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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Nov 23. 2020

금수저와 은수저의 차이는 크다.

어쩌면 은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보다 더.

✒️편집자의 글

진보너머는 상위 1%에 대한 99%의 연대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올해 초에 출판된 ⟪세습 중산층 사회⟫와 같은 책은 상위 10%와 나머지 90%의 대립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아니~ 1%랑 10%랑 무슨 차이가 있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세습자본주의의 폐해와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을 포함한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1:99의 대립구도가 10:90의 구도보다 더 유효한지 살펴보아야겠죠?

여기에 대해 박가분 운영위원이 경제학 전공자답게 워킹페이퍼에 가까운 글을 보내주셨는데요. 국세통계 데이터를 통해 본 한국의 소득 불평등. 진보너머에서 최.초.공.개. 합니다✨

박가분 운영위원은 피케티 등의 불평등 연구자가 사용한 통계적 추론 방법과 근로소득세 국세통계를 이용해 2009-2018년 한국의 근로소득 분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세습중산층사회 담론과 다소 다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중상위 계층에서 '대물림 경쟁(feat. 스카이캐슬)'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예상과 달리 불안정해진 지위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통계적으로 확인해 봤을 때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위 10% 계층의 소득비중은 감소한 반면, 상위 1% 계층의 소득비중은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상위 10% 계층도 세습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상위 10%의 중산층이 가지는 법적/제도적 특혜도 단계적으로 폐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상위 1%의 "분배규칙을 결정할 특권"을 철폐하는 것이 먼저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저소득 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고, 상위 1%에 대한 최고세율 인상과 부유세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이외에도 재정지출 확대로 양질의 공공재 공급을 늘리고 고졸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 경쟁의 압력을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글을 통해 확인하시죠!


국세통계로 본 한국의 '세습중산층사회'담론

: 2009~2018 금융위기 이후 기간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와 세습중산층


금태섭 전 의원의 자녀 상속 논란이 뜨겁다. 나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그가 청년들의 박탈감을 이유로 자녀입시에 열심을 보인 조국 전 장관 부부의 행보를 공개비판했기 때문이다. 지위 대물림에 민감한 한국사회에서 조국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금 전 의원 역시도 당분간 불공정 논란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한편 개인의 도덕성 논란을 넘어 '세습 문제가 진영을 막론한 한국 사회 엘리트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의 단면으로 이들 논란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의 전문직과 엘리트 계층이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도 전문직 엘리트들이 대를 이어 의사 가문, 법조인 가문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잘 묘사돼 있다.



이와 관련해 사회학자 조귀동은 한국사회가 '세습중산층사회'로 이행했다고 진단한다. 즉 한국사회의 중상위 계층을 포괄하는 상위 10% 계층이 사회 전반에 자신만의 세습체제를 견고하게 구축했으며, 이를 통해 상위 10%와 나머지 90% 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부의 세습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야 할 한국사회 엘리트 계층이 (진료거부사태에서 보인 것과 같은) 집단이기주의를 표출하고 자녀세습에 열을 올리며 보인 추태에 대해 대중적 환멸이 증가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체로 한국사회가 '세습중산층사회'로 이행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상위 10% 엘리트 계층 내에도 계층분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노력의 강도와 별개로) 이들의 부와 지위의 대물림이 성공적인지 그리고 그렇다면 얼마나 성공적인지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다룬 다른 두 해외 저자(앳킨슨, 굿하트)의 지적은 시사적이다. 한국만큼은 아니겠지만 해외에서도 입시 및 취업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오늘날 중상위층 가정은 이례적일 정도로 자녀의 지위 상승 혹은 현 수준 유지에 큰 공을 들인다. 명문 학교 진학부터 가정 교사 채용, 인턴십 구직활동에 이르기까지 '군비 경쟁'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최상층 공간은 매우 느리게 확장되는 터라 전반적인 계층 상승은 어렵다.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348p
미국의 불평등은 주로 교육을 잘 받은 이들과 나머지 사람 사이의 격차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일반적인 교육 격차에 관한 문제도 아니다. 최상위층이 엄청나게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에 관한 문제다. (중략) 새로운 교육 엘리트 중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이 신흥 경제 엘리트층에 진입했다. 이런 식의 전개는 전세계가 아니더라도 OECD 국가들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불평등을 넘어⟫, 157p


