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서열 상 나보다 밑에 위치한 자가 나의 입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낼 때, 나는 그 자체로 열받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반항하는 건지 아예 모르는 걸까, 살짝 둔한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는 항의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아직 진화가 덜 된 인간이나 할 짓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수렵 채집 생활에 익숙해진 디엔에이로부터 여태까지 조종당하는 숙주 놈이로구나, 한달까. 도전을 받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하세효? 실제로 자신의 신념이나 지위에 도전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의 뇌를 영상으로 스캔하면, 맹수에게 쫓길 때와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고 한다.
나를 열받게 하는 건 논리가 딸리는 되지도 않는 주장을 접할 때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 끝까지 밀어붙여서 무릎 꿇고 울 때까지 상대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고 싶다. 물론 상대가 논리적 정합성을 갖췄느냐 여부가 철저히 내 기준이라는 데 결정적 하자가 있고, 내가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 상대적 권위 약자는 자신이 혼난다고 생각하면서 '너 이런 걸로 열 안 받는다며' 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론 같은 상황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손목을 걸고 다시 한 번 선언하건대 내 권위 자체에 도전했다고 열받는 일은 결코 없다. "너 지금 항명하는 거냐"라는 지적을 받았다며 속상해하는 후배가 있길래 "우와, 그 대사가 진짜 입에서 나왔어? 뉘앙스가 아니고?" 하면서 내 입장에선 상상하기 힘든 발화 상황을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아, 애초에 도전받을 권위가 없을 수도 있갔구나.
무능한 동의보다는 유능한 반대가 좋기 때문이다. 의존할 수 있는 적이 있다는 것은 하찮고 하찮아서 발전의 필요성이 간절한 나에게 되레 반가운 일이다. 오, 유능한 나의 적이 이렇게 하네? 그렇다면 이게 맞나 봐. 뭐 대충 이런 사고회로가 가능하다. 유익한 준거점의 존재는 언제나 환영 받을 일이다. "나는 무능한 사회주의자보다는 유능한 파시스트를 유산으로 갖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말은 조금 극단적 인용이긴 하지만 내 생활이나 삶에서 참으로 유용하다. 조금 더 확장해 보면, 누가 모기가 빤 피만큼 더 잘했나를 따져야 하는 우리 양당 정치 체제에 대한 비유에서 더더더 유용하다. (내가 외교부를 출입해 봐서 아는데~) 이번 정부의 거의 국가적 재난 수준의 외교 사태를 지켜보면서도 야당에 기대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서로가 상대 세력에게 배울 게 없는 너무나 무능한 존재기 때문이다. 이런 게 공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