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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Dec 11. 2022

춤과 글쓰기의 공통분모 5가지

글쓰기가 '기예'라고요?


춤을 좋아한다. 내가 추는 것도 좋고, 남이 추는 것을 마냥 보는 것도 좋다.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주로 보는 해시태그는 서너 개. #북스타그램 #1milliondancestudio, 그리고 내가 팔로우하는 작가님과 댄서들이다.


춤을 접하게 된 계기는 미국 첫 직장에서 임원 비서로 일하면서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날이면, 댄스 클래스가 시작하는 오후 5시에 맞춰, 사내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갔다. 처음에 그곳은 스트레스 해우소였지만, FM 같은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게 해 줄 것 같아서, 인생에 맛있는 양념을 쳐줄 것 같아서, 춤사위를 계속 이어 나갔고, 춤은 이제 일상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요즘은 ‘글쓰기’라는 새로운 취미를 키우는 중이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열 시간이 긴 편이다. 회사 일을 마치고, 이른 저녁 거실 식탁에 앉아 한동안 멍을 때린다. 온종일 비즈니스 이메일과 MS 오피스 프로그램만 만지다, 브런치 작가 모드로의 변신은 한 큐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댄스 클래스나 운동을 마친 후, 방방 뜬 상태로는 글쓰기에 집중하기 힘들다. 그래서 올해는 춤에서 잠시 떨어져 지냈다.


글쓰기와 춤,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애정하는 두 녀석을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감사히도 이웃 작가님을 통해, 소설가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글쓰기가 기예라고요?


출처: yes24.com

장강명 작가의 강의는 이미 유튜브에서도 몇 번 들었고, 워낙 이름이 알려진 분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은 처음 알게 되었다. 남다른 통찰력과 솔직함에, 홀린 듯이 쭉쭉 읽어 나갔다. 그러다 이 책을 다이제스트 버전으로 만든 EBS 강의까지 정주행하게 되었다. 가장 뇌리에 박혔던 부분은 바로 ‘글쓰기를’ 몸으로 배우는 ‘기예’에 비교한 챕터였다.


글쓰기는 학문이 아니라, 몸으로 터득하는 기예다. 기예는 기술과 재주가 합쳐진 말로, 즉 몸으로 익히고 갈고닦는 것이지, 배워서 익히는 것이 아니다. 문학가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고, 플롯 다루는 기술을 알고 있고, 작법서를 많이 읽었다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 글쓰기는 악기 연주, 춤, 수영, 리듬체조, 목공 같은 일이라, 이론과 상관없이 ‘몸’으로 배우는 것에 가깝다. (출처: EBS Class-E)


이와 함께 글쓰기와 기예에는 다음의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1) 초반에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많이 겪어야 한다.

2) 남이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3) 기예를 터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넘어지는 것’이다.

4) 심오한 기예일수록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의문점 말이다. 글 발행 전의 긴장감과 어색함, 아무리 피드백을 받아도 가슴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글 한 편을 끝내면 왜 자꾸 댄스 클래스로 달려가고 싶은지, 언뜻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는 글쓰기와 춤을 동시에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어떤 건지도. 둘의 공통분모를 대입해 보며, 더 신나게 춤추고, 더 재밌게 글쓰기를 이어갈 명분을 찾아본다.



1. 몸치는 없다? 글치는 없다!


거울 속 춤추는 내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그렇게 우스꽝스러울 수 없었다. 아니, 춤 선생이 하는 동작은 저렇게 섹시한데,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눈 뜨고 보기도 어색한 웨이브, 몸치가 따로 없군... 보통 이 구간을 넘기지 못한 지인들은, 본인은 타고난 몸치라고 설레발을 치며 춤을 포기한다. ‘세상에 몸치는 없다. 나도 한 몸치 했다. 연습하면 된다’고 여러 번 얘기해도, 절대 믿지 않는다.


