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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May 30. 2022

'범죄 스타트업'의 천국 I: 그들의 협업 현장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 자동차 유리 깨는 절도 기승

바로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운동 마치고 잠시 들렀던 커피숍 주차장에서 누가 내 자가용 유리창문을 깼다. 산호세, 산타클라라 등이 있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San Francisco Bay Area) 은 거의 모든 업소들이 밤 9시면 영업을 종료한다. 친구와 딱 30분 차 마시고 나오다 봉변을 당했다. 오늘은 경찰서에 비디오 클립과 증거들을 들고 가서 리포트를 했다. 이 지역에 살다 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지만, 막상 봉변을 당하고 나니 속이 쓰리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아무것도 먹기 싫다.

빅 머그 커피가 있는 플라자


일하고 글 쓰고를 반복하는 요즘, 이러다가는 허리가 나갈 것 같아 오랜만에 gym에 갔다. 1시간 동안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친구가 취업을 했다고 해서 축하할 겸 잠시 이야기도 나눌 겸 커피숍에 들렀다. Big Mug Coffee Roaster라는 곳인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스터디 카페 같은 곳이다.


Big Mug Coffee Roaster            

3014 El Camino Real, Santa Clara, CA 95051


이곳 Slavich Plaza는 한국 식당, 세탁소, 보바티샵, Dollar Tree (1달러 숍) 등이 밀집되어 있는 스퀘어로 그리 외진 곳은 아니다. 8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이 플라자가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저녁 늦게 간 적도 꽤 많았는데... 그날은 운이 더럽게 없었나 보다. 경찰서에 용의자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직접 가서 리포트까지 했는데, 수사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물건 없어진 거 없으니 다행인 줄 알아라" 수준.


게으른 미국 경찰한테 도움받기는 걸렀고, 이미 엎어진 물이고, 속은 상하고, 이 사건을 잘 기억하고 다음에는 조심하라는 나 자신을 위한 기록...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분들 (실리콘밸리 지역에 사시는 분들뿐 아니라 미국에 사시는 모든 재외국민)이 조금이나마 경각심을 갖고 이런 일이 없으셨으면 한다.


약 2년 전에도 이런 일이 한번 있었다. 그곳도 Safeway, World market 등의 상점이 있는 스퀘어였다. 암튼 그런 곳을 조심해야 한다. 자동차 유리 깨는 절도범들이 항상 노리는 곳이다. 그때도 같은 차를 몰고 있었지만, 차 주위 구석구석을 분 단위로 찍는 블랙박스를 켜놓지 않고 물건을 사러 갔다. 내 실수였다. 그 사고 이후에는 반드시 블랙박스를 항상 켜놓고 다닌다 (※미국은 블랙박스가 대중화되지 않아 본인이 구입해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블랙박스를 설치해도, 뒷좌석 창문 옆에 붙어있는 조그만 유리창 (이를 quarter glass라고 한다)은 깨져도 차가 경보를 날리지 않는다. 많은 절도범들이 이것을 노리고 quarter glass만 감쪽같이 깨는 도구로 유리창을 깨트린 후, 손이나 도구를 넣어 물건을 가져간다.


※ 참고 기사: 샌프란시스코, 차 유리 깨는 절도범들로 골머리 - 매일경제, 섹션-society


※ 블랙박스 영상을 캡처한 사진 위주로 글을 썼습니다.  


5/23 (월) 사건 현장 - '범죄 스타트업'의 기막힌 협업 현장을 보시라


1. 20:26 pm: 빅 머그 커피 스퀘어 도착


내 차 바로 앞에 블랙 메르세데스 벤츠가 세워져 있고, 왼쪽에는 빨간 도요타 트럭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트럭이 좀 이상하긴 했다. 얼핏 노숙자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자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자는 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차 안에는 박스들이 엄청나게 쌓여있고, 뭔가 이상한 감이 살짝 왔지만, 이 지역 노숙자들이 이렇게 많이들 사니 그러려니 했다.


맞은편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우측엔 빨간 도요타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2. 20:26 pm: 친구와 카페로 들어감


아직은 차들이 주변에 좀 있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가게 앞에 바로 파킹 한 것을 보고 나도 차를 잠시 옮겨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때 바로 차를 옮겼어야 했다. 아주 미세하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런 촉을 믿어야 한다.



3. 20:30 pm: 흰색 현대차 등장


상단 우측 흰색 현대차가 스퀘어를 돈다. 회색 후드티를 입은 남성 A가 내려 다른 차량에 뭐가 있는지 빠르게 스캔하고는 다시 차에 탄다.


흰색 현대차가 나타나 플라자를 돈다. 회색 후드티 입은 남성 1이 차 뒷좌석을 살펴보고 있다.


4. 20:31 pm: 벤츠 주인 등장


블랙 메르세데스 벤츠 주인으로 보이는 까만 나이키 티를 입은 남자 B가 열쇠를 찾더니 차 문을 연다. 무언가를 꺼낸다. 차량번호 6RPL367. 동남아 계통으로 보이는 남성 B. (사진은 경찰에 넘김)



5. 20:30 pm: 흰색 현대차와 벤츠 주인 교신


흰색 현대차가 천천히 다가오며, 회색 후드티 남성 A가 운행 중인 차랑의 뒷문을 열어, 벤츠 차주 남성 B로부터 뭔가를 전달받는다. 차는 계속 움직이는 상태에서 문을 열어 거리를 좁힌다. 남성 B는 뭔가를 전달하고 차를 탄 후 자리를 떠난다. 이 '뭔가'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차창 문을 깨는 도구가 아닌가 싶다.


