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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Nov 16. 2022

기록 덕후의 일기 쓰기 예찬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


올해 #1주1글쓰기 외, 꾸준히 실천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일기 쓰기다. 디지털 플랫폼에 타이핑으로 기록하는 일상 말고 ‘손글씨’로 쓰는 아날로그식 일기.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지난 5월, 생일 달을 맞아 5년 일기장을 개시했다. 졸업 후 직장인으로 살며, 문학과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지만, 띄엄띄엄 써왔던 일기가 내 삶에도 한때 ‘글쓰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도와주었다. 한동안 멈췄던 일기를 꾸준히 쓰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이연 유튜브 – '일기를 쓰세요'


유튜버 이연을 좋아한다. 그림 그리는 영상을 배경으로, 그녀의 생각이 때로는 대화처럼, 때로는 내레이션처럼 흘러나오는 포맷이 듣기 좋다. 일기 쓰기에 대해 구글 검색을 한 적도 없는데, 1월 초,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 유튜버 이연님의 영상을 보여줬다. 제목은 '일기를 쓰세요' 요약하기 미안할 정도로 꽉 찬 내용이라, 풀 영상 꼭 보시길, 추천해 드린다. 나의 30초 요약 버전은 이러하다.



"모든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는데, 그 영혼이 가진 고유한 무언가를 기질’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로 여러 번 살아왔지만, 자꾸 자신을 까먹게 된다. 이유는 세상의 시끄러운 주파수 속에 파묻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자신을 기억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주파수가 없는 ‘고독의 공간’으로 가야 한다. 왜 굳이 자신을 기억하고 주파수를 찾아야 하나? 그것은 ‘성공의 비밀’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성공은 꼭 부자가 되거나 유명인이 되는 것이 아니요,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에게 맞는 삶’을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영혼에 말을 걸면 된다. 나의 영혼은 현명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미숙해 보이고 언어가 서툴면 말을 잘 안 해준다. 아예 대접을 안 해준다. 그래서 계속 일기를 쓰며 내 영혼과 대화하는 언어를 날카롭게 다듬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안고 사는 ‘불안감’이라는 것. 일기를 쓰다 보면 나의 본질과 불투명했던 미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불안감을 내려놓고 조금씩 확신에 찬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영혼이 대답해 줄 것이다. 여러분은 다 알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할 뿐..."


출처: <일기를 쓰세요>, 이연 유튜브



이연님이 워낙 말솜씨가 좋아서, 영상을 직접 보면 더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가 있으신 분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분신사바’ 같은 느낌이 조금 들 수 있지만, 내가 영상에서 취한 요지는 ‘일기를 쓰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녀가 추천한 ‘미도리 노트’를 구입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2. 김신지 작가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기를 써나가던 4월의 어느 날, 이 책을 만났다. 자기 계발 커뮤니티 ‘꿈공방’의 <글쓰기 북클럽>에서 만나게 된 책인데, 잠깐 읽다 자려고, 침대에서 잠시 펼쳐 들었다 한숨에 다 읽어버렸다. ‘기록’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때라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포켓 사이즈, 미니멀한 표지에, 작가만의 '기록 레시피'를 담은 차분한 문체뿐 아니라, 그녀의 기록 역사를 보여주는 예쁜 사진도 있어 읽기에도 매우 편했던 책. 좋았던 문구를 공유해 본다.




“오랫동안 한자리에 쌓여온 시간에 감탄하는 것. 그 시간을 볼 수 있도록 남겨둔 한 사람의 성실함에 감탄하는 것. 일기의 대단한 점은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하루치는 시시하지만 1년이 되면 귀해지는 것." (p.22)

"‘사계절 기록가’는 ‘사계절 관찰자’가 됩니다. ‘한 계절에 한 장씩’ 사진을 남기려면, 이번 계절의 가장 근사한 날이 언제일지 풍경을 곰곰이 지켜봐야 하니까요." (p.90)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지음



3. 브런치북을 위한 2년간 기록 모음


브런치에 <직딩의 미국 유학 일지>를 써 나가며, 처음으로 한 것은, 희미한 기억의 조각들을 모으는 작업이었다. 작년 겨울 한국에서 내 물건을 정리하며,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2년간의 기록을 이사 박스에서 건져냈다. 그 2년은 나의 삶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있던 시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걱정과 희망이 파도처럼 찰랑거렸던 시절, 불안감과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기를 많이 쓰기도 했겠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일기를 많이 썼기에 단기간에 많은 변화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유학을 준비하며 기록한 다이어리, 수첩, 쪽지를 한자리에 집합시키며 다짐했다. '앞으로 나의 기억을 좀 더 소중히 다루겠다고.' 여기저기 흩어진 기록을 연대기 순으로 짜 맞추며, 엉성한 정리 습관을 갖고 있었던 내게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한 곳에 제대로 기록해야겠구나’ 하던 차에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만의 반복되는 역사’를 쌓아보세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기록의 시작은 ‘적을 것’과 ‘적을 곳’을 분명히 하는 데 있거든요. ‘적을 것’은 나만의 테마를 찾는 일입니다. [중략] ‘적을 것’을 정했다면 다음은 ‘적을 곳’을 생각해 봅니다. 노트가 좋을지,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 부계정에 올리는 편이 적합할지, 영상을 찍는 것이 나을지에 따라 ‘기록할 장소’가 정해지겠죠. 그럼 모든 준비는 끝난 셈입니다." (p.84)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소개한 5년 일기장, 아마존에서도 구입 가능


