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을 집에 초대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먹고 싶어 외식을 하곤 했는데, 요즘 오미크론도 극성이고 집에 한번 초대해 저녁을 대접해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미국에서 레어템인 족발을 테이크 아웃하고, 상추, 깻잎, 오이, 미역국 등을 준비해 나름 푸짐한 상을 차렸다. 나도 혼자 있을 때는 매우 간단히 먹는 편이라 이런 위호강이 가끔 필요하다. 지인분은 내가 한국에서부터 일로 알게 된 분인데, 둘 다 독서, 자기 계발, 생산성 등에 관심이 많아, 한번 만나면 밤을 새도 모자랄 지경이다. 항상 우리의 수다판은 "to be continued"라면서 다음을 기약한다.
이 날도 여러 가지 주제로 수다판을 벌이다 이 얘기가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핸드폰뿐이 아니라 우리의 뇌에도 배터리라는 것이 있는데, 계속해야 할 일을 차곡차곡 쌓고 미루어두면배터리 드레인 현상 (두뇌 과부하 현상)이 온다는 것이다.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씩'back of my mind'에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회사 업무를 하고 있는데 쌓여있는 집안일이 생각나 집중이 되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그래서 업무가 끝나고 집안일을 시작했는데, 데드라인을 앞둔 인강 (인터넷 강의)이 맴도는가. 각기 일의 종류야 다르겠지만 다들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사용하지 않지만) 무심코 켜놓은 앱들 (백그라운드 앱)
쉽게 설명하자면, 핸드폰에서 앱을 사용한 후 제대로 닫지 않았을 때, 각각의 앱들이 백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핸드폰 배터리를 잡아먹는 현상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개인 컴퓨터 (PC) 도 마찬가지다. 컴퓨터가 왠지 과열이 된 느낌이거나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 (엑셀, 파워포인트) 등이 느리게 움직이는 경우, 'task manager'라는 프로그램을 확인해보면, 사용하지 않는 많은 프로그램이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만 닫아줘도 랩탑이 훨씬 빨리 구동되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그렇다면 백그라운드 앱 (휴대폰) 또는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 (PC) 이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며 배터리를 소모하는 현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용한 후 바로바로 닫아주는 것이다. 매우 간단하지 않은가?
두뇌 과부하를 부르는 것들
머릿속 수많은 to do list
이런 두뇌 과부하 (배터리 드레인) 현상은 핸드폰이나 컴퓨터뿐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두뇌'라는 슈퍼 컴퓨터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아침 기상이 너무 힘들고, 업무가 끝난 후 체력이 방전되는 경우가 많아 이유가 뭔지 고민 중이었다. "왜 이렇게 항상 어깨가 무겁고 머리가 복잡할까...? 왜 휴식을 해도 자꾸 피곤한 걸까?" 언젠가는 해야지! 하며 할 일 목록 (to do list)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던 세금보고, 인강 (인터넷 강의) 데드라인, 그리고 너무 공백이 많아서는 안 되는 SNS 글쓰기, 독서목록... 등, 이렇게 실행하지 않고 걱정만 하고 있던 수많은 to do list 가 나의 머릿속 배터리를 계속 잡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지인의 '백그라운드 앱'의 비유를 듣는 순간 이 모든 문제들이 선명해졌다.
1. 할 일 목록 (To do list) 제대로 활용하기
두뇌 배터리 드레인 현상을 막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바로 '할 일 목록 (to do list)' 작성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가? 사실 나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오늘도 'to do list'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목록에 쓴 것을'실행하고 지웠느냐?'이다. 이렇게 아이템이 하나둘씩 쌓이면 그것들이 또 하나의 숙제가 된다.
그래서 주말을 맞아 조금 기특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수면 위로 꺼내 뽀개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집안일부터 자기 계발 아이템까지 다양했다: 청소, 빨리, 우편물 정리, 공과금 납부, 블로그 글쓰기, 브런치 글쓰기, 인스타그램 콘텐츠 준비, 인강 듣기, 그리고 tax filing. 역시 세금보고가 젤 시작하기 두려웠던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혼삶을 잘 꾸려나가려면 너무 중요한 항목이다. 아직 다 끝내지는 못했지만, 80% 정도를 끝낸 것만으로도 어깨가 훨씬 가벼워졌다. 묵은 체기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다음 주 업무시간에는 적어도 '아 맞다... 세금 보고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To do list를 작성할 때는 모든 할 것들을 때려 넣는 것이 아니라, 1)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주중에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야근을 하는 날이면 조바심이 났다. 아... 오늘도 나의 SNS에 흔적 하나 못 남기고 지나가는구나... ㅠ 하지만 이 일이 반복되면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일주일에 포스팅 하나만 해도 잘했다고 넘어가자.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모델은 깔끔히 포기하자. 이렇게 다짐하고 나니 또 한 번 어깨가 가벼워졌다. 영어 필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일로 9 to 5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소요해야 하는 나에게 매일 영어 필사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일주일에 2-3번 하는 것만으로 목표치를 낮추고 달성했으면 to do list에서 바로 지운다. 이렇게 계속 머릿속을 비워나간다.
