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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Jul 31. 2019

그린뉴딜 강령: 생태주의를 더 "왼쪽"으로!

제1회 너머트레바리 후기

제1회 너머트레바리 현장


7월 27일 토요일에 진행된 너머트레바리 첫 모임 주제는 '그린 뉴딜'이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그린 뉴딜에 대한 몇 개의 보고서들을 사전에 읽도록 지정했습니다. 트레바리의 형식대로 발제자가 정해진 주제에 대해 20~30분 가량의 짤막한 강의를 진행한 다음 정해진 주제와 형식 없이 청중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진보너머 트레바리의 첫 스타트를 끊게 되어서 조금 긴장됐지만 실제로 진행해 보니 상당히 편한 분위기에서 진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린뉴딜이 다소 생소한 주제는 아닐까도 걱정했지만 다행히 참여자 모두 열띤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발언했습니다. 그만큼 생태 이슈가 일상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방증입니다. 물론 그린뉴딜은 단순히 생태이슈에 국한된 의제는 아니므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격의 없는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정의당 당직선거에서 그린뉴딜을 언급한 후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아마 알렉산더 오카시오 코르테스(이하 AOC)의 그린뉴딜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정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바마의 그린뉴딜은 물론 다른 중도파 생태주의 정책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더군다나 정의당이 민주당과 ‘차별화’가 되어야 한다는 이들이 이슈를 주도한 선거였음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더욱 깊게 남습니다.


알다시피 AOC의 그린뉴딜은 올해 초 미국 의회 결의안을 통해 제시되었습니다. ‘환경문제’와 ‘일자리 문제’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야심친 프로젝트이자 새로운 형태의 생태주의 강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미 한파 등의 기상이변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배경도 작용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결되지 않은 극심한 부의 불평등과 불안정한 일자리 그리고 높은 교육비 문제로 화가 난 젊은 밀레니얼 세대도 그린뉴딜 확산에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그린뉴딜 결의안 발표 기자회견


AOC의 그린뉴딜은 과거의 생태·환경 정책과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요? 


우선 정부와 사회가 빠른 속도로 ‘문제해결’에 직접 나설 것을 주문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입니다. AOC와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그린뉴딜 결의안은 10년 내 온실가스 배출 제로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안하면서 과거의 탄소 배출권 거래나 탄소세 부과 같은 소극적 정책들이 실패했음을 지적합니다. 이제는 크루그먼 같은 주류경제학자들도 사회 인프라 전반에 대한 정부의 직접 투자와 고용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을 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재원마련에서도 분명한 차별성이 있습니다. 소수 기업과 부유층에게 에너지 전환 비용 부담을 지워야 한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AOC는 최고소득에 대한 70%의 부유세를 걷을 것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린뉴딜의 많은 지지자들은 소수 기업과 부유층을 구제하는 데 사용되었던 국가의 발권력을 위기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에 영향을 받는 서민계층을 위한 사회경제적 보장 방안을 적극 고민했다는 점입니다. 그린뉴딜 결의안에는 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노조와 시민사회 등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명시하고 있으며 특히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일자리와 직업훈련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자격을 묻지 않고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이른바 ‘일자리 보장제(job guarantee)’ 프로그램 도입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린뉴딜에서 정부는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계수단을 직접 책임 지는 최종고용자(employer of the last resort)로 간주됩니다.


이처럼 AOC의 그린뉴딜은 구생태주의자들의 기후변화 행동강령에 노동자 서민의 삶과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하며 보다 ‘진보적으로’, 보다 ‘왼쪽으로’ 진화한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에 대한 대표적인 반면교사는 얼마 전 ‘노란 조끼’ 시위에 직면한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입니다. 마크롱 정부는 젊은 중도 개혁주의를 표방하며 높은 지지 속에 출범했지만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부자 감세와 기업 규제완화를 거듭하며 대중의 불만을 키웠습니다. 이 가운데 마크롱 정부가 파리와 대도시 통근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유류세 인상 조치를 단행하자 전국민적 저항에 마주했습니다. 최근 토마 피케티가 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마크롱 정부의 근본적인 문제는 환경문제 해결을 말하면서도 그 부담을 탄소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자와 대기업이 아닌 서민들에게 전가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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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생태주의=진보라는 단순한 공식을 적용할 때 우리가 어떤 맹목에 빠지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경유세 인상을 말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서민 통근자들과 운수업에 종사하는 영세업자들의 부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린뉴딜에 영감을 받았다며 자전거와 도보로 이동하는 이들에게 참여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린뉴딜의 정신에 충실하려면 집값과 임대료 문제 때문에 직장과 거주지의 거리가 먼 다수 서민계층이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그린뉴딜은 한국의 탈원전 정책에도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는 탈원전의 당위와 핵물질에 대한 공포감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새로운 소득과 일자리의 혜택을 같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담은 부자와 기업에게’ 물리고 ‘혜택과 참여의 기회를 서민에게’ 제공하는 좌파적인 버전의 생태주의입니다.


한 참여자는 최근 불거진 동물권 이슈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공장식 도축 방식의 비인간성을 지적하며 식당과 정육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공장식 도축을 통한 저렴한 식재료에 의존해야 하는 계층은 주로 저소득층입니다. 반면 친환경 소비와 윤리적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고소득 계층입니다. 일부에서는 공장식 도축에 의존해야 하는 산업과 소비구조를 만든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대신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소비자 개개인에게 비난을 전가하고 죄의식을 요구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러나 잔인하게 도축된 고기를 소비하는 것에 대한 죄악감을 설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않는 동물권 운동은 결코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린뉴딜을 추진한 주체들의 정치적 화법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AOC를 비롯해서 현재 미국에서 그린뉴딜 의제를 주도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화법에는 묘한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때 - 대공황과 파시즘에 맞서 승리했던 - ‘위대한 미국인’들, 절대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들을 즐겨 호명합니다. 그들은 평범한 시민 사이의 공감대를 환기하며 자긍심과 용기를 북돋는 방식으로 말합니다. 평이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잠시 생각해 보면 그 안에는 번뜩이는 '정치적 감수성'이 녹아들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그린뉴딜 프로그램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에 대한 선명한 급진 좌파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동시에 그것은 다수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는 진보 정치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린뉴딜에서 이 희망의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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