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보너머 Jul 24. 2019

진보정치의 영원한 레퍼런스, 노회찬을 추모하며

노회찬 대표가 말한 투명인간은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다수다 

조윤호 (前 정의당 당직자 / '진보너머' 운영위원 / '나쁜 뉴스의 나라', '프레임대프레임' 등의 저자)


노회찬 연동형 비례대표제

노회찬 최저임금

노회찬 복지국가


그가 서거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노회찬 대표의 이름을 검색하는 날이 있다.


복지, 무상급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최저임금.... 나는 찬성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이슈. '노회찬이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설득했을까'. 노회찬이라면 잔뜩 긴장한 채 반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긴장을 어떻게 풀어주었을까.



노회찬은 그런 정치인이었다. '왜 진보정치가 필요한지', 아니 '왜 정치가 우리 삶에 중요한지' 끊임없이 설명해주던 사람.


노 대표가 서거한 뒤 다시 화제가 된,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당 대표 수락 연설도 그랬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연설에서 노회찬은 새벽 4시에 출발하여 15분 만에 만석이 되는, 6411번 버스를 꽉 채우는 청소 미화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 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노회찬 대표가 말한 '투명인간'은 누구일까? 누군가는 그들을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소수자'라고 호명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6411번 버스를 타고 새벽에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처지는 하루 종일 일해도 월 200만 원조차 손에 못 쥐는 편의점 사장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3교대 근무를 하는 병원 간호사의 처지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은행원의 처지도 똑같다.



성별, 나이, 지역, 각자가 처한 사회적 위치와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보다 강한 사람의 눈치를 보며, 고단한 노동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멈추면 대한민국은 움직이지 않는다. 온 거리가 3일만 지나도 쓰레기로 넘쳐날 것이고, 밤에도 번쩍이던 거리는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질 것이다.


그들이 진보정당이 지금껏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소수자 일까?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다수인 것은 아닐까?



노회찬이 말한 진보정치는 바로 그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었다. 세상을 움직이고 있지만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고단하게 살아가는 국민 다수에게 노동의 제값을 돌려주는 것. 노회찬이 말한 진보정치의 역할이다.


“그래도 한국에 진보정당 하나 있어야지. 안 그러면 누가 저런 이야기를 하겠어” 나 역시 꽤 최근까지도 이런 자세로 진보정당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주장에 회의적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의 역사를 경험하지 않은 2030세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이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아니라 진보정당 할아버지가 나타나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끝이다. '레드 콤플렉스'와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던 시절은 시민들이 박근혜를 끌어내린 이후 끝났다.



노회찬은 '진보정치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늘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방법을 찾았다. 약자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로 일치단결하여 불평등과 불공정에 맞서 싸우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할 때까지 계속 설명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전에 배경부터 설명했다.



심상정 후보가 대선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고 지지자들이 화가 났을 때, '후보 토론이니 당연한 거다', '그게 민주주의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방식의 토론이어서, 여러 명을 차례로 토론하려 했는데 문재인 후보와 토론하고 시간이 끝나버렸다”고 배경과 상황을 설명했다. 화가 났던 많은 지지자들이 노회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2월 국회 비교섭단체 연설 때는 미국의 투표용지를 들고 나타났다. 스물여섯 번 투표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유권자와 일곱 번 투표하는 한국 유권자, 그만큼의 차이가 미국 국민과 한국 국민이 지닌 권력의 차이라고 말했다.


'비례성'이니 '민주주의'니 그런 이야기보다, 투표를 더 많이 하는 것이 국민에게 이로운 이유를 설명했다. 복잡한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야구규칙보다 쉬우니 제가 설명 드리겠다”고 했다.



제1야당이 부활을 꿈꾸며 아무말대잔치를 펼치는 지금, 촛불이 요구한 사회경제적 개혁이 진도를 못 빼고 있는 지금, 노회찬은 지금 상황을 뭐라고 설명했을까.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던 노회찬이라면 한국과 일본이 싸우고 있는 지금 상황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검색엔진에 노회찬의 이름을 검색하는 이유다. 다수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길이 유효한 이상, '노회찬'이 진보정치의 영원한 레퍼런스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즘따라 더 노회찬이 보고 싶다. 노회찬의 한 마디가 듣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중도파 생태주의의 환상" by Pikett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