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쥬르 Jun 17. 2022

I. 비혼, 풍요의 정원을 가꾸다


"지나씨는 앞으로 어떤 글 쓰고 싶어요?"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이곳에 살면서 이런 '문과적인' 질문은 처음이라 잠시 고민했다. 


얼마 전 Memorial Day(미국식 현충일) 롱 위켄드를 맞아, 친구가 집에 놀러 왔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함께 유학을 준비하며 우연히 알게 되었다. 비슷한 나이에 비혼이라, 서로의 고충과 비혼의 장단점에 대해 누구보다 심층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다. '흑인 문학(African American Literature)'을 전공했고, 인고의 세월 끝에 얼마 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다른 주에서 열리는 학회도 있고 졸업 기념으로 지인들도 볼 겸 캘리포니아에 들렀다.


짧았던 이틀의 휴일, 우리는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친구에게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너무 두루뭉술한가. 다시 정리해 보자면 이러하다. 과거(미국 이민), 현재(비혼의 삶), 미래(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제2의 인생)에 대해 쓰고 싶어서, 브런치 매거진도 그렇게 구성해 놓았다고 말했다. 매거진이라고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해당 작가가 어떤 콘텐츠의 글에 주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카테고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1. 과거: 미국 이민 -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억 채집, 시간이 내게 말을 건넬 때"

2. 현재: 비혼의 삶 - "그린그린 비혼 라이프", "미국 이민 10년 차, 살아보니 어때요"

3. 미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제2의 인생 - "실리콘밸리 업세이", "외국어 실험실"


현재 브런치에 발행하고 있는 매거진 (brunch.co.kr/@jinazur)


이상적인 결혼 생활, 부부의 관계, 육아의 세계 등을 다루는 책은 참 많은데, 아직 '비혼이 지향하고 싶은 삶', 그 '북극성'을 제시해 주는 책은 많이 본 적이 없다. 북극성을 제시한다고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겠지만, 비혼으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누군가를 보며 나도 희망찬 삶을 꿈꾸고 싶나 보다.



I. 결핍(Meagerness)에 대하여


《Heavy : An American Memoir》 by Kiese Laymon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흑인 문학)'을 전공한 이 친구는 현재 Kiese Laymon 작가의 《Heavy: An American Memoir》라는 책을 번역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미시시피에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의 성장 과정에 대한 회고록으로, 미국 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구조적 인종차별주의(structural racism)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줄거리에 대해 수다를 떨다, 우리는 어느새 미국 내 '유색 인종 또는 마이너리티에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은 뭔가 부족하고 결핍되어(meager) 있다는 편견으로 인해, 미국 땅에서 수없이 차별받고 있다. 교통 딱지의 제1순위가 되고, 무고하게 범죄 혐의를 뒤집어써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둘을 'apples to apples(아래 참조)'로 비교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어떤 이들은 비혼의 삶 또한, 뭔가 부족하고 메마른(meager) 삶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Meager. 평소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라, 네이버 영한사전을 찾아보니 의미는 대략 이러하다.


Meager:

1. [형용사] 메마른

2. [형용사] 메마른. 빈약한, 결핍한, 야윈; 불충분한; 풍부하지 못한; 부적격한

3. [형용사] 메마른. <작품 등이> 무미건조한

※ 출처: 네이버 영한사전


한 사회에서 'minority(소수자)' 또는 비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 '결핍'에 초점을 둔다. 삶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점점 오픈되어 가는 시대라지만, 아직도 비혼, 미혼모, 딩크족, 또는 LGBT(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은, 다양한 형태의 삶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보다는 '남편 없음, 아이 없음, 가족 없음' 등의 뭔가 빠져있는 '결핍' 사항에 렌즈를 들이댄다. 그러한 시선으로 인해 이들의 삶은 종종 더 무겁고 버겁게(heavy)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서 'heavy'는 physical 한 무거움 (bulky)이라기보다는 삶이 고되고 모진, 또는 문제가 있다는 부차적인 뜻(harsh, severe, onerous)에 더 가깝다. 


미국에 와서 조금 잦아든 질문이지만, 지금까지 나에게 "왜 아직 결혼 안 했어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답정너'였다. 이렇게 심장을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을 여러 번 받다 보니, 이제는 그로 인한 상처에도 무뎌지고, 그에 따른 나름의 해석 능력도 키운 듯하다. 


"왜 아직 결혼 안 했어요?"

"네, 뭐 공부하고 자리 잡고 그러다 보니..."

"눈이 높은가 봐요..."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나무라는 말투로 그 질문을 해올 때면, 나는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죄인 마냥. 변명과 사과의 말투로 대답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 나이면 진작 결혼도 하고 아이도 하나둘은 있어야 했을 텐데... 에고, 어쩌다 보니 제가 많이 늦었네요."라고 사과라도 건네야 했던가. 심지어 한국에 있을 때는 적령기에 결혼이란 걸 안 한 사람을 보고 '그 인간, 분명 하자 있다'라고 뒷담화를 하는 경우도 보았다. 미국 유학이 결정되었던 그해, 나는 적어도 이런 시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국에 건너오던 그해 스승의 날, 중학교 때 가장 존경했던 선생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미국에 가면 당분간 만나지 못할 친척, 지인, 친구들과 잠시 이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께는 안부 및 감사 인사를 드리며,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축하한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생님은 '결혼'과 '남자 친구' 여부에 대해 물어보셨다. 아직도 나를 중학교 1학년 학생으로 바라보시는 선생님이니 그 정도의 질문은 하실 수 있지... 하며, '유도리' 있게 받아쳤다.


