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보너머 Jul 19. 2019

"중도파 생태주의의 환상" by Piketty

번역판 부제 : 불평등 해소 없이는 기후변화 문제 해소도 없다


좋은 소식이 있다. 녹색당이 약진한 유럽 선거의 결과를 볼 때, 프랑스와 유럽 시민들이 지구 온난화에 대해 점점 더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최근 치른 선거가 기본적인 이슈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생태주의자들은 어떤 정치 세력과 함께 통치할 것이고, 어떤 행동강령을 가져갈 것인가 하는 이슈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녹색당이 13%의 상당한 득표율을 얻었다. 그러나 녹색당이 1989년 유럽 선거에서 11%, 1999년 10%, 2009년에는 16%를 이미 획득했던 점을 감안하면 녹색당이 추후 단독으로 과반을 달성할 전망은 불투명하다. 유럽 의회에서도 녹색당이 10% 가까운 의석을 가져갔다(751석 중 74석). 이는 과거 7%(51석)보다 나은 수치이지만 어느 세력과 정치적 동맹을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녹색당 간부들은, 특히 프랑스에서,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좌파와 함께 할지 우파와 할지에 대한 고민 자체를 거부한다. 


그러나 모든 수준에서의 사회적 불평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는 강력한 움직임 없이는 기후 변화 문제의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에너지 소비감소는 희망사항일 뿐이기 때문이다. 먼저 탄소배출은 부유층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세계적 수준에서 보면 가장 부유한 10%는 탄소배출에 대해 거의 절반의 책임이 있고 상위 1%는 지구의 가장 가난한 절반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따라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구매력을 급격히 감소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전세계적 탄소 배출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더 나아가 최고 부유층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 부유한 국가의 중산층과 노동자뿐만 아니라 신흥국도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것에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이를 바꾸는 건 필수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선거 캠페인에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2017~2019년 프랑스에서 나타난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은 이러한 정의(justice)에 대한 요구를 극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7년까지 탄소세의 필요성은 프랑스에서 비교적 잘 받아들여졌고 파리협정에 따라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정기적으로 인상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탄소배출에 대한 과세가 받아들여지려면 가장 많은 오염을 일으키는 부유층이 최소한 중저소득층보다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하고 거기서 걷은 세금은 전부 에너지 전환에 할당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가구를 지원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마크롱 정부는 정반대로 했다. 최저 소득계층이 낸 유류세는 다른 우선순위들을 위해 사용되었고 부유세와 자본에 대한 누진세도 폐지됐다. 그 결과 IPP(Institut des Politiques Publiques)의 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에 상위 1%의 구매력은 6% 상위 0.1%는 20% 증가했다. 


사회적 불안이 발생할 때 정부는 가장 부유한 계층을 위한 혜택을 철회하고 그 돈을 장기적인 기후문제 해소와 가장 가난한 계층에 대한 보상에 사용할 수 있었다. 정 반대로, 2007년부터 2012년 사이의 대통령 사르코지처럼 마크롱은 완고하게 부자들에게 주는 혜택을 유지하고 파리협약을 완전히 무시하며 탄소세 인상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오늘날 탄소세가 언제 원상 복구될지 아무도 모른다. 집권여당은 부유세 폐지를 자기 정책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스스로 리버럴 친기업 우파의 적통이라는 것을 확증했다. 2017년 대선뿐만 아니라 2019년에도 나타난 고소득층과 자산가 위주의 사회적 지지기반 또한 이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왜 프랑스나 독일의 녹색당이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과 함께 통치하는 걸 꿈꾸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책임지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만이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지구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만일 좌파와 생태주의자들이 프랑스에서 동맹을 맺었다면 리버럴과 민족주의자들을 제압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유럽 의회에서 단결했다면 그들은 가장 큰 그룹을 형성했을 것이고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회적-연방적, 생태적 동맹이 존재했다면 다양한 좌파세력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급진좌파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독일의 ‘좌파당’이 현재의 유럽의 판도를 바꾸거나 조약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어떤 새로운 조약에 서명하고 싶은지 설명해야 한다. 사회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만큼 정치 체제의 붕괴에 대한 책임을 상당부분 져야 하며 이를 재건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은 과거의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특히 그들은 자본이 과세로부터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조약들을 재협상할 것이라고 우리를 속임으로써 지금의 유럽 판도를 만든 데 상당한 책임이 있다. 


유럽에서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토론과 어려운 선택들을 요구한다. 이제 공연한 소동을 끝내고 진짜로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번역글 원출처 : http://piketty.blog.lemonde.fr/2019/06/11/the-illusion-of-centrist-ecolog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