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재 Oct 27. 2020

언택트 시대, 멀어진 만큼 더 가까워진 ACT

코로나 19로 많은 게 바뀌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있었던 친구나 지인들과 약속도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만날까 말 까고, 한 달에 한 번은 가던 미술관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계속 높아지면서 더 조심하고 있다. 그래도 주말 하루 정도는 밖에서 바람도 쐬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안전과 위생을 최우선으로 둔 상태에서 걱정을 조금 내려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공원이나 산 같은 야외, 혹은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은 실내를 찾는다. 물론 요즘은 산이나 공원에도 사람이 쏟아져 들어오는 탓에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공간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나마 스타필드나 IFC 몰 같은 대형 쇼핑몰 정도?


여기에 사람들이 코로나 19 걱정 없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전시나 작품이 들어온다면 어떨까? 마침 스타필드 하남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액트: ACT(Art Content Technology)’라는 제목으로 언택트, 기후 변화 등의 주제의 미디어 아트 작품을 실내 아트리움들과 야외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이는 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추진한 2020 문화기술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서 선정하고 육성한 문화 기술 기업들의 결과 전시로 스타필드 하남에서는 아트리움과 미디어 타워, 파노라마 스크린 등 주요 광고매체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코로나 19로 오프라인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공공 전시나 행사 대다수가 취소된 상황에서 기업과 함께하는 이런 시도는 신선한 콘텐츠나 영감을 찾아다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사족은 이 정도로 하고 전시하고 있는 작품 몇 개를 살펴보자.


Stay connected

매드제너레이터 (teamVOID)


스타필드 하남 서쪽 출입구로 들어가면 로봇팔 두 대가 커다란 거울을 하나씩 매달고 오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작품을 보러 온 사람은 두 로봇팔 앞에 서서 그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거울을 바라본다. 때로는 서로를 마주 보고, 때로는 오고 가는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에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다. 대신 스타필드 하남에 막 들어선 가족, 건너편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커플, 2층으로 올라가는 사람 등 타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외부의 질병으로 그 시기가 급격히 당겨졌지만, 언젠가 맞이하게 되었을 미래입니다. 우리는 이미 직접 만나기보다 SNS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알고 안부를 묻고, 매일 무수히 많은 새로운 친구를 추천받으며 인간관계를 넓혀가면서 사회적 안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이는 언택트 시대에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통해 타인과 대면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으며 코로나 19로 촉발된 언택트 시대에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작품의 의미와는 별개로 대형 쇼핑몰 아트리움에 무언가가 있는 경우 대부분 특정 브랜드의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성격을 띠는데, 그와 상관없는 미디어 아트 작품이, 그것도 거대한 로봇팔 두 대가 쇼핑몰 곳곳을 거울로 비추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내일의 바다

릭스스튜디오


1층을 조금 돌아다니다 보면 센트럴 아트리움에 3층 꼭대기까지 연결된 거대한 미디어 타워에 재생되는 영상을 살펴보다 보면 틱톡과 각종 광고 사이로 북극곰 한 마리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내일의 바다’라는 제목의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지구온난화로 녹아버린 빙하와 높아진 해수면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북극곰과 그 아래로 바다 생명이 아닌 플라스틱 병들이 마치 자신들이 바다의 주인인 것처럼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작품의 규모나 이야기하는 주제를 봤을 때 아마도 이번 전시의 메인이 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다만, 영상으로 스토리를 표현하다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의 이목을 끌기 어려웠다는 점이 아쉬웠다. 담당자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는 매체 앞에 있는 센서를 활용해서 인터랙티브 한 콘텐츠를 만들려고 했으나, 세로 스크린 미디어타워와 가로 파로나마 스크린이 어우러지는 구조에 맞춰 그래픽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경했다고 들었다. 기존 기획안을 밀고 나갔으면 어땠을지 궁금했다.



Message Tree

신성TSC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아트리움에도 미디어 작품이 하나 있다. 불투명한 타원형 아크릴 보드들이 매달린 여러 개의 기계 팔들이 사람이 다가가면 그에 반응하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움직이고, 그런 인터랙션이 반복되면 이 기계 장치는 군무를 선보인다. 아두이노와 복수의 센서를 사용하여 제작했다는 설명을 읽어보니 아마도 근접 센서로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모터를 이용해 위아래로 움직이게 만든 것 같다. 작품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관객의 관심과 행동이 에너지가 되어 메시지 트리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듯,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제야 기계 팔은 나뭇가지, 아크릴 보드는 나뭇잎, 그리고 이 모든 게 하나로 묶여 나무의 형상으로 인식되고, 사람이 나무에 다가가는 행동이 메시지를 보내는 하나의 인터랙션으로 해석되며, 작가는 결국 이러한 우리의 관심이 결국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여느 미술 작품이 그러하듯 설명 없이 그 자체만으로 의도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빠르게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좋았고, 대형 쇼핑몰 특성상 조명이 많이 있는데, 아크릴 소재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몰라도 그 자체로 예뻐 보여서 좋았다.



이 외에도 롤비(Rollvi)라는 스타트업이 만들고 있는 AR 필터를 이용해 릴레이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서비스의 프로토타입, 티슈오피스(Tissue Office)라는 스타트업이 만들고 있는 “숨은 요정 찾기 : 내 안의 기후 위기 요정을 찾아서”의 프로토타입을 시연하고 있었다. 전자는 언택트 시대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후자는 귀여운 그래픽으로 기후 변화라는 어려운 주제를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면 좋을지 제안하려는 시도가 좋았다. 지하 1층에는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하는 문화 기술 스타트업이 만들고 있는 프로토타입과 서비스를 설명하는 공간이 있어서 어떤 사업을 육성하고 있는지 쭉 한 번 살펴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전시 작품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상업적인 공간 곳곳에 미디어 아트 작품이 녹아져 있어서 쇼핑하는 중간중간에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브랜딩이나 제공하는 굿즈의 퀄리티가 디자인적으로 좋아서 공기관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스타필드 하남 입장에서는 아트 마케팅인데, 메시지에 개입하지 않고, 매체와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물러서다 보니 공적인 목적이 확실하게 드러나서 의미적인 측면에서도 단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은 많이 아쉬웠다. 지금은 사진을 개인 SNS에 해시태그를 달아서 올리면 굿즈를 준다고 되어 있는데, 나만 해도 내 피드에 내 의도와 상관없는 게시물을 올리고 싶지 않다 보니 이런 캠페인은 자연스럽게 참여를 꺼리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ACT 작품 자체가 인터랙티브 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거나, 인증하고 싶은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기 좋은 위치를 제공하여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콘텐츠 자체의 퀄리티나 캠페인의 주제도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언택트 시대와 기후변화라는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다루다 보니 전시 작품 간의 일관성이 떨어져서 관객 입장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좋은 시도였음에는 분명하고, 다른 곳에서도 이런 형태의 미디어 아트 전시가 이어져서 코로나 19로 지쳐가는 일상 속에서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본 콘텐츠는 경기콘텐츠진흥원/광교클러스터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나처럼 다사다난했던 2019년 돌아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