"영어 공부부터 해야 하는데 무슨 결혼이겠어요.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면 땡큐지만 당장은 생각이 없어요."

"...... 너도 그거냐?"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거냐?'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해 본다.


1) 독신주의자

2) 동성연애자


적령기에 결혼을 패스했다고 당신 마음대로 '성적 정체성'까지 바꿔버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 존경했던 선생님이라 실망감은 더욱 컸다. '우리 선생님이 이렇게 꼰대셨나... 정말 사람 오래 만나고 볼 일이네.' 나는 정신을 수습해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얼른 학교를 빠져나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건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게만 느껴졌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된 이 사건이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멘토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담임 선생님의 그 한마디로 받은 충격은 꽤 오래갔고, 한편으로는 이곳을 곧 '떠날 수 있음'에 감사했었던 기억이 난다.



II. 풍요(Abundance)에 대하여


나의 친구 쟈스민 나무   © 지나쥬르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를 맞아, 근처 번화가에서 바람을 쐬고 돌아온 친구와 나는,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려한 가구나 장식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초록 식물들과 책으로 가득한 거실을 보며 친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지나씨의 공간이 참 흥미로워요. 비혼들이 느끼는 '결핍'을 '풍요'로 만들어 나가는 것 같아요. 흑인들이 '결핍(meagerness)'를 '흑인 문화의 풍요로움(black abundance)'로 승화시켰던 것처럼요."


팬데믹 이후 재택을 하며 '썰렁한' 공간(팬데믹 전에는 잠만 자던 곳)을 '일할 맛 나는', 그리고 '살맛 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홈 오피스에 포인트를 줬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집꾸, 가드닝, 글쓰기 등의 소소한 취미들은 나만의 '풍요의 정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던가. 문학을 전공한 친구라, 마치 나의 무의식을 정확한 언어로 촤라락 펼쳐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 일을 하는 것도

- 가드닝을 하는 것도

-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 춤을 배우게 된 것도

-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해온 나의 모든 활동은 '풍요를 위한 갈망'에 맞닿아 있었다.


배우자가 있고 아이를 부양하는 자들에게만 세금 혜택이 주어지는 이곳에서,

백인과 인도 남성들이 가득한 실리콘밸리의 테크 회사에서,

'Asian hate'로 인해 항상 몸 사리며 'low key'로 수그리고 살게 되는 이곳에서,

'남편 없음', '아이 없음', '백인 아님'이라는 나의 '결핍'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음, '나만의 공간도 있음', '글 쓰고 식물을 가꿀 시간까지 있음'으로 시선의 중심을 옮겨본다.


물질적 풍요의 끝판왕을 달리는 실리콘밸리에서, '결핍'에 초점을 두다 보면 아마도 나는 한없이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평균 연봉이 2-3억을 웃도는 엔지니어도 아니고, 가족들이 뛰놀 수 있는 그럴싸한 싱글하우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회사에서 받는 엄청난 스톡옵션과, 본업 외 투자용 부동산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한다면, 나의 삶은 끝도 없이 '모자라' 보일 수 있다. 


비교는 사람을 한없이 작게 만든다. 타인의 삶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나의 삶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조용한 곳에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음에, 주중에는 일을 할 수 있음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언제든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또한 주변에 마음 좋은 친구들이 있음에, 내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키울 수 있는 작은 뜰이 있음에 감사하다.


마당에서 키우고 있는 선인장 꽃, 세이지, 라벤더   © 지나쥬르


앞으로 타지에서 계속 비혼의 삶을 사는 한,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더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하면 나의 결핍(meagerness)을 풍요(abundance)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말이다. 삶은 유동적이기에 목록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다섯 가지가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 글 <II. 풍요로운 혼삶을 위한 5가지>에서 to be continued...



 이민, 해외에서 비혼으로 살아가

※ 'apples to apples' comparison: 같은 카테고리를 비교할 때 흔히 쓰는 관용구. 카테고리가 다른 두 가지를 비교하는 것은 어렵기에, 그럴 때는 "even though it's not an apples to apples comparison" 또는 "although it could be comparing apples to oranges"라고 덧붙일 수 있다.


※ 매거진 <그린그린 비혼 라이프>

#0 - 비혼으로 산다는 것

#1 - 캘리포니아 식집사의 그린그린한 일상

#2 - 힐링이 필요하셨군요

#3 - I. 비혼, 풍요의 정원을 가꾸다

#4 - II. 풍요로운 혼삶을 위한 5가지


※ 이 글은 뉴스/창작 콘텐츠 플랫폼, '헤드라잇'에도 게재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