두 저자는 사실상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 전개된 글로벌 불평등은 단순히 노동시장의 고소득 전문직들이 부를 독점하는 현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득수준이 천차만별인 변호사처럼) 전문직 계층 내에서도 소득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면, 그리고 이들 내에서도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이 바로 밑의 계층과 격차를 좁히고 있다면, 이것은 세습중산층사회 담론이 진단하는 사회상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만일 상위 10% 내의 격화된 경쟁에도 불구하고 1%가 여전히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면 이 역시 10 대 90 간의 균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사회적 모순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의 근로소득세 통계에 주목하다


이에 따라 우리는 하위 50%, 중간 40%, 상위 10%와 1% 등의 계층을 세분화해서 불평등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불평등을 측정하는 척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소득이 지위, 부, 심지어 사랑과 명예까지 획득할 수 있는 일반적 구매력이라는 점에서 소득이라는 단일지표로 불평등과 계층분화 양상을 살펴보는 것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특히 여러 소득유형 중에서 근로소득에 집중하고자 한다. 세습중산층 담론이 여러 형태의 대물림 중에서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형성을 통한 지위세습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근로소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소득분포를 살펴보기 위해 가계동향조사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설문조사에 기반한 이들 자료는 고소득층의 소득을 과소보고하는 경향이 있다는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21세기 자본⟫으로 대히트를 친 토마 피케티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하며, 전국민 대상으로 작성되는 소득세 통계를 활용해 불평등을 측정했다. 그 이후 국내 불평등 연구에서도 소득세 통계를 널리 활용하는 추세이다. 


매년 발간되는 현행 국세통계 연보는 '근로소득 연말정산 신고 현황'을 싣고 있다. 여기에는 소득구간별 인원과 총금액 등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는 분위별 소득비중이나 평균소득 등을 직접 확인하긴 어려우나 피케티와 사에즈 등의 불평등 연구자들이 애용하는 '일반화된 파레토 보간법(Generalized Pareto Interpolation)'이라는 통계적 추론 방법을 이용하면 계층별 소득분포를 상당히 정밀한 수준까지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건민(2020)은 국세통계 연보에 공개된 근로소득세 데이터를 이용하여 파레토 보간법으로 분위별 소득분포를 추정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이 추정치를 과거 심상정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2013~2016년 천분위 근로소득자료와 비교했는데, 결과적으로 하위 50%, 중간 40%, 상위 10%, 상위 1%의 소득점유율을 플러스 마이너스 0.1%p의 오차 내에서 정확히 추정했다고 한다.


https://alternative.house/alternative-working-paper-no15/


이에 본고에서는 동일한 방법을 이용해 소득계층별 소득분포 시계열을 만들었다. 이 중에서도 이건민(2020)의 자료에 실린 2013년의 소득분포 추정치를 정확히 동일하게 재현했음을 확인했다. 한편 국세통계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08년 이전의 국세통계는 과세미달자의 근로소득 자료를 누락해 보고한 반면 2009년부터 이들을 포함해 제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시계열의 일관성을 위해 2009년에서 2018년도 사이의 국세통계 자료를 활용했다. 이 기간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지평으로 간주해도 좋다.




소득비중이 증가한 하위 50%와 감소한 중간 40%


우선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지니계수로 측정되는 근로소득의 불평등이 꾸준히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지니계수는 인구누적비율과 소득누적비율을 연결한 선인 로렌츠곡선을 기반으로 계산하며 0에 가까울수록 균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세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2009년에는 지니계수가 0.499였다면 2018년에는 0.452으로 약 5%p 하락했다. 불평등도가 개선되는 추세를 보인 것이다.