2) 또한 to do list는 가능한 '쉽고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부터뽀개는 것이 좋다. 목록에 지워나가는 것이 많을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10개 중 5개 정도를 지우고 나면, 어떤 것이 내 마음속에 부담으로 남아 있을까를 생각해보고 '어렵고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이런 일들을 많이 끝내 놓을수록 주중 업무 집중력이 훨씬 높아진다.
참고로 나는백지에 가까운 to do list 패드를 사용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10불에 50장짜리 패드 3개 (한 세트)를 구입할 수 있는데 거의 구독하다시피 사용하고 있다. 처음 이 아이템을 만난 것은 약 3년 전 Container Store 에서였다. 정리함 및 문구류를 돌아보다가, 이 깔끔한 패드를 발견하고 eureka! 를 외쳤다고나 할까 (참고로 Container Store는 정리벽이 있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미국 스토어다) 혹시 to do list 문구용품을 찾고 계신 분이나 미룬 일들로 중압감에 시달리는 분들께 추천드린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이름을 남긴다: Russell + Hazel Adhesive Pads (참고로 blush, charcoal 두 종류가 있음)
2. 현재를 충만하게 사는 법: 쓰고, 기억하고, move on...
내 머릿속 백그라운드 앱을 지울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기록을 통해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한 감정,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조차도 내 마음속 깊이 남아,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이런 켜켜이 쌓여 감정이 많을수록 마음은 복잡해지고... 어딘가에서 나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록'이라는 것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의 감정을 종이에 쏟아내거나, 사건을 기록해놓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 또는 사건을 한 단락 지을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뭔가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딴생각이 끊임없이 쳐들어온 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독서나 업무를 할 때 그런 적이 있다. 독서는 해야 하는데, 자꾸 다른 할 일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작은 메모패드를 옆에 놓고, 생각날 때마다 일단 메모패드에 대강 기록한 후 독서를 이어나간다.
인기 유튜버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드로우앤드류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럭키 드로우>을 출판하고 여러 가지 좋았던 점이 있었지만, 이 책을 집필함으로써 본인의 20대를 한 단락 지을 수 있었다고. 서른 초반의 청년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참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 말이 유난히 와닿았던 이유는, 요즘 내 삶이 전진하지 못한 채 한자리를 맴돈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기억은 여전히 미국 이민 초반 시절과 첫 회사에 묶여있어, 계속 과거를 맴돌며 몸과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현재를 충만히 사는 게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언제나 과거를 곱씹고 있는 것이었다. 드로우앤드류의 이 얘기를 듣고, 나도 얼른 30대를 잘 정리하고 현재를 충만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백그라운드 앱 이야기부터 시작해 두뇌 배터리 드레인 현상까지, 그리고 이것을 막기 위한두 가지 방법 (to do list, 기록)에 대해 얘기해보았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본인만 해도 to do list는 오래전부터 작성해왔으며, 2년 전부터 나름 기록을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백그라운드 앱'에 대한 얘기를 듣는 순간, 나의 뇌 무의식 한켠에서 끝없이 돌아가고 있는 무수한 백그라운드 앱들이 시각화되었다. 여러 기억의 파편들, 사건의 재조합, 승리했던 순간 곱씹기, 실패했던 순간을 한없이 후회하기... 가 이런 것들일 것이다.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한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준 지인분께도 감사하다.
초생산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체력과 두뇌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나처럼 to do list와 기록을 하면서도 머리 한켠이 찌뿌둥해 두뇌력과 함께 체력이 쉽게 방전되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남긴다.한마디로 필요 없는 앱 다 끄고 여러분의 배터리를 아끼라는 얘기 :)
오늘도 당신의 머릿속에 끝내지 않은 to do list가 맴돈다면 1) 하거나, 포기하거나를 결정하고,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냥빨리 실행해 to do list에서 과감히 지워 버리기를.어떤 감정이나 사건이 마음 한켠에 웅크리고 있다면, 2) 얼른 종이 위 텍스트로 툴툴 털어냄과 동시에 기록에 남기기를 권한다. 지난 2주 동안 실험해보았는데, 확실히 주중 집중력이 높아진 듯하다.이렇게 마음속의 백그라운드 앱들을 툴툴 털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오늘도 쭉쭉 뻗어나가는 기분 좋은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