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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May 12. 2022

힐링이 필요하셨군요

플랜테리어(식물 인테리어) 원데이 클래스를 마치며


주말 간 플랜테리어(식물 인테리어) 원데이 클래스를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브런치에 기록을 남긴다. 팬데믹이 시작한 2020년의 여름,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온라인 플랫폼에 본격적으로 나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이 생각보다 꽤 중독성이 있어, 한때는 '취미 부자'라는 부캐의 욕망이 '직장인'이라는 본캐를 압도할 때가 있었다. 특히 올해 2월 말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는 일로 바쁜 주중에 글을 하나라도 더 올리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했다.


부캐가 본캐를 압도할 때


하지만 나에게는 '안정감'도 중요한 삶의 가치 중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성취의 과정 중 자연히 따라오는 불안감과 스릴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인간이라, 취미도 좋고 부캐도 좋지만, 미국에서 혼삶을 사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밥벌이'다. 조금 슬픈가...? 받아들이자. 이건 현실이다. 경제적, 시간적 자유는 하루아침에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하루빨리 인디펜던트 워커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잠시 내려놓고 이성을 총동원해 생각해보니,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한 나에게 '주중엔 직장인, 주말엔 취미 부자'로 살아가는 이런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생업이 있다는 것은 불확실성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한국은 어버이날, 미국은 어머니날 (Mother's day)가 있었던 주말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강사로 활동해 온 지식성장 플랫폼 '꿈공방'에서 플랜테리어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했다. <플랜테리어로 그린그린한 안전공간 만들기>라는 주제로 1) 식물 키우기에 대한 정보성 컨텐츠 반 2) 거실 + 정원 투어로 클래스를 구성했다. 워낙 기념일이 많은 주말이라 10명도 안 올 거라 생각하고 기대치를 낮추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조금 놀라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긴 글이 안 먹히는 인스타그램 계정 후기와 이미지 위주의 카드 뉴스를 간단히 올리고 나니, 클래스 준비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지난 주말엔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연재 글을 쓰기로 계획했건만, 원데이 클래스와 후기 정리와 함께 시간이 어느새 휘리릭 지나가버렸다. 직장인으로서 글쓰기와 강의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란 이리 어려운 걸까? 주변 사람들을 보면 본캐, 부캐를 너무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럴 땐 나만 헤매고 있는 건지, 왜 이리도 거북이걸음인지... 가끔 비하감이 들 때가 있다. N잡러가 추앙받는 시대라 멀티 페르소나를 소화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책감이 느껴지는 걸까.


장표와 함께 불금을

홀푸즈에서 데려온 다육이 오형제

지난 금요일, 회사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홀푸즈 (Whole Foods)로 달려가 장을 보았다. 팬데믹 이후 생긴 나의 주말 루틴 1번이기도 하다. 다른 일들도 중요하지만 자고로 식량창고 채우기가 1번이다. 미국 프리미엄 식료품점 홀푸즈는 주로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등을 취급하는데, 가끔 규모가 큰 지점의 경우, 건물 밖에서 식물과 꽃 등을 팔기도 한다. 이 날은 주말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을 맞아 다양한 꽃다발들을 팔고 있었다. 식물 집사인 나는 이 코너를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열심히 스캔을 하던 중 레이더에 걸린 동그란 유리병에 든 다육이 오형제를 입양했다. 그렇게 장보기를 마치고, 홈디포 (Home Depot) 가드닝 코너로 달려가 원데이 클래스 때 보여줄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2년 전 심은 라벤더 상태도 좋지 않아 라벤더 화분을 몇 개 장만하고, 마당에 심을 (보여주기용) 그린이 들도 데리고 왔다.


이렇게 장을 다 보고 돌아오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주말이 어버이날이라 한국에 전화를 함 돌리고, 샤워하고 어찌어찌하니 벌써 밤 12시! 헉...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주중에 클래스의 대략적인 구성은 잡아놓았지만, 슬라이드를 만들 시간이 없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에 쓸 장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눈은 가물가물... 자꾸 감기는데 내일 오실 분들 생각하니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장표는 오늘 끝내야 해!"라는 불굴의 의지로 달렸더니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조금 마음이 놓일 정도의 자료가 완성이 되었다.


