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십일 취향편 #18
스톡홀름에 좋아하는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오면 같이 가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다. 관광으로 가기에는 뭐하고, 계절을 잘 못 만나면 가기 애매한 동네이지만, 나는 언제 가면 좋은지 아니까 괜찮다.
아테펠라그는 스톡홀름에서 동쪽으로 버스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가다 보면 있는, 숲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전시는 그냥 그렇고, 미술관 주변으로 산과 바다를 끼고 산책길이 아름답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아름답다.
나는 작년 가을에 처음 다녀왔다. 한 시간은 해안을 끼고 걸으면서 수면 위로 비치는 햇살에 감탄하고, 다른 한 시간은 숲 속을 걸으면서 숲이 주는 포근함에 소소하게 행복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연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지 조금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겨울에 다녀온 친구들 말로는 눈이 오면 또 그 나름대로 아름답다는데, 그 언젠가를 위해 아껴두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 손 꼭 붙잡고 주말마다 가고 싶은 곳이다.
여기에 오면 세상 모든 잡지를 만날 수 있다. 스톡홀름 가게 대부분이 6시 전에 문을 닫아서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유일하게 8시까지 하는 곳이라 마음이 한적한 날 가곤 한다. 게다가 크지도 않은데 늘 한산해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잡지에 파묻히기 좋다. 사랑해 마지않는 곳.
스코그쉬르코고르덴은 스톡홀름 남쪽에 위치한, 공동묘지 공원이다. 공동묘지를 둘러싸고 거대한 공원이 있다. 일찍이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공동묘지 특유의 엄숙한 기운이 감돌고 있지만, 아티펠라그와 마찬가지로 걷다 보면 스웨덴 특유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스톡홀름의 여름은 그 어느 곳보다 눈부시다. 20도에서 25도 사이의 건조하고 화창한 날씨에, 해는 밤 11시까지 지지 않고 도시를 환하게 비춘다. 사람들 입가에는 늘 미소가 맴돌고, 도시에는 행복과 활기가 넘친다. 그러면 나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각자 먹고 싶은 음식과 맥주를 들고 소피아 교회 앞 공원에 간다. 특별할 것도 없다. 그냥 내리쬐는 해를 바라보고 누워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든 좋겠지만, 이 공원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스투어카텐은 스톡홀름 중심가에 위치한 스웨덴 전통 카페이다. 전통이라니 웃기지만, 스웨덴 커피, 스웨덴 디저트를 팔고, 인테리어도 옛날 스웨덴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카페다. 예전에는 스웨덴 하면 이케아, 볼보, 아크네, 코스처럼 세련미 넘치는 브랜드가 떠올랐다. 북유럽 하면 미니멀하고, 세련되고, 시크하고 그럴 것 같잖아.
그런데 조금 살다 보니 이 양반들 검은색 옷만 입고, 벽은 죄다 하얗게 칠하고, 빈티지 덕후에, 무뚝뚝하고, 침묵을 사랑하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진실하고 수다를 사랑하고, 눈치도 엄청나게 보면서 조심스럽게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소박한 사람들이 어쩌다 그렇게 멋쟁이로 소문이 나버린 걸까.
그래서 지금은 스웨덴 하면 스투어카텐같이 편안하고, 집 같은 카페가 떠오른다.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편안한 소파에 퍼지게 앉아, 장식도 많고, 가끔은 꽃도 잔뜩 그려진 잔에 담긴 커피에 집에서 만든 것 같은, 그리고 모양은 투박하지만, 맛은 정성스러운 디저트 하나 놓고 오후 내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울릴 때까지 피카를 하고 싶다.
#작심삼십일_취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