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정책에 동참한 계층에게 온전한 보상을
지금이 전시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다행히 우리나라가 승전국으로서 빠르게 전후복구를 할 여력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국민은 전쟁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가족과 부상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기를 기대할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이뤄진 물자와 인력의 징발에 대한 보상도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 경제부양 정책이 이뤄지길 기대할 것이다. 이를 현 코로나19 시국에 대입하면 어떨까?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생업에 직접적 타격을 입은 계층도 전쟁의 사상자에 가깝다. 코로나19 유행 장기화에 따른 피해는 서비스업에 집중되었고 그 가운데서도 규모가 영세하고 대면 서비스가 주를 이루는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 3분기의 서비스업종의 생산지수를 보면 전년분기 대비 –1.7% 감소한 가운데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33.8%)과 운수 및 창고업(-16.1%) 그리고 숙박 및 음식점업(-15.6%) 등의 감소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지난 12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자 음식점, 카페, 독서실 등의 영업시간이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내체육시설과 노래방 그리고 주점 등은 아예 집합금지 대상이 되었다. 영업제한이 장기화되자 참다 못한 일부 자영업자들은 엄동설한에 거리로 뛰쳐나와 방역정책의 형평성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오래 참아온 불만을 이제야 터뜨린 것이 대단하다 싶을 정도이다.
한국처럼 고강도 방역정책에 많은 국민들이 장기간 자발적으로 동참한 나라는 드물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자 방역 형평성에 대한 불만과 국민적 피로감이 증대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처럼 K-방역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참여열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역정책을 위해 희생한 계층에게는 정부가 ‘무한책임’을 약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도 뒤에 남겨져서는 안 된다’는 2차대전의 표어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민들을 향한 정부의 ‘무한책임’에 대한 약속을 상징한다. 이런 약속을 정부가 몸소 실천해야 앞으로도 국가 위기극복에 많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할 것이다.
이번에 정부는 ‘3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맞춰 소상공인 대상의 임대료 지원과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방침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방침을 뜯어보면 방역정책을 위해 그간 희생한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 국가가 충분히 보답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정책 시차 때문에 정부지원이 사후약방문에 그치는 문제가 있다. 기재부에서 예산안을 짜서 국회에서 통과해 현장에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긴 것이다. 현장에서는 ‘다 망한 뒤에 지원금을 주면 무슨 소용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방역정책의 일환으로 영업제한을 가하면 폐업에 내몰리기 이전에 적절한 보상이 나오는 정책 틀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지난 12월에 임대료와 공과금 면제에 대통령긴급명령권을 사용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비상조치를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음으로는 지원의 범위와 규모가 그간 누적된 소상공인의 피해를 보상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3차 긴급재난지원에서는 임대료의 일부까지 정부가 보상한다고 하지만 그간 누적된 공과금 지출은 물론 매출저하로 인한 소득하락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적어도 정부의 영업제한으로 인해 피해를 본 업종은 영업제한 전 과거 소득의 일정액을 보장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도 유럽 주요국들은 코로나19로 소득이 줄어든 노동자들에게 사회보험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기존 소득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여러 정책들을 실시한 바 있다. 이 같은 발상을 소상공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세업체의 고용불안정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고용유지지원금이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복잡한 신청절차는 여전한 장벽이다. 휴직이나 임금감소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이 있어야 지급한다는 까다로운 제한조건도 문제점이다. 사회보험료 부담은 아예 지원대상에서 배제돼 이를 감당치 못하는 업체들은 여전히 폐업과 실업의 악순환을 겪는다. 정부는 위기에 처한 영세자영업자의 고용을 평소처럼 유지할 수 있도록 방역기간 동안의 해고제한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하되 고용유지를 위한 부담을 과감히 떠맡아야 한다.
정부는 평소 발권력에 기대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출을 해왔다. 명목상 국채를 발행한다 하더라도 국채를 인수할 기관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표면상으로 한국은행이지만) 결국 정부 자신이다. 이런 화폐재정 구조를 이용해 필요한 지출을 해왔던 정부가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 상대로 곳간지기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특히 정부는 민간의 소득과 지출이 동반 하락하는 위기시 경제의 구원투수로서 그만큼을 정부지출로 벌충해야 한다. 지출흐름이 정상화되어야 소득이 창출되고 안정된 세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방역 이후 그 동안 정체된 민간소비를 회복시킬 모멘텀을 만들려면 정부지출을 아껴서는 안 된다.
물론 코로나19를 계기로 예상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에 맞서기 위해 더욱 공평한 재분배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이벤트성 기금이나 세금제도를 만드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최근 대기업에서 자금을 갹출하는 방식의 이익공유제를 이야기했고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소득이 증가한 계층에게 특별재난세를 걷자고 이야기했지만 둘 다 생뚱맞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재원이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재정 보수주의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편승한다는 혐의 또한 지우기 어렵다.
지금의 문제는 가계의 소득저하로 인해 민간의 지출성향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데 있다. 기금갹출이나 세금인상은 본질적으로 민간의 소득을 정부에 이전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상황과 들어맞지 않는다. 또한 기금마련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나 조세제도 신설은 재난지원금 지급 이상으로 지난한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사실 그러한 기금이나 특별조세 없이도 정부는 국민을 위해 필요한 지출을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다. ‘정부가 누구의 곳간을 털 것이냐’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정부가 누구에게 얼마만큼 쓸 것이냐’, ‘정부지출에 걸리는 정책시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라는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러한 것들이 지금 서민에게 더 피부에 와 닿는 논의이며 또한 그들의 소득개선에 더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선별지급에 대한 정치적 맹신을 정당화하는 데 소상공인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피해가 집중된 소상공인에게는 특별지원을 하되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도 병행해야 한다. 보편적 지급은 전체적인 소비진작 효과는 물론 (소상공인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경기 안정화 기능에 있어 선별지원보다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전국민 소득지원은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비롯한 소득보장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학생·취준생·프리랜서·주부 계층의 생활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전국민 재난지원은 향후 재난복구에 전국민이 동참해 달라는 사회적 독려의 메시지도 될 수 있다. 사회 전체적 연대감을 고취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방역으로 인해 피해가 집중된 업종들의 소득하락과 고용보장을 위해 정부가 특별지원하되, 향후 4차 긴급재난지원 이후부터 불황에서 탈출할 때까지 여러 차례 전국민 소득지원을 병행 실시해야 한다. 폐업과 실직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질병 나아가 죽음까지 내몰리기 전에 지원의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기재부와 관료적 형식주의를 우회해 주권자의 결단으로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지원의 범위를 더욱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