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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Apr 23. 2019

오늘 점심은 부추전이다

작심삼십일 취향편 #14

부침가루 유통기한이 다음다음 주면 끝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오렌지를 사러 마트에 들렀는데, 누가 봐도 부추같이 생긴 아이를 발견했다. 구글 번역기에 쳐보니, 부추 맞단다. 외국에 살면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서 이렇게 뭐라도 하나 찾으면 그날은 소소한 파티가 열린다. 그래, 오늘 점심은 부추전이다. 


부추전을 포함한 전류는 그래도 재료 준비까지는 어렵지 않은데, 부치는 게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프라이팬은 어느 정도 달궈야 할지, 기름은 어느 정도 두를지, 반죽은 얼마나 넣어서, 어느 정도 두께로 펴야 할지, 언제 어떻게 뒤집어야 할지, 매번 새롭고, 매번 모르겠다. 욕심부리지 않는 게 관건이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첫 번째 전을 완성했다. 잘 익기는 했지만, 기름이 부족해서 바삭하지 않고,  너무 두꺼워서 조금 질기다. 이 기세를 몰아 두 번째 반죽을 올렸다. 이번에는 기름도 넉넉하게 두르고, 반죽 양도 줄였는데... 아, 더 줄였어야 했다. 두 번째 전은 조금 바삭해졌지만, 여전히 두껍고 질기다. 


남은 반죽 양을 보니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서 다 올렸다. 아, 두 개로 나눠서 부칠 걸 그랬나. 할 수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름 조금 더 두르고 불도 조금 올렸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어서 뒤집었다. 짜잔! 그래, 이래야지. 마지막 전이 익는 사이, 실패작들을 빠르게 먹어치웠다. 


마지막 전은 아름다웠다.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했다. 두께도 이 정도면 합격이었다. 그러나 내 위에는 이 아름다운 부추전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어차피 바삭하지 않아서 나중에 먹어도 되는데, 왜 그렇게 서둘러서 먹었을까.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작심삼십일_취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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