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헤야, 나의 망상도 이제 끝이로구나
청와대 너머 집을 두고 시내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청와대를 끼고 신호가 적은 길에서는 항시 검문을 받았다. 짧은 질문을 던지는 찰나 빠르게 차안을 스캔해야 하는 경찰은 항상 너무 덥거나 혹은 많이 춥거나, 또는 굉장히 지루해 보였다. 그래서 더 꾸벅 인사도 하고 활짝 웃어주기도 했다. 물론 그에게 도움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에 대한 개인적 측은함보다 실질적인 문제는 이런 검문이 발생 가능한 어떤 위협을 예방할 수 있는가이다. 나의 황당한 상상을 예로 들자면. 검문소를 지나칠 때마다 "내가 끔찍한 훈련을 견뎌낸 암살자라면, 지금쯤 누구 목 하나 땃겠구만!"하는 한심한 허풍. 임신했을 땐 불룩 나온 배를 확인받자마자 바로 지나가면서, "알고보니 이게 태아가 아니라 바가지라면?"하는 이상한 가정. 뒷자리 카시트에 앉은 아기를 본 경찰이 그대로 보내주면 또 "이 아기는 어디서 납치했고 나의 임무(?) 수행 뒤 버려질 계획이라면?"하는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 깨진 유리창이론을 들어 검문의 효용을 얘기할 수는 있겠다만, 투자(경찰인력 소모와 권위적인 정치행위라는 해석) 대비 기대이익(대청와대 테러 예방과 센놈이 누군지 알려주는 구식 권위 획득)이 너무 적은 게 아닐까.
더 중요한 얘기는 여기서부터다. 장소에 대한 기억과 이제는 바뀌었다고 하나 어쩌면 다르지 않은 현재.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는 불과 몇년 전 경찰에 가로막혀 피눈물을 흘렸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이 서글프게 겹친다. 또 여전히 '순수한' 보행자가 될 수 없는, 그래서 50년만에 개방된 청와대 앞길에서도 여전히 불청객이자 차단 대상인 해고노동자의 절규가 아프게 맴돈다.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한 치라도, 세상이 옳은 방향으로 움직여 준다는 확신이 선다면 나의 한심한 상상놀이도 풀이 죽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나아지고 있는 거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