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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Apr 06. 2022

캘리포니아 식집사의 그린그린한 일상

반려식물과 함께 나만의 안전공간 만들기


배우 정해인이 나오는 드라마 <반의반>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정해인이 인공지능 프로그래머로 나오는 설정이 재밌고 드라마 표지부터 뭔가 몽글몽글한 느낌이 좋아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 하원(정해인)과 지수(박주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세심한 마음의 소유자, 문순호 (이하나) 역에 눈이 더 갔다.


드라마 <반의반>, 식물을 사랑하는 가드너 문순호 (이하나)

식물을 사랑하는 가드너 순호의 옆에는 항상 식물이 있다. 유칼립투스와 대화를 나누고, 몬스테라 잎사귀를 손수건으로 곱게 닦아주고, 분무기로 화분에 물을 골고루 뿌려주고, 농장에서 화분과 흙을 옮기다 철퍼덕 넘어지기도 하는, 드라마 속 그녀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드라마의 메인 스토리는 하원/지수/채원의 사랑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순호라는 캐릭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녀를 보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나에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할 필요가 없는 순간이 온다면, 또는 퇴직 후에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가드너가 되고 싶다고 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팬데믹, 그린이 열풍과 집들이


팬데믹이 시작하면서 그린이 열풍이 불었다. #그린이 #플랜테리어 #식집사 #홈파밍 #귀농... 팬데믹 이후 최대 키워드 중 하나이지 않은가? 사실 나는 팬데믹이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초록 식물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 초록 식물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드라마 <반의반>처럼 몽글몽글하면 좋겠지만, 드라마와 현실은 괴리가 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집이 가구도 없이 너무 썰렁해서, 얼른 뭔가를 채워 예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가성비 좋은 인테리어에 플렌테리어만 한 것이 없었다.


꽃보다 식물, 후배한테 한 수 배웠다

약 2년 전 미국에서 만나게 된 동문 선후배님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하며, 손님용으로 급하게 집을 단장하느라 장미, 튤립 등을 사서 화병에 담아놓았다. 이것을 본 한 후배는 촌스럽다고 툴툴댔다. 미국 물정을 나보다 훨씬 잘 알고 5년 전에 집을 산 그 후배는 이미 인테리어에 꽤 많은 경험이 있었다. 조금은 투덜이 스머프 같은 면이 있었지만, 인테리어에 관한 한 그녀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인테리어의 기본은 초록 식물이라고 했다. 집에 꽃이 너무 많으면 촌스럽다고, 화병은 포인트로 한두 개만 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나의 취향이 촌스럽다는 결론이 났던 그날은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투덜이 스머프 후배의 솔직한 조언은 훗날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참새 방앗간을 찾다


이후 홈디포 (Home Depot), 트레이더 조 (Trader Joe's), 로컬 식물 샵 (Leafy, The Preserve) 등 식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을 모조리 휩쓸며 돌아다녔다. 식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이 식물 샵들은 나의 새로운 참새방앗간이 되었다. 팬데믹이 일어난 직후, 다들 곡식창고를 채우느라 여념이 없을 때라 트레이더 조에 가면 30분 넘게 줄을 서야 겨우 식물을 살 수 있었다. 또한 갑자기 시작된 재택으로 인해 너도나도 홈오피스 만들기, 정원 가꾸기에 열정을 쏟아부었던 시기라 홈디포, 코스트코도 항상 북적였다.


삶의 여유를 선물하는 그린이들

그렇게 짬 시간과 돈을 투자해 2년 동안 사모은 식물들, 이제 화분 개수만 세어보아도 얼추 30개가 넘는 것 같다. 가지치기한 화분과 유리병까지 합치면 한 50개 정도. 말 없는 식물들은 온몸으로 자신의 니즈를 표현한다. 축 늘어져 죽은 것 같다가도 물을 주면 몇 시간 있다가 빳빳하게 이파리를 세우며 살아난다. 어느 날 일을 하다 우연히 뒤 책상을 돌아보았는데, 한 식물이 처참하게 메말라 축 늘어져 있었다. 일로 분주해 뒤돌아볼 틈마저 없었냐고 나에게 온몸으로 원성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죄책감에 얼른 물을 주었다. 이제는 가끔 일어나 스트레칭도 하고 말없이 돌봄을 기다리는 너희들에게 물도 줘야지. 분주함 속 여백을 만들어내야지. 인테리어라는 이기적인 사심으로 너희들을 입양했는데, ‘여유’라는 큰 선물을 주는 너희들이 참 고맙고 짠하다.


