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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Feb 23. 2022

비혼으로 산다는 것

나 홀로 이민, 해외에서 비혼으로 살아가기

비혼으로 산다는 것

나에게는 몇몇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 주로 대학원, 회사,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대부분 결혼했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꽤 많이 있다. 얼마 전 이 두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 통화로 인해 적잖이 마음에 타격을 받았다. 생각이 계속 맴도는 것 같아 글로 옮겨본다.


아침 햇살이 주는 위안


에피소드 #1

목요일 오후 5시였다.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의 격앙된 말투에서 '회사일, 시댁의 방문, 육아 노동에 의한' 상당한 피로와 짜증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에는 화풀이 상대가 필요해 전화했나 오해할 뻔했지만, 그 친구의 평소 모습을 알기에 상황이 좋지 않은가 보다 하며 짜증 섞인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시어머니께서 집에 와계시는데 그동안 수고했다고 포상 휴가를 하루 주셨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나라나 문화를 막론하고 참 비슷한 것 같았다. 친구는 내가 당장 달려와 본인을 위로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미리 정한 약속과 일정으로 꽉 차있었다. 혹시나 싶어 금요일 만나기로 한 지인께 연락해 변경 가능성을 확인해 봤지만, 약속한 대로 금요일에 봤으면 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보아도 주말은 무리였다. 그래 어쩔 수 없군. 주말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주중에 만나자고 했다. 평소와는 달리 단답형 답문자를 보내는 걸로 봐, 삐진 것이 분명했다. 싱글이니 내가 항상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걸 수도.


에피소드 #2

결혼 후 육아와 일에 바빠 약 3년 동안 연락이 뜸했던 학교 동기는, 어느 날 갑자기 전화해 남자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본인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이웃 아줌마가 뜬금없이 산호세(북캘리포니아의 한 도시)에 아는 동양 친구있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개인정보를 주기는 좀 망설여졌지만, '좋은 의도겠지,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전화번호를 공유해도 좋다고 했다. 토요일 저녁에 팔로업 차 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안부로 시작해 점차 결혼생활과 육아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원하는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싱글이, 내가 진심으로 부럽다고 했다. 정말 완벽하고 맘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한,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는 친구를 위로해 준답시고 비혼녀가 겪는 고군분투 대 얘기했다. 동시에 비혼도 항상 편하고 자유로운 것만은 아님을 항변하고 싶기도 했다.


"결혼도 비혼도 다 장단점이 있어. 그냥 선택이야. 비혼이 한없이 자유로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든 일을 다 책임져야 하고 기댈 곳은 없어. 혼자 다 알아서 해결해야 해." 


그러자 친구는 "너는 너만 책임지면 되겠지. 나는 아이들과 남편까지 모두  책임져야 ."라고 역정을 내었. 나의 자유로움을 꾸짖기라도 하는 듯했다. 친구의 결혼에 대한 후회, 한숨 섞인 토로와 함께 이야기는 끝없이 쳇바퀴를 돌고, 의견 충돌을 불편해하는 나는 그녀 편을 들어주며 이야기를 얼른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 네가  힘들겠다..... 그래도 아이들 키우면서 행복한 순간들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쌍둥이 언니의 결혼생활과 육아의 과정을 지켜보며 결혼생활과 육아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화려한 웨딩드레스 이면에는 엄청난 마음고생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언니의 결혼과 육아를 지켜보았던 과정이 '비혼'이라는 나의 현재 상태에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 언니를 보며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힘든 과정을 보고 들었기에 결혼한 친구들이 불만을 토로하면 보통은 잘 들어주는 편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이해해 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문뜩 억울한 생각이 든다.


왜 결혼한 사람들은 비혼의 여성들이 한없이 자유롭다고만 생각할까? 결혼과 육아의 행복한 순간을 모두 누리고, 가끔 불행하거나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비혼인 친구에게 불만을 쏟아내며,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들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는데 말이다.

 

성인으로써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삶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삶이 주는 행복, 가족의 온기,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며 느끼는 기쁨, 실용적으로는 부부가 함께 낼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시너지, 세금 혜택마저도 결혼의 장점이라면, 동시에 일과 양육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과 체력, 자아가 사그라드는 느낌, 남자가 아무리 도와줘도 궁극적인 육아는 여자가 책임지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 동시에 존재한다.


비혼의 삶이 누리는 자유와 시간의 신축성은 분명히 있다.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위급한 순간에 기댈 사람은 없다. 일인가구로서 모든 결정이 100% 나의 책임이라는 것. 가족의 온기, 동반자와 함께 살며 누리는 기쁨,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없다. 혼자 산다는 이유로 (특히 미국에서는 'dependent'가 없으면) 엄청난 세금폭탄을 맞게 된다. 계약서를 쓰거나 위기의 순간에 "남편은 어디 있나요?"라는 곤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무거운 가구가 도착하면 온갖 잔머리를 써 원하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감이 찰랑거린다.


결혼을 통해 경험하는 행복의 순간과 혜택들을 누릴 기회는 없었지만, 작지만 아담한 나만의 공간이 주는 위안에 감사하며 배우자 대신 식물을 벗 삼아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그린이들,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다


기혼자분들이 보면 다소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글을 올리기 전 "기혼자분들이 읽기에 불편한 내용이니 스크롤하지 마세요."라는 경고문구를 넣어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인생의 반쪽밖에 경험하지 못한 네가 뭘 아냐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비혼이라고 마냥 자유롭고 편한 것만은 아니라고. 결혼과 출산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죄인으로 보는 시선은 좀 거두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물론 독신을 결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일인가구/비혼 여성들은 어떠한 '상황'으로 인해 '비혼의 상태'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비혼은 누군가에게는 결정 사항일 수도 있고 상태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상태를 영원히 박제해 버리는 '비혼족', '비혼주의'이라는 말은 불편하다. 어릴 때부터 이 악물고 주먹 꽉 쥐고 '반드시 비혼으로 살아야지' 마음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처럼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와 해외에서 자리를 잡다 보니, 소위 말하는 혼기를 놓쳤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날 환경에 노출되지 못했거나, 3포 세대처럼 경제/사회적인 상황이 결혼까지 계획할 만큼 녹록지 않아 그 '상태'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또 비혼으로 살다 보니, 혼삶도 나름 편하게 느껴져 그 삶의 방식을 이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친구들과 같은 상황에 부닥치면 불만과 짜증이 나도 모르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속은 상하다. 두 통의 전화가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혼이라는 상태'를 '천하에 마음 편하고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보는 사회가 불편해지는 날이었다. 1인가구가 장차 더 늘어나면, 언젠가 그런 시선에 변화가 생길까.


1인가구가 늘어나는 요즘이라지만 여전히 비혼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마지못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혼을 진정 하나의 삶의 스타일로 보는 날이 오기를, 비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부디 자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길 바란다.




※ 이 글은 뉴스/창작 콘텐츠 플랫폼, '헤드라잇'에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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