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리얼돌 논란에 부쳐
*편집자 주 : 진보너머에 투고한 박세환 운영위원의 칼럼입니다. 리얼돌 논란을 둘러싸고 생각해 봐야할 점을 정리한 글입니다.
나를 무척 싫어하던 이가 있었다. 나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저 사람 정도면 아마 자기 방에 내 사진 붙여놓고, 다트를 던져 맞추고 저주를 퍼부으며 좋아하지 않았을까?"
정말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었고 나는 그걸 밝힐 물증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난 이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까? 경찰에 찾아가서 모욕죄로 고발이라도 할까? 아마 그랬다면 경찰로부터 돌아올 대답은 뻔했을 것이다. "어휴... 평소에 인간관계 관리를 좀 잘하셨어야죠."
물론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처벌할 상황도 아니다. 현행법은 특정 인물을 모욕할 의도로,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모독하는 행위를 공개적으로 벌이지 않는 이상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이가 악감정 때문에 당신을 상징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혼자서 어떤 모욕적인 '의식'을 벌렸다 하더라도 당신은 이에 대한 법적 처벌을 요구할 수 없다. '처벌'을 논할 수 있는 경우란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을 모욕했거나, 혹은 그런 언행을 당신에게 직접 가했을 경우뿐이다.
법이 당신에게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상대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범위는 딱 거기까지다.
법이 보장해주는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고 느껴지는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상징하는 상징물(그림, 인형, 혹은 당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문자까지!)에게 벌어질지 모르는 어떤 불쾌한 행각들을 규제하기에 법은 너무나 불충분하다고 여겨지는가?
당신이 충분히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도록, 당신을 상징하는 상징물까지 모두 보호해 주는 어떤 사회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사회에선 혼자만의 공간에서조차도 다른 특정 인물을 상징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모욕적인 언행을 벌인다면 공권력이 애써 직접성 내지 공연성을 입증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
범죄예방 CCTV는 이제 으슥한 뒷골목을 넘어 개개인의 집 안방까지 진출(?)한다.
자, 당신은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는가?
사회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입장들은 어느 정도 제로섬적인 측면이 있다. 자신과 일부라도 유사한 상징물조차 자신과 동일하게 보호받기를 바라는 '입장'은 타자의 간섭이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받고 싶어 하는 이들의 '입장'과 충돌한다. 이 뿐만인가?
긴급 헬기를 동원해서라도 위급한 환자를 나르고자 하는 '입장'은 필연적으로 단 잠을 자고 싶어 하는 일대 주민들의 '입장'과 어느 정도 대립관계일 수밖에 없다.
집 근처에 친구들과 한잔 걸칠만한 술집이 있기를 바라는 이의 '입장'은 집 근처에서 속칭 '꽐라가 된 개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주민들의 '입장'과 어느 정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전장의 헬기가 연상된다는 이유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팬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PTSD에 시달리는 퇴역군인의 '입장'은 선풍기를 통해 더운 여름을 보다 시원하게 보내고파 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과 충돌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일방의 입장만을 극도로 추구할 경우엔 필연적으로 다른 어떤 이들의 입장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사회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입장을 꺼내놓고 합의점을 조율해 가는 사회이지 어느 일방의 입장만이 극단으로 강조되는 사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감 감수성 운운하며 일방의 입장만을 강조하는 게 절대적 정의인양 처신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 ㅇㅇ의 입장은 중요치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무슨무슨 감수성이 부족하시네요."
"ㅇㅇ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기르셔야 하겠군요. 공감능력이 너무 저조하세요."
하지만 원래 '공감'의 방향이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에 의거, 서로 다르게 나올 수밖엔 없다. 일방의 공감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성적 침해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입장"은 극도로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성적 착취와 범죄야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이제는 개인의 은밀한 행위들조차 사회적 제재와 감시망에 오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성인들 간에 성을 자발적으로 거래하는 행위가 불법화되었다.
다음에는 불법 촬영된 영상이 업로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해외 포르노 사이트가 접근금지 처리되었다.
그리고 여성을 향한 왜곡된 성 인식이 퍼지는 걸 막는다는 이유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들을 검열하는 움직임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시선강간이라는 말이 퍼지며 시선처리에 대한 문제도 조심스러워졌다.
이제는 더 나아가 특정 여성의 외관이 묘사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의 신체를 본뜬 인형(일명 리얼돌)을 만들고 거래하는 행위 또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성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리얼돌의 성적 대상화가 심각하다’며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얼돌이 범죄에 오남용되는 몇몇 사례를 규제하자는 제안을 넘어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했으니 리얼돌 그 자체에 대한 국가적 규제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공당이 펼친 셈이다.
모든 성인용품은 성적 대상화를 동반한 성적 판타지를 구현한다. 물론 일부 여성에게는 리얼돌에 구현된 성적 판타지가 역겨울 수 있다. 마치 보통의 남성이 BL물이나 여성향 로맨스물에 구현된 성적 판타지를 보며 역겨워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불쾌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현실권력이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개입한다면 그것은 이미 ‘감시국가’이다.
박 최고위원은 이런 시민적 자유 침해 논란을 의식한 듯 리얼돌 규제여부를 ‘사회적으로 논의하자’는 데 발언을 한정했다.
하지만 시민적 자유의 관점에서 볼 때 과거 ‘테러와의 전쟁’ 시절에 ‘고문 합법화를 사회적으로 논의하자’는 궤변과 무엇이 다를까? 그 자체로 사악한 고문과 선량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리얼돌 규제 논의는 다르다고? 만일 ‘아동 성범죄자의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고문을 허용하자’는 논의라면 어떨까? 지금 분위기라면 자신의 ‘선량한’ 의도를 강조하며 찬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박성민 최고위원처럼 그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논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이미 그간 쌓아온 인권법에 대한 백래시이자 반동이다. 그게 아무리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으로 포장돼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박성민 최고위원의 발언 역시 시민적 자유권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언임에도 이에 대한 여당 내부의 공식적인 비판은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되물어 봐야 한다. '타인의 불쾌한 상상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여성의 입장'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국가개입을 전방위적으로 늘리는 변화들은 한없이 정당하며, 또한 정당해야만 하는 건가? 그러면 이러한 변화들로 인해 더 불편해지는 반대편의 입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보호받고 싶은 어떤 이들의 입장'은 그 밖의 다른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그 어떤 입장보다도 우월하며 중요하기에, 이를 위해 다른 입장들을 항상 포기되고 무시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정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