반려동물은 어때?

노랑, 초록의 깃털 색상이 풍부한 앵무새

물론 '플랜테리어'라는 실용적인 이유로 시작한 식물 키우기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함께 할 무언가,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무엇과 함께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미국에서 혼자 사는 것을 아는 몇몇 지인들은 내가 외롭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정작 본인은 그리 외롭지 않은데, 꽤 씩씩하게 살고 있는데, 그런 마음 씀이 참 고맙다. "귀여운 아기 강아지를 키워봐라, 고양이는 어떠냐, 주인의 안전을 지켜주는 진돗개가 최고다..." 등 반려동물에 대한 많은 제안을 받았다. 하루는 지인분 댁에 놀러 갔는데 키우고 있는 앵무새를 보여주셨다. 노랑, 초록의 깃털 색상이 풍부했던 깜찍한 앵무새였는데, 내가 너무 예뻐하니까 새를 키우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부담스러워도 새는 키울 수 있겠다 싶어 일주일 내내 크레그 리스트 (Craigslist)에 서치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한국에 갈 때마다 한 달간 집을 비우는 내게 반려동물은 조금 부담스럽다. 누구한테 맡겨야 할지... 맡아주시는 분도 부담스러울 것 같고, 나도 한국에서 계속 마음이 쓰일 것 같았다. 또 키우는 동물이 갑자기 아프거나 죽으면 어떻게 하지... 에 대한 걱정도 분명히 있다. 반려식물과 반려동물, 다 같이 소중한 삶이지만 동물이 아프거나 죽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안 그래도 온갖 걱정이 많은 내가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부담이 덜한 반려식물을 키우기로 마음을 굳혔다.


가드닝도 엄연한 노동이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 가드닝,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아직 물 줄 때가 되지 않았는지 화분 밑바닥은 어떤지 수분 미터기(moisture meter)를 넣어 항상 살펴줘야 한다. 잎사귀가 너무 많아지면 가지치기도 제대해 주어야 하고, 어느 순간 뿌리가 너무 많이 자라 화분이 작다 싶으면 부지런히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날파리가 너무 많이 생겨 날파리 퇴치 작전 차 식초물도 만들고 날파리 없애는 기계도 산 적이 있다. 하지만 내부는 그래도 쉬운 편이다.


나에게는 3평 남짓한 아주 작은 마당이 있는데, 이곳이 정말 손이 많이 간다. 가지치기를 제때 해주지 않아 나무 잎사귀가 나무 펜스를 타고 넘어가면 어김없이 타운하우스 관리실에서 연락이 온다. 펜스 밖으로 넘어온 나무 가지들을 빨리 정리하라는 재촉 이메일이다.


또한 4월이 되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바로 목수벌(carpenter bee)이다. 이제 2년이나 이곳에 살았으니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 올해도 미리 벌 약을 치는 것을 깜빡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목수벌이 집을 두 개나 지어 마당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문을 열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웽웽 위협하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살생하고 싶지 않아 고민했지만, 지인분들께 여쭤보니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사이즈가 커져서 집으로 뚫고 들어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조만간 처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벌집이 없어야 마당에 나갈 수 있고, 가지치기도 제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지 생활, 나만의 안전공간 만들기


그래도 작은 마당, 흙이 있는 땅에 나무와 꽃들을 심을 수 있으매 감사하다. 예전 아파트에 살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문을 열면 아파트에서 만든 작은 휴식 공간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답답했다. 게다가 인도 사람들은 문을 활짝 열고 생활을 하는 습관이 있는 건지, 창문을 열면 온갖 생활 소음이 다 들려와 항상 문을 닫고 지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금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만, 단층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타지 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안전공간을 찾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유학시절 때 살던 에반스톤 (Evanston, 시카고 근처의 도시)의 3층 아파트는 겨울은 너무 춥고 여름에는 지붕의 햇볕이 바로 내려와 쪄 죽을 것 같았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고 천장에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고물 선풍기가 붙어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많은 집들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층간 소음도 어마어마하다. 2층에 살던 학부생들이 어찌나 파티를 해내는지, 파티 음악으로 집이 들썩 뜰썩거려 주말에는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졸업 후 취업을 하면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곳 단층집에 이사 오기 전까지는 쭉 아파트에 살았다. 캘리포니아의 아파트/집들은 지진대에 있다는 이유로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누가 위에서 걸어 다니면 천둥소리가 난다. 소음이 작렬하는 아파트에서 7년 넘게 살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온 후, 소음 스트레스에서 겨우 해방될 수 있었다. 지금도 옆집에서 문을 쾅 닫으면 온 집에 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소음이나 밑에서 올라오는 소음보다는 훨씬 낫다. 나무로 된 집의 비애랄까.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이 정도의 평화로움도 나는 감지덕지하다.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반려식물