비록 불평등의 정도를 과소추정한다는 문제를 지적받곤 하지만 설문기반의 가계금융복지조사도 국세통계 자료와 동일한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2011년부터 측정된 해당 지니계수는 0.388에서 출발해 2018년 0.345로 떨어져 약 4%p 하락했다.


 

금융위기 이후 지니계수 추이


저소득계층의 소득증가가 전반적 소득불평등도의 개선을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하위 50%부터 살펴보면 2009년 15.6%에 불과했던 이들의 소득비중이 2018년에는 19.6%로 4%p 폭으로 상승한다. (우리는 앞으로 계층 간의 상대적 격차에 주목하기 위해 계층별 소득비중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물론 저소득층의 근로소득 개선 추세와 별개로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아직 미비한 수준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하위 50%와 중위 40%의 소득비중


저소득층의 소득비중이 늘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근로장려세제(EITC, Earned Income Tax Credit)의 지속적 확대에 주목해볼 수 있다. 근로장려세제는 사회보험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근로자에게 정부가 생계비 등을 보조해주는 세금 제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에 근로장려세제가 도입되었고 2011년부터 세법개정을 통해 확대 적용되었다. 이것은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저소득층의 노동공급 유인을 늘렸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빼놓을 수 없다. 2012 ~2018년 사이에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매해 6% 미만으로 떨어진 바 없었다. 특히 2018년에는 16.4%까지 인상했다. 일부 보수파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제가 저소득층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왜곡되었던 노동시장 질서를 회복하고 저소득층의 근로소득 증가에 도움을 준다. 2018년도의 급격한 인상률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라도 그 전부터 꾸준히 이어진 최저임금 인상추세가 저소득층의 소득개선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공공근로 · 지역공동체· 노인일자리 사업 등 공공일자리 사업이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확대된 것도 이들 의 근로소득 개선에 기여했을 것이다.


반면 중간 40%의 소득비중은 감소했다. 2009년 전체 소득의 51.6%를 차지했던 이들의 소득비중은 2018년에 48.9%로 2.7%p 감소한다. 노동시장에서 중산층의 허리가 그만큼 잘록해졌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와 기술변화로 인해 '일자리 양극화'가 전개되고 있다는 일부 경제사회학자들의 예측과 일치한다. (다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양극화를 기술적 필연으로 돌리는 설명을 신뢰하지 않는다.) ⟪세습 중산층 사회⟫의 저자인 조귀동 역시 '번듯한' '괜찮은(decent)' 일자리가 노동시장에서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이것이 학벌이 좋은 소수계층(그에게는 상위 10%)의 전유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국세통계의 소득자료를 살펴보면 그 주장이 적어도 일부 계층에는 현실설명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저소득층을 넘어 중산층(특히 20대)으로 확산된 데는 이들의 (상대적) 지위하락과 소득 정체 현상이 자리한다 풀이할 수 있다. 즉 이들에게도 더 위로 올라갈 계층사다리가 점점 멀어진 것이다.




계층분화가 일어나는 상위 10%


그런데 상위 10%와 중간 40%의 선명한 대립구도를 설정하려면 상위 10%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거나 상승해야 한다. 문제는 상위 10%의 지위도 소득기준으로 볼 때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2009년에 32.8%였던 이들의 소득비중은 2018년에 31.6%로 하락한다. 1%p 남짓한 하락폭이지만 이들의 소득비중이 정점을 찍은 2010년(33.9%)에 비교하면 하락폭은 2.3%p로 나타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을 보였다. 


반면 상위 1% 계층의 소득비중은 동일 기간 횡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의 소득비중은 2009년 7.2%에서 출발해 2018년에는 7.3%를 기록했다. 추세적 하락이나 상승은 없었다.


