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십일 취향편 #13
12살 때 뉴질랜드에 사는 친척 집에 석 달 정도 살면서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어느 저녁, 학교에서 컴퓨터에 관한 작은 행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아이맥과 마주했다. 집에 있는 회색의 486도, 아버지가 쓰시던 검은색의 IBM도 아니었다. 아이맥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그날 이후 애플 웹사이트에 주기적으로 들락거리면서 부모님께 아이맥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이팟은 그로부터 2년 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모두가 MP3를 들고 다니는 시대에 나만 워크맨으로 연명하고 있다며 하나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기왕 사줄 거면 아이리버 말고 아이팟을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지만. 결국, 2011년에서야 처음으로 애플 제품을 가질 수 있었다.
애플의 우아함과 만듦새에 반한 지도 20년이 지났다.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면서 파산 직전까지 갔던 애플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시가 총액 1위의 회사가 되었다. 애플 팬보이를 자처하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애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까지 개인의 취향을 설명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애플이 좋다. 소니도 좋고, 발뮤다도 좋고, 무인양품도 좋고, HAY도 좋고, 틴에이지 엔지니어링도 좋지만, 결국 그 바탕에는 애플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에서 아이팟 나노를 꺼내던 순간, 종이봉투에서 맥북 에어를 꺼내던 순간이 생생하고, 별것 없을걸 알면서도 애플의 원 모어 띵 One more thing 을 기다린다. 애플 카드 빨리 만들고 싶다.
사족. 만화에 미쳐있던 12살 때 투니버스에서 Traffic이라는 제목의 아이맥 광고를 봤다. 본 광고는 카피 한 줄 없이 아이맥의 우아함을 보여주었다. 애플 광고는 1984년 출시한 첫 번째 매킨토시부터 지금까지 TBWA\Media Arts Lab이 계속 만들고 있는데, 나는 이 광고 덕분에 TBWA\Korea 주니어보드와 인턴을 하며 광고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데...
https://youtu.be/NScX8-8Z1z0
#작심삼십일_취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