해외든 국내든, 나처럼 혼삶을 사시는 분들께 꼭 나만의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돌아보면 지난 8년간 아파트에서 살면서 느꼈던 불안감은 생활에 알게 모르게 꽤 큰 지장을 주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불안감은 사는 곳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주권 (그린카드)이 나오기 전 외노자로 살면서 느낀 불안정감과 연결이 되어있기도 하다. 이번 해 아파트 렌트비는 얼마나 오를지, 그리고 내 연봉은 그 생활비를 지탱할 만큼 오를지... 아파트 렌트가 끝나면 어디로 이사 가야 하고 또 어떤 룸메이트를 만나게 될지 (혹은 찾아야 할지)에 대한 불확실함. 하나의 산을 넘고 나면 더 큰 산이 나타나는 끝없는 챌린지의 굴레가 삶을 지치게 할 때가 많았다.


해외에 살며 나처럼 주거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물론 이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고, 신분적인 문제도 해결되어야 하는 등... 제반적인 여러 조건들이 따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른 상황에 처해있기에, 어떻게 돈을 모으고 살아갈 곳을 찾고 계약서를 쓰는지 등의 현실적인 조언에 대해서는 딱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들 것 같다. 다만 타지 생활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렌트든 내 집이든, 자신만의 안전공간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나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아파트/집 서치에 최소한의 시간을 쓰는 실수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주거'다.


나의 다육이 친구들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상관없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도 2-3평 남짓한 작은 통나무집에서 2년간 살며 이 위대한 고전을 집필하지 않았는가? 물론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산속으로 홀연히 들어가 나무집까지 지을 수는 없겠지만... 책상과 침대가 들어가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그리고 소음이 적고 안전한 공간이면 된다. 마음에 드는 그린이들을 입양해 화분을 몇 개만 놓아두어도 나만의 멋진 공간이 완성된다. 능률도 오르고 잠도 잘 오고 하루하루가 더 행복해질 것이다.





자연과 공간이 주는 위로

식물 키우기로 시작해, 나만의 공간에 대한 얘기까지... 조금은 두서없었지만 자연과 공간이 주는 위로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자연과 안전한 삶의 공간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고 위로를 받으셨으면 한다. 식물은 죽은 것만 같은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당신의 예민한 귀도 존중해 줄 것이다. 식물은 그저 조용히 자라며 삶의 매 순간을 응원해 줄 것이다. 다만 말이 없기에 니즈를 더 세심히 살펴주어야 한다.


봄의 기운이 만연한 동네 한 바퀴


바야흐로 4월, 곳곳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미국 날짜로 오늘 (4월 5일)은 식목일이었다. 미국엔 식목일이 없지만 나는 뒤늦은 애국심에 한국 기념일을 자주 챙기는 편이다. 요즘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만 붙어있다 오랜만에 마당에 나갔더니 쟈스민 나무에서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꽃봉오리가 삐죽삐죽 올라오는 것이 갓난아기들 머리에 솜털이 송송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집 밖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문득 산책을 하고 싶어져  <월든> 오디오북을 들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이 좋은 걸 왜 여태 안 했나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요즘 부쩍 훌륭한 가드너로 거듭나고 싶어 '식물 키우기' 실용서와 함께 식물, 자연에 대한 에세이들을 읽고 있다. 하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고 또 하나는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이다. <정원가의 열두 달>은 ‘체코어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카렐 차페크 작가가 정원사이기도 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원가의 기쁨과 각종 걱정거리들을 삽화와 함께 재치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가드닝, 반려식물 키우기 등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구절구절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음을 터트리게 될 것이다. "대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월든>"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다. 위의 책들을 한참 읽는 중이기에 식물과 자연에 관련된 책 소개는 다음 기회에 해보겠다.

 




이상 팬데믹 이후 집콕하며 식집사가 된 지나쥬르의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귀농을 위해 미국에 왔나 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그린그린한 봄날 맞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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