범죄 스타트업 협업의 현장


6. 20:31 pm: 흰색 현대차, 내 차 옆에 주차


흰색 현대차가 한 바퀴를 돌아, 내 차 옆에 주차한다. 뒷좌석에 있는 회색 후드티 남성 A가 선탠 된 창문으로 내 차를 흘끔 살펴본다. (동영상에는 이 부분이 잘 나오는데, 캡처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차량, 내 차 옆에 주차


7. 20:32 pm: 흰색 현대차 복면 쓴 남성 유리창 깨고 도주


흰색 현대차를 운전하던 남성 C가 내린다. 이놈이 주범. 복면을 덮어쓰고 차창을 살펴본 후, 도구로 quarter glass를 깬다. 차 문을 활짝 열어 최대한 용모를 숨기고 플래시 라이트로 살펴보더니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떠난다. 이 사이 빨간 도요타 트럭이 흰색 현대차 뒤에 잠시 주차해 시야를 막는다. 여기까지는 현대차가 깜쪽같이 차량번호 (car plate number)를 숨겼는데, 뒷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드디어 차량번호 포착. BLUF094.


앞차 문을 활짝 열어 최대한 용모를 숨기고 플래시 라이트로 창문을 살핀다
사건 현장 영상: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 자동차 유리창을 깨는 절도범이 급증하고 있다


누가 보면 그냥 보험으로 커버하고 말지 왜 바보같이 아까운 시간을 쓰고 있냐고 하겠지만, 이렇게라고 풀고 싶겠거니 이해해주시고 바란다. 사건 리포트를 받은 경찰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아까운 보험 deductible 500불이 나갈 생각을 하니 이가 갈린다. 몇 번을 반복해서 비디오를 봤다. 세 차량이 철저한 전략을 짜고 친 고스톱.


 흰색 현대 차량: BLUF094              

 블랙 메르세데스 벤츠: 6RPL367              

 레드 도요타 트럭: E96?56N              


실리콘밸리 범죄 스타트업이라서 그런지 차도 삐까뻔쩍...

Wow! 대단한 협업에 박수라도 보내야 할까...?

현란한 차 놀림, 몸놀림에 심지어 '데모 (demo)'까지 여러 번 해본 느낌.


비디오 클립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스크린 캡처를 해서 산타클라라 경찰서 (Santa Clara Department)에 온라인 리포트를 제출했다. 세 대의 차량 번호도 캡처해서 제출했다. 다 끝내고 샤워를 하니 밤 2시였다.




화요일엔 리포팅을 하기 위해 경찰서에 방문했다. 담당 백인 경찰은 비디오를 보더니, 차 창문을 깬 흰색 현대 차량을 제외한 다른 차량들은 전혀 범죄와 상관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그냥 수사할 마음이 1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차량 번호까지 확대에서 다 떠먹여 줬는데 도통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난번에는 블랙박스 영상이 없어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블랙박스 영상을 가져다줘도 수사가 힘들다고 한다. 이러나저러나 힘들다고 핑계를 대는 건 마찬가지.


이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미국 경찰에 대한 불신은 쌓여만 간다. 10년 동안 이곳에 살며 만난 미국 경찰들은 죄다 하나같이 실망스러웠다. 그들이 가장 용감무쌍, 경찰 다울 때는 바로 교통 딱지 벌금을 수거할 때였다. 007 제임스 본드, 슈퍼맨, 스파이더맨이 따로 없다. 누가 "좋은 경찰도 분명 있을 거예요. 그렇게 일반화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신다면, 죄송하지만... 이번만큼은 반사해야겠다. 10년 동안 봐온 미국 경찰들은 교통 딱지 실적 채우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지, 시민들의 안전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인간들이었다. 특히 유색인종의 사건에는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는 기대도 하지 않고 말한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지.'

제삼자의 눈이 필요해 글을 올리게 되었다. 재외국민 여러분들이 조심하셨으면 좋겠다.


출처: www.knewsla.com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 차 유리 절도범과 미국 경찰의 무관심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아예 차 트렁크를 열고 주차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별거 없으니 가져가려면 가져가 보슈"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치안이 잘 되어있는 한국에서는 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문 열어 놨으니 부수지는 마” 차량 절도 기승 ‘오픈 주차’ 유행      

www.knewsla.com



나만 조심한다고 이런 절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미리미리 조심하셔서 피해가 없길 바랍니다)


'자동차 유리 깨기 절도' 예방을 위한 몇 가지 팁


1. 블랙박스 필수 설치

2. 최대한 밝고 사람이 많은 곳 근처에 주차할 것

3. 노숙자가 많은 플라자에 될수록 가지 말 것

4. 트렁크에 소지품 두지 말 것, 특히 전자기기

5. 주차장에서 트렁크에 물건을 옮기지 말 것 (타깃이 됨)

6. 트렁크 뒷좌석을 내려놓을 것 (아무것도 없다고 보란 듯이)

7. (만약 그럼에도 사고가 났다면) 사건 현장 사진을 꼼꼼히 찍어 증거를 남길 것




올해 들어 미국 전역에서 팬데믹에 대한 제한이 없어지면서, 외출이 늘어나고 온갖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차창 유리를 깨는 사고부터 시작해 거의 일주일에 한 건씩 일어나는 총기 난사 사건까지... 팬데믹 초기, 모두가 집콕해야 했을 때가 오히려 안전했던 것 같다.


팬데믹이 끝나면 다들 여행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코시국동안 범죄에 굶주린 인간들이 이렇게 치밀하게 방구석 범죄 전략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서 방문 일지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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