마당에 핀 선인장 꽃 ('서양바위채송화'라는 예쁜 이름이 있다)

늦게 잤더니 토요일엔 또 늦잠을 자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슬라이드를 고치고 또 고치고, 사진을 넣었다 뺐다... 고군분투 끝에 플랜테리어 클래스에 사용할 모든 슬라이드가 (마음에 들 정도로) 완성되었다! 휴우~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이제 온라인 투어를 위해 거실과 마당 청소를 할 차례. 책상과 식물을 이리저리 옮기고, 마당 청소에 가지치기까지... 어제 홈디포에서 사 온 라벤더와 꽃도 심고. 암튼 이렇게 원데이 클래스 시작 30분 전에 딱 맞추어 수업 준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얼른 단장을 하고 여유 있는 척?! 하며 10분 전 수업에 들어갔다. 한두 분씩 모이기 시작해 10분이 지나서야 등록한 분들이 모두 입장하셨다. 그런데... 수업 초반, 모든 분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내 말에 쫑긋 귀 기울여주시니 왠지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줌 미팅이 원래 좀 그렇다. 다들 '음소거' 상태를 유지하고 스피커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온라인 클래스는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 긴장의 연속이다. 몇 번을 해도 수업 초반의 긴장감은 아직 떨치기가 어렵다. 다시 심호흡을 하고... 수업이 시작된 지 한 10분이 지나니 나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긴장감을 내려놓아야 제 실력이 나온다. 이때부터 준비한 순서대로 수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정보 대신 힐링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지식 성장 플랫폼 '꿈공방'에서 무료 강의를 한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플랜테리어(식물 인테리어) 수업은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아서 조금 놀랐다. 작년 가을에 했던 첫 번째 강의는 '미국이민 및 취업'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내용이 너무 진지해서 그런지 늦은 시간에 해서 그런지, 단톡방(카카오톡 단체방) 후기가 별로 없었다. 이미 알고 지내온 인친님들께서 칭찬도 해주시고 '꿈공방' 공식 웹사이트에 후기도 남겨주셨지만, 참가자들이 정말 어떻게 느꼈는지 '리얼한 감흥'을 알 수 없어 참 아리송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2주 넘게 영혼을 갈아 준비한 것에 비해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그런 수업이었다.


플랜테리어 클래스 후기 일부

이번 플랜테리어 클래스는 거실과 마당 투어도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 그런지 다들 후한 후기를 남겨주셨다 (참가자 분들이 남겨주신 감동의 후기들). 나 또한 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으니까. 사진이든 영상이든 투어든 클래스 참가자들과의 인터랙션을 이끌어내는 요소를 넣는 것도 중요하구나... 하는 깨달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런 수업을 통해, 뭔가 엄청난 정보를 찾는다기보다는 쉼이 있고 마음이 즐거워지는 '힐링 스팟'을 찾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요즘 책이나 블로그를 찾아보면 식물 키우기나 가드닝에 대한 정보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 클래스를 찾아주시고 또 좋아해 주셨던 분들에게는 바쁜 일상 속 '마음의 쉼터'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주식'과 '부동산' 투자 관련 인스타그램을 운영하시는 지인분이 있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대해 열심히 자료 조사하고 캡션도 정성껏 준비하는데 비해 너무 '좋아요' 반응이 안 나와서, 결국 인스타는 접고 티스토리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셨다. 캡션도 없이 음식 사진 달랑 하나 찍어 올리는 'foodie' 인스타 계정은 '좋아요'를 후하게 받는데, 정확한 정보와 인사이트를 제공하느라 오히려 품이 많이 드는 '주식' 관련 인스타그램은 그만큼 공감을 받기 힘들다니, 참 야속하기도 하지... 물론 컨텐츠의 성격에 맞는 찰떡궁합 플랫폼을 찾는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컨텐츠에 호감이 가나 보다고 나름 정리해본다.




금-토 이렇게 아주 박진감 넘치는 클래스 준비를 하며 조금 진이 빠졌는데, 수업 내용에 만족했다는 그 한마디에 내가 더 힐링이 되었던 그런 주말이었다. '보여주기용' 꽃들을 심긴 했지만 오랜만에 마당의 흙을 만지며 자연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어떤 클래스에 참가해도 열심히 준비한 강사님을 위해 후기도 정성스레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원데이 클래스에서 추천드렸던 책,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 중 기억에 남는 구절과 정원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을 소개드리며, 오늘의 기록을 마친다.


마당에서 키우고 키우고 있는 꽃들


<플랜테리어 원데이 클래스>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연재 글로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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