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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Jul 19. 2017

아줌마라니, 내가 아줌마라니.

이언주 의원을 통해 본 아줌마의 일터

아줌마라니, 내가 아줌마라니. 아무리 상냥한 얼굴로 말을 걸어도 일단 '아줌마'로 불리고 나면 미간에 주름이 잡힙니다. 물론 '아가씨'라고 불리던 20대가 그리워서인 것도 없진 않겠습니다만, 이 불쾌함은 원천은 아줌마의 사회적 지위 때문입니다. "저 무시하세요?"


그렇습니다. '아줌마'로 호명되는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이나 처우가 매우 낮습니다. 이들은 번듯한 정규직 직장에서 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회사원'으로 불리지 못하고 백화점에서 소비력을 자랑할 수도 없기 때문에 '고객님'도 되기가 힘듭니다. 아줌마는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여성에게는 결코 쓰지 않는 말입니다.


논란이 된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의 표현처럼, '밥 하는 아줌마'가 대표적입니다. 식당에서 주걱을 들었든 사무실에서 빗자루를 쥐었든 '아줌마'는 대체로 못 벌고, 그래서 어디서나 무시 당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여성단체 뿐 아니라 노동계까지 관련 문제를 여성혐오, 여성비하로 보는 이유입니다. 여성이슈이자 노동이슈인 것입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막말 논란의 본질에 대해 "여성 노동자의 지위가 낮은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일터로 가봅시다. 아줌마들은 주로 전통적으로 여성이 가정에서 대가 없이 해 왔던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집에선 공짜였기 때문에 시장도 저평가하는 걸까요. 최저임금은 감지덕지입니다. 18일 열린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정책 포럼 '남녀임금격차의 실태파악과 해결방안 모색'에서는 이런 사례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남녀 임금격차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줌마의 일터는 또 육체노동이라는 이유 자체만으로 평가절하 되기도 합니다. 조리사들은 "그냥 조금만 교육 시키면" 일 할 수 있다는 이 의원의 발언이 이런 현실을 극단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냥 몸만 쓰면 되는 일이니까 '진입장벽'이 없는 쉬운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장시간, 고강도, 저임금에도 아줌마들은 할 말이 없다는 논리가 나오는 거겠죠.


이 의원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발언은 여성과 노동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함축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월급 타 먹는 존재'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전업주부를 비롯해, 재생산 서비스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말입니다. 또 육체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대우 역시도 보여줍니다.


변호사를 거쳐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 의원 입장에서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아줌마 소리를 들을 일이 없었을 겁니다. 이 의원처럼 이른바 ‘엄친딸’은 아니지만 저 역시 주걱 대신 컴퓨터를 들고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일터에서 아줌마로 불린 적은 없습니다. 기존에는 남성들이 하던 일이고 사무실에서 주로 하는 일이 많으니까요. 더 정확히는 '아줌마가 몸을 쓰는 일'은 아니니까요.


이쯤되면 아주머니의 친근한 표현인 아줌마라는 호칭이, 한국 사회에서는 왜 그저 낮춰 부르기만 하는 말이 됐는지, '국민'을 입에 담고 사는 국회의원이라면 이번 기회에 숙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이든 화이트칼라 노동자든, 식당에서 일하든 사무실에서 일하든 더 귀하고 천한 일 없이, 사회 전체가 필요로 하는 일을 나눠서 할 뿐이니까요.


뒤끝작렬 란에 [이언주 의원을 통해 본 '아줌마의 일터']란 제목으로 나간 글. 원래 기획발제를 했으나 킬되고 칼럼형식으로 돌려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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