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다. 열이 나고 두드려 맞은 듯이 욱신 거리고 목은 퉁퉁 붓고. 커피맛이 이상하게 느껴졌을 때도 혀가 부어서 그런갑다 했다. (지금 보니 빼박 코로나 증상이구나. 인간이 어찌 이리 무딘가.)
우천 때문에 결국 풋살 경기가 취소됐지만, 비는 비대로 쫄딱 맞아서인 줄 알았다. 경기를 앞두고 며칠 바짝 연습에 몰두해서 생긴 몸살, 근육통인 줄 알았다. 심지어 근육통을 느끼며 운동의 효능이라며 즐거워했다. 운동에 어린이날 연휴에 딸내미 뒷바라지 하다가 생긴 피로 때문에 원래도 약한 목이 좀 붓는구나 싶었다. 아파서 병원도 두 번이나 갔는데, 코로나일 리는 없다면서 정작 검사는 안 받았다. 식은땀을 질질 흘리면서 일했다. 미련한 것.
결국 코로나19였다. 코로나 창궐 기간 내내 제대로 마스크 안 쓰고 돌아다녀도, 팀원들이 돌아가며 감염돼 전력에 구멍이 숭숭 뚫려도 끝까지 나는 코로나와 인연이 없었다. 오죽하면 나한테 침 좀 뱉어달라고 했었다. 자녀가 걸리면 엄마는 세트처럼 당연히 감염된다는데, 딸내미가 걸렸던 기간에도 나는 오롯이 쌩쌩했다.
바이러스로 인류가 절멸 위기에 처한 SF배경에서 유일한 희망, 면역인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인가 보다! 이제 인체실험만 당하면 되는가 보다!라는 그간의 드립은 진단 키트의 선명한 두 줄로 한 순간에 개헛소리가 됐다.
아픈 걸 잘 참는 편이다. 턱이 부러지고 이빨이 다 날아갔을 때도 실실 쪼개고 다니니까 병원에서 의사가 "이렇게 다치고 이 정도 참으시는 분 처음이에요"했었다. 그 의사가 젊어서 경험 모집단이 작을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하루 정도가 찡찡댈 정도의 고통, 그다음은 미간에 주름을 만들 정도의 아픔, 확진 진단(23.5.11)을 받고 다음 날인 지금은 기분이 아주 좋다.
이게 다 병가 덕분이다 +_+
어제 오전 병원 문이 열기만을 기다렸다가 확진 진단서를 들고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우리 회사엔 코로나 확진자에게 격리기간인 7일에 해당하는 유급휴가 제도가 있다. 정부 방침에 연동되는 것인 만큼, 사실상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 어제 정부 발표 이후엔 축소 조정이 있을 게 분명하다. 한마디로 난 병가 막차에 탄 셈이다! 헉헉대며 버스에 타기 위해 뛰어오는 승객들을 내다보며, 나는 여유롭게 손을 흔드는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정신승리라는 게 무서운 거라서,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아프지만 "아, 나는 코로나야, 그래서 병가야"라는 걸 상기하며 웃게 된다. 변태인가.
병가 획득이란 단어에 도파민이라도 발라진 것처럼 즐거워하는 나를 보면서, 오늘 조간에서 열심히 살펴봤던 게 격리 의무가 '권고'로 바뀌면 직장인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정부당국은 '아프면 쉰다'는 방침을 제도화하라고 각 사업장에 전달했다는데 이건 그냥 닥치고 열심히 일하자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직장인들이라면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대목이다. 지금까지는 의무격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회사도, 향후에는 코로나 진단을 받기 전 나처럼 죽네사네 하면서 노동자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시킬 것이다. 최소한 재택근무라도 시키겠지. 병가 당일이었지만, 사실 나도 어제 발제해 놨던 기사를 마저 써서 출고했다.
수습기자 시절에 "니들은 아픈 것도 잘못이야"라는 말을 듣어야 했고 대가리가 좀 커진 다음에도 점심시간에 링거 맞고 일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코로나라는 전에 없던 강한 전염성 질병 때문에 '아프면 쉰다'는 명제가 폭력적이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 복무했지만, 주 60시간 근무(혼란 끝에 윤석열 각하께서 정리한 시간)의 도래와 함께 다시 반동의 계절이 올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