상위 10%와 상위 1%의 소득비중


위 결과는 두 가지 점을 시사한다. 첫번째는 상위 10% 계층 내에서도 상당한 계층분화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제도적 환경이 변하거나 불리한 기술변화로 인해 일부 전문직의 소득수준이나 안정성이 하락했을 수 있다. 이것은 상위 10% 내의 소득불평등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상위 10% 내의 소득분포를 다시 10분위로 나누어 지니계수를 살펴본 결과 2009년에는 0.185였던 것이 2018년에는 0.204로 증가한다. 물론 최상위 1% 내에서도 극적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소득분포를 무시했기에 이는 과소추정된 값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추세적 변화이다. 상위 10% 내에서도 소득불평등도가 증가한 것이다.


두번째로는 상위 10% 내에서 상위 1% 내로 진입하기 위한 경쟁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더 강화됐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경쟁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위 10% 내의 계층분화는 이들 중상위 계층이 왜 부와 지위의 대물림에 그토록 목을 매게 되었는지, 더 나아가 왜 JTBC의 인기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모종의 사회적 기시감을 느꼈는지를 설명해준다. 실제로 상위 1%는 상위 10% 중 나머지 계층과의 격차를 빠르게 벌리고 있다. 이것이 상위 10% 사이에서도 자녀들에게 더 나은 지위를 대물림하고자 하는 유인을 더욱 부채질했을 가능성이 크다.


몇 가지 예를 들자. 2009년에 대한민국 국민의 딱 중간 위치인 중위소득자가 상위 10%에 진입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추가소득은 연 4천1백만 원이었다. 한편 상위 10%에 갓 진입한 사람이 상위 1%에 진입하기 위해 추가로 벌어야 하는 소득은 연 5천4백만 원이었다. 위 두 격차는 2018년에 더욱 벌어지지만 차이가 벌어지는 속도는 10%의 문턱과 1%의 문턱 사이에서 더 빨랐다. 2018년에 중위소득자가 상위 10%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소득은 연 4천9백만원으로 2009년과 비교할 때 큰 차이는 없지만 같은 해 상위 10%에 막 도달한 사람이 상위 1%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제 8천2백만 원의 연봉이 더 필요하다. 


계층별 소득문턱의 차이 비교(단위 : 원)


상위 10% 안에서도 상위 1%는 상대적으로 안정적 지위를 유지하며 나머지 계층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상위 10% 내에서 일정한 인적경쟁을 거쳐 상위 1%라는 한정된 클래스에 진입할 때 발생하는 편익이 상당히 커졌다는 의미이다. 물론 중하위 계층이 더 힘겹고 각박한 경쟁을 일상에서 겪을 것이다. 하지만 저 위의 '스카이캐슬'에서는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든 그러한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든 그들 나름대로 군비경쟁을 방불케 하는 '저 세상' 지위 대물림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산층의 소득비중과 상대적 지위가 하락할 때 상위 1%는 어떻게 자신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까? 비밀은 이들이 애초에 사회의 분배규칙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계층이라는 데 있다. 가령 피케티와 사에즈(2014) 등은 영미권 국가에서 상위 1%의 소득비중이 크게 증가한 배경으로 '협상효과'를 지목한다. 80년대 이후 이들 나라에서 최고소득세율이 크게 인하되자 노동시장은 물론 기업 내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이들 상위 1% 계층은 연봉협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데 더욱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CEO들은 회사의 보수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힘이 있는 계층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정치적 로비에도 능한 계층이다. 이후 실증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사항이지만 한국의 상위 1%도 생산성에 대한 기여와 무관하게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더 많은 부를 누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이들이 자신의 소득비중을 유지한 비결은 (기술변화나 세계화와 아무 상관 없이) 순전히 그들의 특권 때문이다.




