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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Nov 26. 2022

레모나의 추억

엄마, 노을, 레모나


레모나의 '새콤달달쌉쌀한' 맛을 아는가? 비타민C의 신맛과 불량식품의 달콤한 맛이 밀당을 하는 와중, 병원 약의 쌉쌀함이 살짝 첨가된 그런 맛. 내게는 레모나가 딱 그런 맛이었다. 게다가, 엄마께 불량식품 대신 레모나를 사달라고 하면, 나는 불량식품 대신 건강한 비타민을 사달라고 하는 착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어릴 적의 기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마치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지나가며 만들어낸 구름 모양이 서서히 옅어지는 것처럼, 어느덧 희미하게 사라져 버렸다. 귀요미 조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어릴 적 기억을, 왜 어른이 되면 다 잊게 되는 걸까 싶다.


하지만 이렇게 깜빡이는 내 기억 속에도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는 어릴 적 기억이 하나 있다.




한 8살 때였나?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방에서 인기척이 있으니, 엄마가 오셔서 잘 잤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에, 해 질 녘 분홍 보라가 잔잔히 섞인 노을 지는 풍경에 왠지 기분이 이상해져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왜 우냐며, 내 이마를 짚어 보셨다.


“열은 없는데... 얘가 놀랐나?”


어릴 때 가끔 놀라 한약을 먹곤 했는데, 이번에도 놀란 게 아닌가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니,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뺨을 타고 죽 흘러내렸다.


“진아, 뭐 맛있는 거 사줄까?”


나는 울먹이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응... 레모나...”


© zenolens, 출처 Pixabay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살 수 있는 레모나는 당시 우리 집 형편에 조금 비싼 간식이었다. 나는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적당히 밀당을 하는, 작은 봉지에 들어 더 감칠맛 나는 레모나를 그렇게도 애정했다. 찌들어지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형제가 셋인 집이라 엄마는 항상 살림을 타이트하게 운영하셨다. 일인 가구인 나조차도 원하는 걸 내게 다 사주다 보면 살림이 거덜 나듯, 엄마도 세 형제가 사달라는 간식을 다 사주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 하나 키우는 것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데,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는 더 버거우셨을 거다.


아빠만 외벌이하시는 상황이 힘드셨는지, 우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피아노 조율사 일을 시작하셨다. 엄마는 항상 손이 바쁘셨다. 남편, 아이 셋 건사에, 피아노 조율사 일까지. 나는 그런 엄마가 힘드실 거라며 집안일을 쓱쓱 돕는 그렇게 기특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자고 일어나 우는 나를 촘촘히 살피는 엄마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다음에 사자고 하셨을 레모나를 선뜻 사 오라고 돈을 주시는 것도 왠지 미안했다. 하염없이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렇게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결국 레모나를 사러 나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별 이유 없이 우는 나를 엄마가 달래 주시던 한 30분간의 기억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남아있다.




그 30분의 기억이 뇌리에 박혀,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레모나를 몇 박스 꼭 챙겨 온다. 몇 년 전, 근처 한인 마트에서도 레모나를 판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건 확실히 다르다.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인 답은 못 하겠지만, 그냥 느낌이 다르다고 하겠다. 게다가 요즘엔 귀여운 카카오 캐릭터나 연예인 사진이 있는 한정판까지 출시되니 말 다 했다. 편의점 갈 때마다 레모나를 챙기는 걸 본 외국인 동료들도 그게 대체 뭐냐고 묻는다. 나는 장난치듯 대답한다.


“It's my comfort food!”


미국에 살지만, 입맛만큼은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의 컴포트 푸드(comfort food*)가 된장찌개도, 김치찌개도, 떡볶이도 아닌, 공장에서 제조한 레모나라는 게 참 이상하지만. 동료들은 그런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내가 산 레모나 한 봉을 열어,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고는 달콤 시큼한 게 맛이 좋다며, 자기네들도 몇 박스를 챙긴다.

어릴 적 다른 기억은 빛바랜 볼펜 자국처럼 희미해졌지만, 노을 지는 저녁, 엄마와 레모나에 대한 기억은 매직펜 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레모나는 영원히 내 마음속 컴포트 푸드로 남아있을 것이다.




고무줄과 땅따먹기하며 밖이 깜깜해질 때까지 놀던 말괄량이와는 다른 그런 모습이 내게도 있었다. 자고 일어나 해 질 녘 노을을 보며, 그 순간에 왜 눈물이 났는지, 아직도 그 기억이 떠오르기만 하면 왜 눈가가 촉촉해지는지 알 수 없다. 어린 왕자는 마음이 몹시 슬플 땐, 노을이 좋아진다고 했는데, 천진난만 8살짜리 꼬마는 뭐가 그리 슬펐을까. 엄마에 대한 미안함? 세상모르는 꼬맹이에 대한 연민? 인간의 근원적 슬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매년 겨울 한국에 갈 때마다 엄마께 얘기하고 싶었다.


‘자나 깨나 우리만 챙기던 엄마가 그때 좀 짠했다고. 선뜻 레모나 사준다고 해서 고마웠다고.’


하지만 막상 한국에 가면 이런 닭살 돋는 얘기를 꺼낼 틈은 없다. 어린 시절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나는 나대로 사람 만나느라 바쁘고, 엄마는 온 가족을 챙기시느라 여전히 몸이 분주하시다. 지금 엄마의 관심을 일빠로 받는 건 당연 귀요미 조카다. 할머니 옆에 따개비처럼 붙어 깔깔대며 노는 녀석을 옆에 두고, 무거운 얘기를 꺼내기는 좀 그렇다. 그렇게 우물쭈물 일상의 파도를 타다 보면, 다음 날, 다음 주로 자연스럽게 달력이 넘어가고, 어느덧 미국 출국일이 와버린다.


이번에 한국에 가면 용기 내서  얘기해 봐야지, 그리고 엄마의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서도 물어봐야지... 마음을 품어 본다. 그러다가도, 아니, 그건 너무 쑥스러우니,  글을 프린트해서  내밀어 볼까. '오다가 주웠어' 라며 츤데레 컨셉으로.



※ 컴포트 푸드(comfort food): 추억의 음식, 마음의 위안을 주는 음식. 직관적인 표현인 소울푸드(soul food)라 쓰고 싶었지만, 컴포트 푸드라고 한 이유는 소울푸드는 ‘미국 남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먹는 특정 음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김치는 나의 소울푸드’ 또는 ‘떡볶이는 나의 소울푸드’라는 표현을 종종 쓰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소울푸드와 가까운 영어 표현은 컴포트 푸드입니다.


※ 이미지 출처: Pinterest/Art Collection of MORNCOLOR,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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