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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Jan 01. 2020

언제나처럼 다사다난했던
2019년 돌아보기

스톡홀름에서 다시 서울로. 

올해도 언제나처럼 다사다난했다. 스톡홀름에서 서울로 돌아왔고, 틈새를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애쓰던 삶은 다시 틈새를 찾아 헤매는 그 옛날의 삶으로 돌아왔다.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가끔씩 지난봄과 여름을 떠올리며 아득해졌고, 겨우 좁혔다고 생각했던 현실과의 시차는 또다시 벌어졌다. 



퇴사와 귀국


그 모든 외로움을 홀로 견디면서 버틸 충분한 이유가 없었다. 달려도 모자란 시기에 쉽게 지치고, 권태에 빠지고, 때때로 무너졌다. 도움의 손길은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족과 오래된 친구, 익숙한 음식과 익숙한 동네가 그리웠다. 돌아가면 가만히 있어도 힘이 날 것 같았다. 그나마 믿고 있던 시니어 디자이너는 여름이 지나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왔다. 


후회하지 않냐고? 언젠가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괜찮다. 이번에 퇴사하면서 스웨덴은 원하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마음속에 작은 보험을 들어둔 기분. 흐트러졌던 마음 잘 추스리기, 잃었던 건강과 관계 회복하기, 보다 나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과 지식 쌓기를 목표로 잘 지내보기로 했다. 


이직을 결심하는 순간

퇴사를 앞둔 주말의 다섯



이직


이직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고통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내 아이디어를 파는 일은 괜찮은데, 나를 파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어색하고, 불편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봐 줬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볼일 없는 말에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깎였다. 겸손을 핑계로 너무 저자세로 나갔다. 거만하고 뻔뻔하게 굴다가 책상을 뒤엎고 나오던가 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회사들이 3-5년 차 디자이너에게 어떤 경험과 능력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비즈니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회사는 여러 분야를 애매하게 아는 사람보다 하나를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고, 할 거면 모두 잘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분야의 경험을 쌓고, 어떤 실력을 키워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짧은 만남에 가능성을 끄집어내 준 고마운 사람들도 만났다.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고, 버티다 못해 무너지는 와중에 한 줄기 빛이 되었고,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정영님, 진규 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비록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같이 일하면서 보답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서울, 스웨덴, 스위스, 다시 서울의 다섯



새로운 회사


새로운 회사는 만족스럽다. 긴 여정 끝에 맞는 자리에 온 것 같다. 모든 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일 자체는 흥미롭지만, 프로세스는 계속 의문이 든다. 정말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을까?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계속 미련이 남는다. 솔직히 돈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 순간에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고, 여전히 자동차에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금 당장 후회는 없다. 다만, 안주하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든다. 이직 과정에서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어떤 경험을 쌓고 싶은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항상 되뇌는 수밖에 없다. 


이직의 다섯



작심삼십일


작심삼십일 취향 편에 참여했던 한 달은 정말 특별했다. 지금은 모두 서울로 돌아왔지만, 그때만 해도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던 빵 밴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었고, 글을 계속 쓰고 있었던 덕분에 외할아버지 장례식에 가던 비행기 안에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아, 기중님 덕분에 백예린 라이브도 한참 들었구나. 


온라인에서의 인연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도무지 못 갈 줄 알았던 뒤풀이에도 참석하고, 여름에 다시 만나서는 교자를 먹었다. 원준 님과는 8월 어느 날 암스테르담에서 모닝커피를 함께하기도 했으며, 결국 연말 동문의 밤에서 모두를 만나 근사하고 (음식과 다양한 관점으로) 풍부한 저녁을 함께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훈훈하다. 그때 받은 책 빨리 읽어야 하는데. 


나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외할아버지, 편히 쉬세요

작심삼십일 동문의 밤의 다섯



사이드 프로젝트


코딩은 비로소 취미가 되었다. 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니 잘해야 한다거나 억지로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졌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즐거워졌다. 똑똑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만든 라이브러리나 프레임워크를 살펴보고, 따라서 써 보면서 그들의 천재성에 감탄하는 재미도 찾았다. 


5월에는 자바스크립트 애니메이션 라이브러리 몇 가지를 사용해서 <Hangul in motion>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Framer 콘퍼런스에 다녀와서는 Framer X에서 사용할 수 있는 <Animated Letters> 패키지를 만들었다. 자신감이 붙어서 React로 간단한 아카이빙 앱과 Framer Korea Meetup 사이트도 만들었다. 


