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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May 26. 2023

반 세기에 걸친 발달장애

미시마유키오 '짐승들의 유희'를 읽고 화가 나서 정리함 

내 주위의 또라이, 혹은 괜찮았던 사람의 일부 또라이성을 차근차근 발견하는 시절이라 "또라이는 또라이로 치유하자"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마침 헬스로 단단하게 단련해 놓은 게 아깝지도 않은지 스스로 배를 갈랐던 미시마유키오 책 '짐승들의 유희'가 있었다.

 

기묘한 삼각관계와 함께 연애소설 같이 시작하는 초반을 거치면서 "아, 모든 연애소설은 헤어지는 이야기지" 멍하니 읽다 제대로 망해버렸다. 자신에게 질투심을 보이지 않는 아내에게 사랑받기 위해 퇴폐적인 생활을 하는 남편 잇페이나, 남편의 행적을 꼼꼼히 살피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고통을 들키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름다운 아내 유키, 극복하기 힘든 남성인 잇페이를 선망하는 동시에 유키를 사랑하는 젊은 남자 고지...


아니 뭐 이런 등장인물 셋이 한꺼번에 중2병자!!! 전쟁에서 지고 황폐해져서 제정신을 잃은 60년대 일본을 비꼬기 위해 주인공들을 이렇게 설정한 것인가!!! 그러나 이상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두 연인이 병신이 된 남편을 살해하고 마침내 구원을 받는다는 결말은, 작가가 이 구상유취적 감성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확인해 줬다. 2023년의 내가 반 세기에 걸친 발달장애에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미시마유키오의 책이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출판될 수 있는 배경은 그의 문장 덕분이다. 탐미주의라고 불릴 만한 어떤 것들이 끈적끈적하게 문장들을 감싸고 있다. 물론 그것조차 불쾌함으로 끝날 때가 많긴 하다. 복도에 떨어지는 햇빛을 묘사하면서 "사랑했다. 수줍게, 열렬히. 어째서 저런 창에서 떨어지는 햇빛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은혜롭고 아주 거룩한 느낌이었는데, 칼로 토막 살해당한 유아의 하얀 몸처럼 마디마디 잘려 있었다" 하는 식이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예쁘고 감각적이기만 해서 오래가지 않는 감흥이다.

 

누군가 읽을 준비를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 읽을 책도 많은데 굳이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중2병 환자의 자뻑 글을 반 세기나 뒤에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오랜 시간 함께 중2병에 걸리는 기분에 사로잡혀 회춘하고 싶다면 권하는 정도다. 그저 어떤 정신상태에 있는 사람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지 배를 쑤시고, 그것도 제대로 한 번에 참수되지 않고 몇 번이나 썰리는지 알 것 같은 책이었다.    


+ 마침 미시마유키오 사진집 기억이 나서, 검색 끝에 가장 그럴 듯한 것으로 함께 게시. 병약해서 학창시절 '창백'이라고 불렸던 그는 몸을 만들고 자신을 모델로 한 사진집을 내는데~ 아 진짜 이 중2병에 나르시시즘 징하다. 성 세바스찬의 순교를 패러디한 건지 오마주한 건지 여튼 빤스만 입고 사진집을 빼곡히 채운 그는 분명 몸부심까지 있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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