다수의 연대를 복원하기 위해


한국형 불공정 담론을 가만히 살펴보면 중간계층에서 중상위 계층까지 꽤 넓은 범위의 계층이 저마다 계층 사다리를 박탈당한 사회적 불공정의 피해자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활발하게 불공정 담론을 제기하는 논자 자신부터 상당수 좋은 학벌의 전문직 엘리트들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금융위기 이후 상당히 넓은 중산층 계층도 내부적 계층분화와 불안정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감이 식자층과 담론시장에서 불공정 담론의 유행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들은 대부분 상대진영에 대한 설교적 성격이 강하면서 정작 정치적인 성격은 모호하다.


불공정은 물론 그 뿌리에 있는 세습자본주의의 불평등을 넘어설 유효한 방안은 하층계급과 중산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다수파 연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형 불공정 담론에 대한 좌파적 비판자들조차도 다수파 전략이 아니라 한국사회 실정과 맞지 않은 정체성 정치나 소수자 인정투쟁 의제에 매몰되어 있다(ex. 중산층의 박탈감이 아니라 소수자의 곤경이 '더' 중요하다).


불평등에 맞서는 다수의 연대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우선 상위 1%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최고세율 인상과 상속증여세의 강화 그리고 부유세 도입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도덕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 상위 1%의 상대적 소득비중과 지위가 높을수록 여기에 편입되기 위한 중상위 계층의 경쟁은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위선과 내로남불에 대한 설교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스카이캐슬'에 편입되기 위한 사회경제적 유인을 정책과 제도적 수단을 통해 외과수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고세율을 45%에서 70%까지 올린다면 상위 1%에 편입되기 위한 경쟁의 편익은 비용에 비해 크게 줄어든다. 이처럼 최고세율 인상이나 부유세 도입은 엘리트 계층의 지대추구 행위와 낭비적 군비경쟁에 소모되는 자원을 보다 창조적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데 돌릴 여유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상위 10%에 대한 광범위한 증세와 법적 제도적 특권의 철폐도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는 법률가, 의사, 교수, 고위언론인 등 전문직 엘리트들이 지나치게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것 역시도 한국사회의 낭비적 입시경쟁과 계층 위화감을 조성하는 주된 배경이다. 이 점에서는 '세습중산층사회' 담론의 의의를 적극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특권을 줄이는 조치가 사회적으로 설득력이 있으려면 상위 1%의 사회경제적 권력을 우선적으로 대폭 제한해야 한다.


아울러 중간 40% 계층으로 살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정부투자를 통해 질 좋은 의료, 교육, 주택 등의 공공재를 확대 공급해야 한다. 이들 기초재는 경쟁의 전리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청년들에게는 기초자산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균형재정 혹은 건전재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학교육을 과감하게 평준화하고 대졸자가 아니더라도 직업교육과 훈련만으로도 숙련노동자로서 존중받고 좋은 대우를 받는 사회적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직 엘리트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사회에 만일 고위직 할당제가 도입된다면 청년이나 여성 이전에 고졸 노동자의 몫을 우선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린뉴딜과 일자리 보장제를 통해 중산층의 도덕적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보람 있는 일거리를 창출하는 것도 관건이다. 하위 50%를 위한 사회안정망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참고문헌>

데이비드 굿하트,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원더박스
앤서니 B. 앳킨슨,  『불평등을 넘어: 정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글항아리
이건민(2020),  '『국세통계연보』 자료로 근로소득 분포를 얼마나 잘 추정할 수 있을까? : 2013~2016년 국세청 근로소득 천분위자료와의 비교',  경제와사회 , 379-406.
조귀동, 『세습중산층사회: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생각의 힘
데이비드 굿하트, 『불평등을 넘어: 정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원더박스
Piketty, T. et al.(2014), 'Optimal Taxation of Top Labor Incomes: A Tale of Three Elasticities', American Economic Journal: Economic Policy 2014, 6(1): 230–271
https://stats.nts.go.kr/(국세통계 사이트)
https://wid.world/gpinter(세계불평등 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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