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나 Jul 27. 2021

황선우를 보면서 아사다마오를 떠올리다

황선우가 수영괴물로까지 불리며 연일 화제다. 다들 그의 기량에 환호하고 경기마다 지켜보고 국뽕에 취하는 것도 이 때는 괜찮아 즐기고 있다. 황 선수, 그래 훌륭하지, 훌륭하고 말고.


그런데 나는 이런 천재들을 볼 때마다 그 옆에서 있는 다른 선수들에 감정을 이입한다. (그래서 경기 보는 걸 즐기지 않나 보다.) 바로 옆에서 숨차게 물을 가르고 있는 저 선수도 황 선수만큼 열심히 훈련 했을텐데. 어쩌면 황 선수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했을 수도.


모든 국민이 김연아에 반했던 시절에도 나는 아사다마오에 눈길이 갔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그러니까 3단 점프를 얼마나 완벽하게 해내느냐 여부와 관련해서는 그녀도 김연아 못지 않았다. 다만 손톱의 끄트머리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동작을 만드는 김연아의 표현력은 감히 따라가질 못했다. 두 선수가 계속 마주치면서 아사다마오가 무언가 해보려는? 시도는 보였지만 영 어색했다. 내가 아사다마오였다면 연골이 녹을 정도로 연습을 하면서 하늘을 저주했을 것이다.

 

강다니엘에 잠깐 입덕했던 프로듀스101을 볼 때도 그랬다. 예쁘고 어린 남자애들이 이게 마지막 기회라며(10대가 왜?) 땀을 흘리는데, 그 땀의 양만큼 순위가 매겨지는 건 아니었다.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실력도 기가 막히지만, 끌리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매력은 연습한다고 느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돌의 세계에서는 타고난 매력이 곧 재능같았다. 강다니엘은 노래를 정말 못했다.

 

될놈될이다. 세상의 성취는 대부분 타고난 놈들이, 그 다음에 피나게 노력한 범인이 이룬다. 천재만큼 재능은 없었지만 평균 이상의 비범함을 보이며 죽도록 노력한 자는, 천재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아마도 가장 절망적인 사람일 것이다. 아사다마오처럼.  


될놈될론을 신봉하는 나지만, 요즘 7살짜리 딸을 둔 엄마로서 그녀에게 그릿(grit)을 강조한다. 남의편에 따르면, 문제집 제목에 그릿이 들어간 게 많다고 한다. 노력해서 얻는 성취, 나같이 평균의 사람들에게 그건 분명히 작동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인류의 몇줌에 해당하는 천재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을 때마다 그냥 좀 우울해진다.

 사진은 될놈될론에 입각했을 때 피아노를 전공할 필요가 없는 설하의 모습. 7세. 2021년 8월.

매거진의 이전글 '드봉'을 아십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