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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Aug 13. 2017

네모난 틈 사이로
포르투가 조금씩 보인다

포르투에 눌러앉은 일주일 #2

Torre dos Clerigos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난간에 다가서면 양 손바닥이 다한증 걸린 사람처럼 땀으로 흥건해진다. 덕분에 케이블카, 회전 관람차, 전망대 등은 모두 기피 대상. 그런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어서 올라갈 생각을 했을까. 이 도시 전경을 눈에 담고 싶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아니 남겨야겠다.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도시에 높은 건물이 정말 없다


분명 3유로라고 들었는데 4유로란다. 그새 가격이 올랐나. 여기 올라가려고 얼마를 걸어왔는데, 1유로 때문에 돌아갈 수는 없지. 학생 할인은 안 보인다. 4유로를 내고 입장.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물가 탓인지 4유로도 비싸 보인다. 도착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러나. 사람 참 간사하다. 아니면 전망대 오르는 걸 무의식적으로 망설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찍기 좋은 스팟


종탑에 오르기 전, 클레고리스 성당을 먼저 지나야 한다. 두 바퀴를 빙빙 돌면 작은 박물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예수 그리스도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각자 다른 표정과 자세로 서 있는 조각을 바라보는 내 머릿속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어떤 마음으로 조각했을까. 왜 이렇게 묘사했을까. 왜 이 재료를 사용했을까. 


아저씨 덕분에 그래도 마음 편히 올라왔다


박물관을 지나 종탑 가는 길 입구. 계단이 좁다. 한 사람 올라가기도 쉽지 않다. 수많은 관광객이 한 줄로 서서 그 좁은 통로로 올라가고 내려온다. 손잡이가 없다. 계단 사이 틈으로는 아래가 보인다. 내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괜히 올라왔어. 나 고소공포증 있는데. 왜 까먹었지. 인터넷에서 보는 거랑 똑같을 텐데. 그렇게 투덜대며 한참을 올랐다. 


저 뒤로 루이스 다리가 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끊임없이 꼭대기로 향하던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네모난 틈 사이로 포르투가 조금씩 보인다. 그래. 이래서 올라왔지. 이걸 보려고 올라왔지. 


조금 더 넓은 뷰


엄청 넓어보이는데 실제로 가보면 작다


오렌지색 지붕 위로 하늘이 파랗다. 낮은 건물 사이로 랜드마크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서있다. 손은 여전히 땀으로 흥건하지만 마음은 차분하다. 이제 내려가서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면 되겠다. 좋은 풍경과는 별개로 높은 곳은 여전히 무섭다. 빨리 내려가야지. 


골목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여유가 느껴진다


종탑을 내려오니 배가 고프다. 긴장했나 보다. 점심은 어디서 뭘 먹을까. 가이드북을 편다. 모르겠다. 구글 맵에서 맛 집을 검색한다. 역시 모르겠다. 포르투 첫 점심은 현지 음식을 먹어야지. 포르투에 가면 대구를 먹으라고 많은 사람들이 조언했지만, 오늘은 그냥 고기가 먹고 싶었다. 그러다가 찾은 집. 와이파이도 되고 리뷰도 나쁘지 않길래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Retiro do Jardim


이거 하나에 빵이랑 같이 먹으면 둘이서도 충분한 양


늦은 점심. 메뉴판을 해석해보려고 애쓰다가 곧 포기하고, 맨 위에 있는 8유로짜리 돼지고기 요리를 시켰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 모르는 음식을 시키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순간, 그 순간만큼은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이 된다. 제대로 시켰을까. 양은 적당할까. 내 입맛에는 맞을까. 잘 못 알아들었으면 어떡하지. 향이 너무 강하면 어떡하지.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은 있다.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길 바라고 있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두꺼운 돼지고기 스테이크 두 덩이와 감자, 샐러드, 밥. 양이 엄청나다. 맛은 무난했다. 돼지고기는 부드럽고 심심하다. 간간한 감자를 조금 잘라 한 입에 넣으면 간이 적당히 맞는다. 느끼함이 맴돌면 샐러드를 털어 넣거나 맥주 한 모금을 마신다. 돼지고기 한 덩이를 해치웠다. 여전히 접시는 새로 나온 것처럼 푸짐하다. 고기만 마무리하자는 일념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넉넉하고 푸짐한 점심이었다.


기린이 마음에 들어서 한 컷



배가 너무 불러서 정처 없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도시 곳곳에 낡은 건물이 보인다. 구석구석 낡고 지저분하다. 다양한 그래피티와 그래픽이 벽을 덮고 있다. 그 위를 햇볕이 내리쬔다. 그 묘한 조합이 발길을 멈추고 잠시 멈춰 서게 만든다.


Casa da Música



카사 다 무지카.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콘서트홀이다. 브랜딩 작업이 인상적이라 기억에 남는다. 노출 콘크리트와 드넓은 광장을 두세 바퀴 걷다가 이내 흥미가 떨어졌다. 헬싱키에서 알바로 알토, 바르셀로나에서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와서 그런가 덤덤했다. 다음에 가면 꼭 들어가야지.


São Bento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추천한 상벤투 역. 근처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사람이 정말 많다.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녔더니 사람이 조금만 많아도 피곤하다. 여기는 어차피 또 올테니 오늘은 그냥 지나가자. 


이렇게 보여도 경사가 꽤 가파르다


하얀 타일 위에 하늘과 구름을 담아보려고 했던걸까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4일은 더 있기로 했으니까. 하루 종일 여유 있게 걸어 다녔더니 피곤이 조금 가신다. 첫날 인상은 일단 좋다. 물가 싸고, 음식 맛있고, 사람들 친절하고, 도시 아름답고. 내일은 어디를 가볼까. 어디를 돌아다녀볼까. 3편에서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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