Hangul in Motion

Animated Letters

Archive App

Framer Korea Meetup



듀오톤 브랜딩


듀오톤 브랜딩 프로젝트는 5월에 가볍게 시작했는데, 11월 초가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했다. 처음에는 슬로건 카피만 쓰기로 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매니페스토 카피에 회사 소개서까지 쓰게 되었고, 여기에 듀오톤이 이런 회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브랜드 전략과 듀오톤 이름으로 나가는 모든 텍스트에 공통으로 적용하면 좋을 Tone of Voice도 잡아서 드렸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듀오톤의 일원이 된 기분으로 작업했다. 


이렇게 사전 리서치부터 설문조사, 벤치마킹, 인터뷰, 관찰 조사, 추가 인터뷰, 콘셉트 개발, 제안, 피드백, 수정 제안까지 순서대로 진행한 프로젝트는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 참 미숙하고 허술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족함을 이해해주시고, 가끔은 무례했던 인터뷰 질문에 흔쾌히 답해주시고, 피드백 주시고, 좋다고 말해주시고, 벌써부터 여기저기에 카피를 쓰고 계신 듀오톤 두 대표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얼른 브랜딩 과정과 매니페스토 카피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포스팅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슬로건은 우선 공개 ✨



특강 / 세미나


여기저기서 불러주신 덕분에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직을 고민하던 여름에는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는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지를 이야기했고, pxd에서는 북유럽의 디자인 에이전시가 일하는 방식을 전했다. 가을에는 오픈 패스에서 심리학부터 마케팅, 디자인에서 말하는 사용자 리서치를 이야기했고, 대학교 후배들 앞에서 어쩌다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디자이너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디자인 스펙트럼과 도무스 아카데미 행사에서는 모더레이터로도 참여했다. 내가 궁금한 점을 연사에게 직접 물을 수 있어서 좋았고,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서 연사가 더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 재밌었다. 연사들에게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며 좋은 피드백을 받아서 이래저래 뿌듯했다. 아쉽게도 회사 규정이 외부 활동에 썩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서 내년에는 조금 잠잠하지 않을까 싶다. 


What's next; 내일을 준비하는 디자이너

Design in Sweden, Designer in Sweden

The Unexpected Journey of Jinbread

인터랙션 디자이너 미켈레 아퀼라와의 패널 토크



워크숍


스웨덴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홍익대학교의 김재엽 교수님을 만났다. 그게 인연이 되어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에서 디자이너를 위한 머신러닝 프로토타이핑 특강을 진행했다. 머신러닝의 개념을 잡고, 아두이노와 프로세싱, 위키 네이터를 사용해서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다만, 3시간에 너무 많은 내용을 밀어 넣다 보니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했고,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린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다. 


12월에는 작년에 이어 Year-end 워크숍을 진행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두 번 진행했고, 시간은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렸으며, 참가 인원은 회차당 36명으로 제한했다. 노쇼 방지와 대관료 지급, 물품 구매를 위해 참가비 1만 원도 받았다. 절반은 작년에 오신 분들이었고, 나머지는 그분들이 추천해서 오신 분들이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끝났다. 2020년 연말에도 또 해야지. 


Machine Learning Prototyping for Designers

올 한 해 제대로 돌아보고 차분히 내년 준비하기



디자인 스펙트럼


객원 필진으로 가끔씩 참여하던 디자인 스펙트럼에 귀국하자마자 정식으로 합류했다. 올해는 몸풀이 차원에서 행사 스태프 참여 및 콘텐츠 교정, 교열을 보고 있지만, 내년에는 디자인 스펙트럼 이름으로 조금 더 다양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팀원 분들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스펙트럼을 넓히다 - 사운드 UX 편





전 회사와 새로운 회사 일, 하루가 다르게 크는 조카들, 부모님과 스위스/스웨덴 여행 이야기는 물론 Framer Korea Meetup 이야기, 재엽 님과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지홍님, 진영님, 혜강님과 준비하고 있는 책 이야기도 빠졌는데도 이 정도인걸 보면 올해도 참 부단히 애쓰며 살았다. 뭐, 내년에도 이렇게 부단히 애쓰며 살아볼 예정이다. 언제나처럼 다사다난했던 2019 돌아보기 끝. 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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