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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Jan 25. 2021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준비하는 것이 여성차별?

박신영 작가의 한국일보 칼럼에 대한 반박

지난 23일 한국일보는 <결혼할 때 남자가 집 해 오는 건 차별 맞다, 여성 차별>이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사 전공자이신 '나아가는자' 회원님께서 반론을 기고해 주셨습니다.


1.

근래 한국일보는 페미니즘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다양한 페미니즘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데, 지난 1월 23일에 내놓은 기사인 <결혼할 때 남자가 집 해 오는 건 차별 맞다, 여성 차별>이라는 기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기사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12115380001747


이 기사의 편집자 주석은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라고 말한다. 다양한 관점으로의 역사 읽기가 때로 필요할 수도 있긴 하지만, 페미니즘류의 관점의 문제는 ‘젠더’의 관점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 혹은 ‘여성운동’의 관점에서 역사를 억지로 재단하는데서 문제가 나온다. 이 기사도 그런 점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2.

‘박신영 작가’가 쓴 이 기사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역사적으로 상속제도에는 단독상속제와 균분상속제가 있는데, 균분상속제는 자손 모두에게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주지만, 이는 재산이 갈수록 분할되어 가문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독상속제는 한 자식에게 재산을 몰아주어 가문의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하고, 부모의 노후봉양을 보장받는다. 중세 유럽의 장자상속제가 대표적이다. 혹은 유목 문화권의 말자(막내아들) 상속제도 이런 단독상속제의 한 종류이다. 이런 상속에서 배제된 딸의 경우에는 지참금이나 혼수의 형식으로 보상금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 원래 균분상속이 보편적이었지만, 17세기부터 가문의 생존을 위해 장자상속제가 보편화되었다. 이는 남성 혈족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여성은 제사를 핑계로 상속에서 배제되고 차별받았다. 결혼할 때 부모가 주는 혼수가 공식적인 상속이었다.

이런 장자상속제는 현재의 상속법에 의해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균분상속제가 아니다. 부모는 아들에게는 집을 해주려고 하지만, 딸에게는 알아서 저축하여 혼수를 마련해 결혼하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부모 사후에 딸들이 받을 상속분을 줄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차별이다. 

상속제도의 목적은 집단의 생존과 부모의 노후봉양이다. 그런데 부모를 직접 돌보는 이는 아들의 배우자다. 모든 것은 며느리가 해준다. 결국 부모는 며느리의 노동력을 사는 대가로 아들에게 집을 해주는 셈이다. 그 집의 혜택은 남자도 누리는데 왜 남성 차별인가?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결혼제도에서 남성이 집 해오는 것은 여성 차별이다. 남성은 배우자인 여성이 일하는 대가로 여자 형제들보다 미리, 더 많이 상속을 받는다.

이렇게 여성이 차별받는 것임에도 집을 해오는 게 남성 차별이라고 하면서 여성이 욕을 먹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처지에 놓인 집단이 ‘약자’이다.


긴 내용의 기사를 짧게 요약하긴 했지만, 핵심 내용은 공정하게 담아서 요약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식의 논리가 타당할까? 



3.

박신영 작가는 남자가 집을 해오고, 여자는 약간의 혼수만 해오는 현재의 결혼 관행을 설명하기 위해 상속제도에서 이야기를 끌어오고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남자들이 부모의 재산을 먼저 가져가기에 여자 형제들의 몫을 빼앗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것이 여성 차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신영 작가의 논리는 잘못되었다. 만약 이러한 행태가 상속제도에 의한 것이라면 매우 다양한 변주가 등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상속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형제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예컨대 형제가 없는 외동딸과 형제가 많은 남자가 결혼할 경우에는 상속 경쟁이 없는 외동딸이 집을 해오고, 형제가 많아서 부모의 여력이 없는 남자는 혼수만 해서 결혼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혹은 부모를 봉양할 의무가 없는 차남이나 삼남이 결혼할 경우에는 집을 해올 의무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남성은 결혼할 때 암묵적으로 집을 요구받고 있는 경우가 현실이다. 왜 시부모를 봉양할 의무가 없는 경우에도 여성들은 집을 요구하는 것일까? 


매우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남자는 거의 항상 집을 해올 것을 기본으로 요구받고 있다. 결혼하는 남녀의 각각의 집안의 상속관계와 거의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결혼 시에 남성에게 집을 요구하는 것과 상속제도는 그 관련성이 크지 않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여전히 남성은 신혼집 마련에 더 큰 부담을 느낀다.(출처: 웨딩 TV)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왜 남성에게 집을 요구하고, 여성이 혼수를 하겠다는 것인가? 여기에는 결혼은 남자에게 더 유리한 것이기 때문에 여자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혹은 남자가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은 상속의 문제가 아니다. 박신영 씨는 이야기를 잘못 끌어가고 있다. 



4.

그렇다면 남녀 간의 결혼에서의 대가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국의 과거 결혼 풍습은 대개 처가살이였다. 고구려의 서옥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고구려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면 신랑은 처가에 새로 사위 집(=서옥)을 짓고, 이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부부 사이에 낳은 아이가 크면, 신랑의 집으로 되돌아갔다. 


