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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Apr 13. 2019

나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작심삼십일 취향편 #6

세명이는 군대 후임이었다. 언니네 이발관과 Weezer 음악을 듣는 사람이 이렇게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서로 놀라고,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때쯤 기타를 혼자 배우기 시작했는데, 세명이가 자기는 드럼을 친다며 전역하고 공연을 같이 해보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하루하루가 늘어진 테이프마냥 느리게 흘러갔기 때문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러자고 했다. 나는 2011년 여름에, 세명이는 겨울에 전역했다. 우리는 그때 말했던 공연을 해보기로 했다. 각자 사람을 모아 오기로 했다.


석영이는 고등학교 친구였다. 위닝 일레븐이 한참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라 남자애 대부분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학교를 빠져나와 플스방이나 PC방에 갔는데, 나는 스타크래프트나 총 쏘는 게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담배 냄새 배는 것도 싫어서 노래하기 좋아하는 애들 몇과 모여 노래방에 갔다. 석영이는 보컬 트레이너가 가르칠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노래를 잘했던 친구여서 같이 가면 주눅 들 틈도 없이 늘 감탄하기 바빴다. 대학에 와서도 우리의 인연은 끈질기게 이어졌고, 결국 공연도 같이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꼬셨지만.  


세명이가 베이스를 치는 준호를 데려왔다. 준호는 세명이와 니가대장이라는 밴드에서 만났다. 자취방도 근처였던 둘은 그 이후로 대학 생활 내내 붙어 다녔다. 세명이는 가는 곳마다 이상하리만큼 사건 사고가 따라다녔는데, 준호는 그 옆에서 한껏 흥미로운 눈으로 차분히 지켜보면서 사진에 담다가, 세명이가 만취하면 집에 데려다주었다. 물론 다음날 사진을 보여주면서 놀리는 것도 잊지 않았고. 나는 동아리 친구의 소개로 기타리스트 강현이를 데려왔다. 강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에서 기타를 쳤고, 잠시였지만, 현역 가수의 세션으로 활동했다. 평소에는 무덤덤한데, 소리에 있어서는 그 누구와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세명, 석영, 준호, 강현은 애청자 밴드를 결성하고 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밴드 둘, 보컬 너 다섯 명이 모여 애청자, 애매한 청춘들의 자선 공연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공연이었다. 우리는 바로 그 해 겨울, 두 번째 공연을 준비했다. 이번 공연에는 강현이가 키보드를 치는 자기 고등학교 동창 요섭이를 데려왔고, 디자이너로 합류했던 소임이가 키보드를 치는 자기 고등학교 동창 형윤이를 데려왔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특정 주제만 나오면 갑자기 흥이 넘치는 요섭이는 대학교에서 부전공으로 작곡을 공부해서 그런지 전체 밴드 사운드에 균형을 잡아주었다. 석영이는 남미로 교환학생을 가는 바람에 이번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나는 지난 공연에 공연과 기획을 둘 다 했었는데, 기획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보니 이번에는 공연 기획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밴드 하나가 갑자기 빠지겠다고 했고, 공연 곡 수가 모자라게 되었다.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세명이가 같이 이 빈틈을 채워보자고 했다. 준호, 강현, 형윤이도 나섰다. 우리는 the bread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었고, 나는 보컬과 세컨드 기타를 맡았다. 우리는 솔루션스의 Lines, Snow Patrol의 Chasing Cars, Weezer의 Pork and Beans 이렇게 세 곡을 준비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 기획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끝나고 자책해봐야 바뀌는 것도 없다. 공연 기획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지만, 밴드는 계속하고 싶었다. 나는 세명, 강현, 준호와 연습실에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 될 때 모여서 부담 없이 연습하고, 기회가 있으면 공연하되, 그 기회를 직접 만들지는 않기로 했다. 뉴욕으로 떠난 형윤이의 자리는 요섭이가 대신하기로 했다. 우리는 드문드문 합정이나 신논현에 있는 연습실에 모여서 연습을 했다. 그리고 첫 무대로 요섭이의 연구실 교수님이 여시는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그러는 사이 석영이의 오해가 쌓여갔다. 석영은 우리가 하는 밴드가 애청자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와 세명이, 준호는 석영이 학교 앞으로 찾아갔고, 신촌 굴다리 앞 작은 맥줏집에서 남자 넷이 눈물을 흩뿌리며 오해를 풀었다. 나는 기타를 치고, 세명이는 드럼을 대신해 젓가락으로 테이블과 잔을 두들기고, 석영이는 노래를 불렀다. 준호는 우리의 주사를 카메라에 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맥주집에서 쫓겨났다. 얘네랑 술 마시면 꼭 이러더라. 석영이와 세명이는 그 이후로도 신촌 길거리를 거닐며 주사를 부렸지만, 본인들은 기억이 없단다.


이렇게 아무런 연고도 없던 나, 세명, 준호, 석영, 강현, 요섭 여섯 명이 모여 지금까지 the bread를 하고 있다. 지금은 모두 취업을 했다. 그 사이 요섭이는 결혼을 해서 애가 있고, 석영이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나는 스웨덴에서 일을 하고 있다. 모두 먹고사는 게 바빠서 예전처럼 공연 준비를 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다.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고,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서로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뭉칠 날을 위해 나는 기타를 연습하고, 세명이는 드럼을 치고, 준호는 베이스를 잡고, 강현이와 요섭이는 장비를 바꾼다.


지난겨울,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석영이를 제외하고 다섯 명이 연습실에 모였다. 오랜만에 모여서 어려울 법도 한데, 합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다들 별말은 없었지만,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이어진 뒤풀이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자주는 못 만나겠지만, 오래오래 만나자고.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아는 사람 중 몇 안 되게 잘 알고, 빛나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놈들. 석영이는 지난달에 런던에서 만났고, 나머지는 이번 여름에 기를 쓰고 만나야겠다. 밴드 얘기로 시작해서 음악 얘기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사람 이야기만 했다. 하긴, 우리 밴드 얘기는 하룻밤으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작심삼십일_취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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