출처: MBC-TV 마이리틀텔레비전

이렇게 지인들에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정말 몸치가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글쓰기에도 비슷한 의문점을 품고 있다. 글쓰기에 재능 있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장강명 작가는 ‘천부적인 재능’ 같은 건 없다고 얘기한다. 아직도 100% 믿어지지는 않지만, ‘글치는 없다’는 말, 왠지 철썩 믿고 싶은 말이다.


나는 댄스 클래스 맨 뒤 줄에서 춤을 춘다. 1) 이제 안무를 어느 정도 외우게 되었고 2) 뒤에서 보이는 넓은 전망이 여유롭게 느껴져서이다. 그러다 보면 앞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데, 보통 다음의 세 가지로 춤의 고수를 구별한다. 그루브, 손동작, 표정이 그것이다.



2. 그루브를 타보자 - 스토리텔링


첫 번째, 그루브 (리듬 타기) – 음악에서, ‘그루브’는 충동적인 리듬의 ‘필’ 또는 ‘스윙’을 의미한다. 춤에서는 음악에 맞추어 리듬을 자연스럽게 타는 것을 말한다. 하늘하늘한 몸을 타고나거나, 동작이 크고 열정적이면, 얼추 춤을 잘 추는 것처럼 보인다. 타고난 피지컬로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 진심으로 부럽다. 하지만 10분, 20분, 시간을 두고 리듬 타는 것을 보면, 춤이 얼마나 몸에 붙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느낌 있는 그루브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절로 흥이 난다.


글에서 그루브는 무엇일까? 글의 흐름, 스토리의 전개, 즉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싶다. 같은 글이라도 스토리텔링이 잘 녹아든 글은 읽기 쉽고 몰입감이 높다. 내가 쓴 글을 퇴고하다 보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흐름이 툭툭 끊기거나 스토리텔링이 탄탄하지 못하면, 아깝지만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써야 할 때도 많다.


오늘도 춤을 추며 나를 위로한다. 5년 전 거울에 비친 어색한 모습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글쓰기에서도 우스꽝스러운 단계를 필연적으로 거치고 있는 게 아닐까. 연습하다 보면, 글치 탈출과 함께, 언젠가는 멋진 그루브를 구사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3. 춤 선이 예쁘다는 말 - 문체


그루브는 그렇다 치고, 그다음으로 뛰어넘기 힘든 영역은 바로 춤 선과 손동작이다. 이건 춤 선생이 아무리 옆에서 설명해도 직접 깨치지 않으면 모른다.


두 번째 디왈리 (Diwali) 공연

특히 손동작, 이걸 비스꾸리하게 따라 하는 데 3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미국 첫 직장에서 인도의 가장 큰 명절, 디왈리(Diwali) 축제를 준비할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발레나 인도 전통춤을 배웠다는 아이들은 손동작이 확실히 달랐다. 안무 리더였던 친구는 ‘몸동작은 많이 좋아졌는데, 손 모양이 투박하다’라며 나를 어찌나 타박하던지. 요렇게, 조렇게 해 보라고 하는데, 아무리 따라 해도 그게 맘대로 안 되는 답답한 시절이 있었다. 우리 부서에서는 플래카드(Placard)를 든 응원 원정대까지 파견되었다. 어찌어찌 공연을 잘 마쳤고, 모두 잘했다고 칭찬해 주어서, 내가 잘 한 줄만 알았다.


첫 디왈리 공연 후 3년이 지나, 두 번째 디왈리 축제 무대에 섰다. 손동작은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서당 개 3년 차, 그동안 발리우드 댄스를 보고 따라 하며 손동작도 얼추 비슷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3년 전 내 공연을 봤던 동료가 와서 말했다.


“이번에 정말 멋졌어. 3년 전이랑 너무 다르던데?”


“뭐? 3년 전에 나 보러 엄청 잘한다고 했잖아......”


“아, 그건...... 응원해 주고 싶어서 한 말이고. ㅎㅎ”


이 처절한 배신감. 나는 그제야 알았다. 초보일 때는 아무도 진실을 얘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응원만 해준다는 사실을.