이는 고구려만의 풍습이 아니었다. 고려시대에도 신혼부부는 처가살이를 하였고, 이는 이규보의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규보는 장인이 죽었을 때 제문을 썼는데, 그 내용에 “사위가 되어 밥 한 끼와 물 한 모금을 다 장인에게 의지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풍습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우리가 남자가 결혼할 경우에 ‘장가든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처가살이를 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이는 16세기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강릉의 오죽헌은 이율곡의 집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신사임당이 어릴 때부터 살던 신 씨의 집이었다. 그런데 결혼할 때 처가살이 풍습에 의해 이곳에서 부부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신사임당 형제들 중에 남자가 없어서 이 집을 그대로 물려받아 이율곡의 집안이 대대로 보존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결혼 풍습은 간단히 말해서 노동력을 지불하고 여자를 데려오는 결혼 풍습이었다. 남성을 중심으로 한 부계혈통의 상황에서 결혼은 여성을 남성의 가문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성을 낳아서 키워온 집안에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남자는 처가살이를 몇 년간 하면서 노동력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다만, 모두가 처가살이를 했던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있었다. 예컨대 어느 집에 딸이 3명이라면, 3명의 사위를 모두 처가살이를 시키면 작은 집에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부부끼리 분가를 하는 경우도 매우 많았다.) 


이러한 결혼방식을 봉사혼 또는 노역혼이라 한다. 이러한 풍습은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의 노동을 견뎌야 했다(Josef von Führich. Jacob Encountering Rachel. 1836.)


예컨대 구약성경 중 창세기를 보면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 둘째 딸인 라헬의 미모에 빠져서 라헬과 결혼하고 싶어 했다. 그러자 외삼촌은 결혼을 원하면 7년간 일을 하라고 요구한다. 야곱은 이 약속을 믿고 7년간 일한 후에 첫날밤을 치렀는데, 첫날밤이 끝나고 나서 보니 첫날밤을 함께 보낸 사람은 라헬이 아닌 첫째 딸 레아였다.


야곱이 이에 항의하자 외삼촌은 언니를 제치고 둘째가 먼저 시집가는 법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라헬과 결혼하고 싶다면 7년을 더 일하라고 요구했기에 야곱은 추가로 7년을 일해야 했다. 


결혼하기 위해 14년간의 노역을 바쳐야 했던 불쌍한 야곱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한국의 고대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결혼제도는 대체로 봉사혼의 경우에 가까웠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점차 성리학이 강화되어 가면서 이러한 결혼제도는 변화를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성이 여성의 집에 머무르는 기간이 짧아지다가, 나중에는 이런 풍속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전통시대의 결혼 풍습으로 생각하는 시집살이, 곧 신혼부부가 남성의 집에서 생활하는 방식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정착한 이후에도 장남 부부의 경우에는 시집살이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겠지만, 차남이나 삼남과 결혼하는 경우, 즉 대다수의 경우에는 분가하여 살았다. (처갓집의 크기로 인해 처가살이를 한 남성들이 일부에 한정되듯이, 시집살이 역시 일부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분가를 하는 경우에 부부가 함께 살 집을 남성이 구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는 아까 노역혼과 비슷한 예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혼은 기본적으로 두 남녀의 생존과 행복을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남성 중심의 혈족을 이어나간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남성의 노동력=경제력이 여성보다 우월했기에 더 많은 대가를 치를 여력도 있었다. 이런 여러 요소들이 합해지면서 남성이 집을 해가는 풍습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여, 현대의 여성은 남성 중심의 혈족을 이어간다는 의미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녀평등의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성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는 풍습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풍습은 해체시키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고 남에게 손해가 되는 풍습은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모순적인 행동이 남성들에게 매우 큰 불만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남성 차별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당한 측면이 있다.



5.

이처럼 결혼제도는 상속제도와는 별도로 형성되어온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신영은 이를 비틀어서 상속제도와 결혼제도를 억지로 결합시킨 다음, 또다시 남성을 가해자로 내몬다. 집을 해오라고 하는 여성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남성들의 어려움에는 눈을 감고, 그 남성들에게 존재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여성 형제들에게서 미래의 상속분을 빼앗는다는 억지 논리까지 쓰면서 말이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은 또다시 여성을 ‘약자’로 규정짓는다. 


결국 박신영은 하나의 목적. 곧 여성은 항상 약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췄다. 그러나 그 끼워 맞추는 내용은 엉뚱하기 짝이 없었다. 결혼제도를 설명하는데, 역사적 결혼제도는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상속제도만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조명하는데 실패하고, 현실에 유의미한 결론을 주는 데도 실패했다. 


왜 이러한 얼렁뚱땅인 기사가 나왔을까? 그 답은 이 기사의 편집자 주석에 있다고 본다.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라는 이 문장은 사실, “여성주의의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라는 것이고, 이는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여성운동의 관점에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여러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의 결론을 정해놓고 역사를 읽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학과 여성주의는 오직 여성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판별하여 역사를 해석해내려고 한다. 거기에는 남성과 여성이 생존을 위해 함께 결합하고, 희생하고, 노력해온 대부분의 역사는 빠져있다. 오직 남녀 간의 성대결을 부추기고, 오직 여성이 피해자이고 약자였다는 결론으로만 내달리려고 한다. 


그러한 편향된 시각은 결코 진리에 다다를 수 없으며,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수 없다.


박신영 씨와 한국일보 측에 진지한 반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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