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스 아카데미 디자인 세미나 Object++ 참석 후기
취업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던 10월의 어느 날, 링크드인으로 메시지가 왔다. 자신을 이탈리아의 디자인 대학원 도무스 아카데미의 입학 홍보관이라 소개한 담당자님은 인터랙션 디자이너이자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및 서비스 디자인 석사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미켈레 아퀼라(Michele Aquila) 교수의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데, 2부에서 진행할 패널 토크에 패널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입사가 결정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전화를 했다.
담당자님은 내가 작년 봄 IxDA(인터랙션 디자인 협회)에서 주최한 인터랙션 디자인 콘퍼런스 Interaction 18에 다녀와서 PUBLY와 쓴 <인터랙션 18, 디자인으로 연결하다> 리포트를 보고, 패널 토크 세션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연락했다고 알려주셨다. 인터랙션 디자이너 선배에게 궁금한 이야기를 직접 물어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참석을 결정했다.
세미나는 미켈레 아퀼라(Michele Aquila) 교수의 짧은 강연과 질의응답을 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패널 토크 순서로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나는 모더레이터로서 그에게 질문하고, 듣는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긴 여운으로 남았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그와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보았다.
패널 토크는 먼저 미켈레 교수가 인터랙션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했다. 한국에서 말하는 인터랙션 디자인은 UX 디자인과 UI 디자인 사이에 존재하며, 그 두 영역을 보다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마이크로 인터랙션 혹은 모션 디자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인터랙션 디자인은 조금 달랐다.
그는 사용자와 디지털 제품의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이 인터랙션 디자인에 들어가며, 사용자와 디지털 제품이 상호 작용하는 방법과 감정을 정의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답했다. 여기에 도무스 아카데미의 인터랙션 디자인 과정에서는 UX 디자인과 피지컬 인터랙션을 함께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디지털 요소가 없는 제품은 인터랙션 디자인이 존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의자에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정의하는 UX 디자인이 존재할 수 있지만, 색을 바꾸거나, 형태나 크기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인터랙션 디자인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최근 디자인 업계의 화두와 인터랙션 디자이너로서 할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어떻게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할지, 세계화에 따라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존중하고, 지켜나갈지, 사회에서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등이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으며, 인터랙션 디자이너는 본인이 익숙한 디자인 영역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각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와 협업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하와이의 2050년은 어떻게 변할지 다양한 관점에서 시나리오를 만들어보고, 배울 점을 찾는 <Four Futures of Hawaii 2050>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하와이 미래 리서치 센터와 카네기 멜론 대학교의 스튜어트 캔디 교수 등이 진행한 본 프로젝트는 2050년의 외부 환경 변화가 사람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4가지 시나리오를 만들고, 롤플레이를 통해 그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여기에 더해 이러한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디자인 방법론으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소개했다. 미켈레 교수는 Interaction 20 Edu Summit의 공동 준비 위원장으로 내년 행사를 한참 준비하고 있는데, 연사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디자이너 혹은 교수를 초청할 예정이라고 귀띔해주었다.
다음 질문은 강연 이야기로 돌아와서 스마트한 제품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본인이 생각하는 혁신적인 제품은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우리에게 지금까지는 사용자가 제품을 골랐지만, 그 반대로 제품이 사용자를 정하는 시대가 오면 어떤 제품이 등장할지 물었다. 이는 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각 제품의 활용 가능성을 높여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프로젝트, <Addicted products>를 소개했다. 본 프로젝트는 가상의 공유 토스터 대여 서비스로, 다수의 토스터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토스터마다 감정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누가 사용자에게 더 많이 선택되고, 사용되는지 인지하여, 누군가 다른 토스터를 사용하면, 그와 비교하고, 질투하고, 압박을 느끼며, 이러한 감정을 트위터에 올린다.
미켈레 교수는 이 토스터가 실제 나올 제품은 당연히 아니지만, 소비자와 디자이너가 자원의 활용과 순환, 소비, 공유, 제품 디자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도무스 아카데미 질문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우선 인터랙션 디자인 석사 과정 커리큘럼부터 알려주었다. 프로그램은 크게 4개 모듈로 나뉘어 있으며, 각 모듈은 회사 혹은 단체에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5주 동안 학생들이 직접 해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기간 동안 과제 정의, 중간 리뷰, 피드백, 프로토타이핑과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모든 과정이 끝나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인턴십을 한다. 내가 다닌 하이퍼 아일랜드와 커리큘럼이 매우 유사하지만, 인턴을 직접 안 구해도 된다는 점이 좋아 보였다.
미켈레 교수는 도무스 아카데미의 특징으로 Problem Solving보다 Problem Setting을 강조한다는 점을 꼽았다. Problem setting은 관찰, 인터뷰, 설문조사 등의 사용자 리서치를 통해 사용자와 공감하고,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Problem Solving과는 어떻게 다를까? 패션을 생각해보자. 패션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고, 그 트렌드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Problem solving은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면, Problem setting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드는 일이다. PDA 혹은 블랙베리를 만들던 사람은 Problem solving의 관점에서 조금 더 나은 전화기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Problem setting의 관점에서 기존에 없었던 문제를 새롭게 정의했고, 그 결과로 아이폰,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없는지 물었다. 디자이너든, 학생이든, 광고인이든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같다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우리는 늘 어려운 문제와 마주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조사하고, 아이데이션 하고, 프로토타이핑하고, 테스트하고, 실패하고, 개선한다. 세상 어디에도 같은 문제는 없다. 따라서 같은 일도 없다. 이 모든 과정을 지치지 않고 잘 수행하려면 호기심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다만, 왜 실패했는지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디자인 툴은 생각만큼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배우고 싶으면 온라인에서도 금방 배울 수 있다. 업무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 말을 잘 이해하고, 자기의 생각을 잘 잘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 책 많이 읽고, 영화 많이 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면서 영감을 받길 바란다."
패널 토크가 끝나고, 미켈레 교수와 내년 Interaction 20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혹시 IxDA Seoul 챕터를 열고 싶으면 자기가 도와줄 테니 알려달라고 했다. 도와주러 갔는데, 결과적으로 도움을 받고 왔다. 내년 밀라노에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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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마련해주신 입학 홍보관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재미있는 시간 보냈습니다. 또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