이 책에서 김신지 작가는 본인이 애용하는 ‘5년 일기장’도 함께 소개했다. 브런치에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이 워낙 많으니,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이걸 아셨던 분도 있을 거로 생각한다. ‘5년 일기장’의 존재를 올해에서야 알게 된 나는, 이걸 모르고 살았던 세월이 조금 통탄스러웠다.


사진 속 5년 일기장은 사이즈가 작아 보였다. ‘인생은 장비 발’이라고 믿는 나는 5년간 나와 함께 할 일기장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Etsy라는 웹사이트에서 사이즈도 디자인도 딱 좋은 5년 일기장을 구입했다.


5년 일기장의 쓸모


지금 쓰고 있는 두 권의 5년 일기장

나에게는 두 권의 5년 일기장이 있다. 한 권은 매일을 기록하는 말 그대로 ‘일기장’이고, 다른 한 권은 ‘문장 모음집’이다. 작년부터 필사를 시작했다. 책을 하염없이 필사하다 보면 내 집중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문장을 음미하기보다, 베끼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사 노트보다는 '문장 모음집'을 쓰기로 했다. 5년 일기장은 줄 수가 겨우 다섯 줄. 오늘 읽은 책, 또는 영화, 유튜브, 또는 드라마에서 봤던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매우 ‘선택적으로’ 골라야 한다. 이렇게 매일 문장을 모으다 보면, 5년 후 근사한 문장 아카이브가 되어 있겠지.



5년 문장 모음집, 한때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독서 인증샷   © 지나쥬르


일기장도 마찬가지. 짧은 다섯 줄의 기록을 차곡차곡 모아간다. 이 글을 쓴 오늘은 11월 12일. 2023년 같은 날, 일기장을 펼치는 나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날 담긴 나의 일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벌써 궁금하다. 잘 쓴 글은 아니더라도, 내가 쓴 글 다시 읽어보는 것, 이거 꽤 재밌는 일이다. ‘오호, 내가 그런 생각을 했어? 이때 이런 일이 다 있었나?’ 하며 망각한 과거를 상기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더 조숙했던 나에 놀라거나, 나이 먹어도 여전히 유치 뽕이었던 순간에 실소를 터뜨리기도 한다.


5년 일기장을 쓰던 무렵, 때마침 6월부터 블로그에서 주간일기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올해를 과히 '기록의 해' 원년으로 명명한다 :) 이곳에서는 주중 있었던 일을 한꺼번에 정리해, #1주1포스팅을 했는데, 이때 5년 일기장에 쓴 내용이 ‘기억 회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명필은 아닙니다만, 샘플로 일기를 써보았습니다 :) 오른쪽은 5년 일기장 전체 모습   © 지나쥬르


일기교 교주의 일기 쓰기 예찬


근 1년 동안 일기를 매일 쓰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물어본다면, 땅이 솟아오르고 하늘이 열리는 변화는 아직 느끼지 못했지만, 다음의 장점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1. 하루의 방점을 제대로 찍는 느낌. 매일 기록이 한 권의 책에 차곡차곡 쌓여, 삶이 정돈되어 간다.

2.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나의 하루에 대한 책임감이 레벨업된다.

3. 의외의 개이득은, 생일 카드를 쓴다거나 손글씨로 뭔가 써야 할 때 두려움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4. 하루의 끝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혼과의 대화’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더 하고 싶은 것, 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예민한 촉을 키우고 있다.

5. 전반적으로 ‘쓰는 행위’가 좋아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손글씨로 일기를 쓰며, 블로그 주간일기도 시작했고, 브런치에도 글을 주기적으로 쓰게 되었다. 글감이 모자라면 안 되니, ‘글감 노트’도 적기 시작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꼭 일기교 교주가 된 기분인데, 날 데리고 일기 쓰기 실험을 해봤더니 좋은 점이 많았다는 얘기를 참 에둘러했다. ㅎㅎ 내가 해보고 좋은 건 자꾸 얘길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마지막으로 나의 기록 생활에 영감을 준 글귀를 공유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매일이 나의 역사입니다. 해가 뜨면 새롭게 시작되고, 자정이 되면 사라져 버리는 ‘오늘’이라는 시간. 어쩌면 할아버지들은 삶의 비밀을 일찍이 알아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삶으로부터 받는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지음,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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