과 눈이 마주쳤다.

그 녀석이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너무 한거 아니냐- 새로 산 책인데..라면 받침이라니...'


'음. 아무렴. 예의가 아니지.'


미안한 마음에 라면 냄비를 밀쳐내고 책을 집어 들었다.


... 류한 작가....


익숙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이름.

보고픈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처음부터 본 적도 안 적도 없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인 듯한..

그런데 이상하게 아.픈.이 름.


<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