‘춤 선과 손동작’은 글쓰기에서 ‘문체’와도 같다. 작가의 스토리텔링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것, 개성과 글맵시를 드러나게 하는 것. 춤에도 스타일이 있지 않은가 - YG, HYBE, JYP, SM 스타일 등. 아무리 댄스 유튜브를 많이 보아도 춤 선과 손동작을 직접 연습하지 않으면 나만의 스타일을 개발할 수 없듯이, 아무리 많은 작법서를 읽고 글쓰기 강의를 들어도 직접 써보지 않으면, 나만의 문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주변인들이 ‘응원만’ 해주는, 브런치 무명씨 작가일 때, 열심히 노를 저어보자.


같은 곡을 YG, HYBE, JYP, SM 스타일로 풀어낸 안무, 출처: @girlwithluv


4. 표정이 살아있는 춤 - 표정이 보이는 글


표정, 이 영역은 내게 ‘넘사벽’이다. 춤의 고수는 표정과 눈빛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이제 동작은 봐줄 만한데, 완전 무표정이야. 화났니?”


발리우드의 세계로 나를 안내해 준 인도 친구가 말했다. 표정은 내게 가장 심오한 춤의 영역이다. 스튜디오에서 맨 앞줄에 당당히 서, 신나는 표정으로 춤추는 사람들을 보면, 그루브, 춤 선, 손동작 등의 테크닉과 관계없이 이미 '춤신춤왕'의 경지에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빼어난 스토리텔링이나 개성 있는 문체 없이도, 작가의 표정이 살아있는 글이 있다. 내 글에도 표정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설마 무표정은 아니겠지... 표정이 있다면 그건 어떤 표정일까. 내가 지은 표정이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었을까.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표정이 전달되지는 않았을까. 꾸준히 춤과 글 근육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그에 걸맞은 표정을 소화해낼 수 있겠지.



5. 발레리나가 줌바를 잘 출 수 있을까? - 장르


댄스의 세계에 빠져, 여러 장르를 탐험하던 때였다. 줌바, 발리우드, Ujam Fitness, MixxedfFit 등 운동에 가까운 춤을 추다가, 어느 날 문득 발레를 배우고 싶어졌다. 생전 처음 배워보는 발레는 내게 우아하고 신기하며, 어려웠다. 클래식 발레 음악을 원 없이 듣는 것은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다리를 찢거나 흔들리지 않고 턴하는 동작은 모방 불가였다.


동작 하나하나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게다가 발레복도 어찌나 예쁜지!) 정제된 동작과 매우 가벼운 몸을 요구하는 발레와 나는 맞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직장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다 털어버릴 수 있는 춤(이라기보다는 운동)을 원하기도 했다. 결국 6개월을 하고 그만두었다. 지금 발레를 다시 해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껏 기대에 부풀어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좌절감이 아직 남아있다.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발레리나는 줌바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웃길 것 같았다. 하얀 투투를 우아하게 걸친 발레리나가 신나게 그루브를 타는 모습이라니.


© alexdinaut, 출처 Unsplash / thebridge.in

글쓰기도 각자 빛날 수 있는 장르가 있다고 한다. 지금은 에세이로 글쓰기 첫걸음마를 시작했지만 (하지만 에세이가 결코 쉬운 장르는 아니다), 여러 장르를 탐험하며 내게 맞는 장르를 발견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기예를 터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넘어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섣불리 좌절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긴 시간을 거쳐 다양한 춤 장르를 맛보게 된 것처럼, 글쓰기도 엎어지고 자빠지고를 거듭나며, 언젠가는 유능감을 맛보게 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그런 날의 나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 이미지 출처: 지나쥬르 사진첩, MBC 짤, Unsplash, thebridge.in


♡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의 댄스 유튭을 공유해봅니다.

출처: 1MILLION Dance Studio - YouTube


※ 이 글은 뉴스/글 컨텐츠 플랫폼, '헤드라잇'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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