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섯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재 Dec 15. 2019

작심삼십일 동문의 밤의 다섯

그렇다. 우리는 어느새 2019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1. 어제는 작심삼십일 동문의 밤 행사에 갔다. 한옥을 개조한 프라이빗 키친에 모여 작심삼십일 멤버들이 손수 준비한 저녁을 먹고, 각자의 2019년을 이야기했다. 선물로 각자 가져온 책을 나눠갖고, 행사 끝무렵에는 짧은 글을 썼다. 디자인과 일만 바라보고 달려온 2019년을 다른 관점에서 돌아보고, 내년은 조금 더 풍부한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한, 꽤나 근사한 밤이었다. 


2. 조카 둘이 집에서 자고 가는 날이면 조카들로 가득한 하루가 된다. 퇴근하는 소리에 맞춰 첫 째 조카가 달려오고, 이제 겨우 기어 다니는 둘째 조카가 목을 쭉 빼고 나를 바라본다. 내가 다시 나갈까 봐 빨리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하고는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러다가 한쪽 손을 잡는다. 오늘 뭐했는지 자랑할 차례인가 보다. 나도 조카들을 따라 눈높이를 낮추고 집안 구석구석 숨어있는 조카들 만의 공간에 들어가 세상을 바라본다. 


숫자를 읽고, 알파벳을 읽고, 퍼즐을 맞출 뿐인데, 뭐가 그리 재밌을까. 언제까지나 이렇게 세상이 재미있으면 좋을 텐데.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으면 어느새 조카도 흥미가 떨어졌는지 나를 등지고 장난감을 찾아간다. 나는 그러면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잠에 든다. 내일 아침부터 새벽같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놀아달라고 떼쓸 조카들을 위해.


3. 여의도에 한강이 보이는 집을 사고 싶어요. 그게 꿈이에요? 아뇨. 아니에요. 꿈은... (내 꿈이 뭐였더라?) 꿈은 하여튼 아니에요. 그냥 내 공간을 갖고 싶어요. 지금은 어디에서 살든 객(客)의 삶을 사는 것 같아요. 그럼 정착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것도 아니에요. 워낙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라서 언제든 돌아와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해요. 그렇다면 물리적 공간보다는 관계가 핵심 아닐까요? 그렇네요. 집 같은 관계. 나를 맞이해주는 그런 사람과 관계. 같이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그런 관계. 


4.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직도 헷갈린다. 그래도 실력보다 말이 앞선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과거에 취해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 경험, 소감, 배운 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나처럼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나.


5. 작심삼십일 동문의 밤 행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길, 어떤 인사를 나눠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게 올해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튀어나왔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새 2019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근사한 밤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