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에 눌러앉은 일주일 #5
오늘은 포르투에 오면 응당 가야 하는 관광지 몇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시내만 가면 사람이 득실득실하다. 유럽 전체가 휴가철인데다가 포르투가 2017년 유럽 최고 관광지로 선정되면서 사람이 더 늘었다고 한다. 그럼 일단 그 유명한 서점부터 가볼까.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의 영감을 받은 곳으로 알려진 렐루 서점. 어찌나 유명한지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서점 왼쪽에 있는 가게에서 4유로짜리 표를 사고, 다시 나와 서점 앞에 줄을 선다. 서점에 입장료가 있다고? 그렇다. 책을 사면 표 가격만큼 할인해주니 놀라지 말자. 자기 차례가 오면 점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입장한다. 온라인에서 1유로를 더 주고 사면 안 기다리고 들어갈 수 있다.
서점은 이미 관광객 월드. 계단은 올라가려는 사람보다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다. 서가는 입장료가 아까워서 책을 뒤적거리는 사람이 채우고 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5유로나 주고 들어왔는데 빈손으로 나가기는 조금 그렇잖아. 그건 그렇고 조앤 롤링은 어디에서 해리 포터의 영감을 받았을까. 책을 고른 후에야 관광객 뒤로 숨어있던 서점이 조금 보인다. 책을 사러 온 사람도 조금씩 보인다. 관광객이 없었을 때는 어땠을까. 서가 한편에 기대서 그때 분위기를 상상해보았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책 냄새와 섞여 코끝에 가볍게 스친다. 서점은 아늑하고 고요하다. 눈앞으로 레드 카펫이 깔린 듯한 계단이 펼쳐져 있다. 유연하고 독특한 모습이 마치 미술관에 온 것 같다. 행여나 계단이 상할까 두려워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 걷는다. 천천히 넘어가는 책장 위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는 조심스럽다. 건너편 남자는 확신에 가득 찬 듯 책장을 덮는다. 책 몇 권을 들고 가만히 서서 서가를 째려본다. 이윽고 아래층으로 당당하게 내려간다. 창밖으로 해가 쏟아진다. 그 위로 먼지가 뽀얗게 올라온다. 나는 공기에 떠다니는 먼지를 눈으로 좇다가 문득 깨닫는다. 집에 갈 시간이다.
사람이라도 적으면 모를까 누군가 영감을 받은 곳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기란 쉽지 않다.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 덕분에 전반적으로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조금 줄어들면 몰라도 지금 상태라면 두 번은 안 올 것 같다.
입이 심심해서 오늘 먹은 에그타르트, 아니 나타. 시킬 때마다 받자마자 먹어치워서 사진을 못 찍었다. 오늘은 기다리면서 한 장 찍었다.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고, 산뜻하며 겉은 바삭하고 고소하다. 에스프레소 하나 시켜서 같이 먹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 괜히 썼다. 머리에 나타가 맴돈다. 맛있겠다. 또 먹고 싶다. 포르투 공항 내리면 나타부터 먹어야지.
이어서 방문한 포르투 대표 관광지 마제스틱 카페. 모든 가이드북에 소개되었으며 다른 카페보다 4배나 비싼 커피를 판다. 조앤 롤링이 카페 구석에서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을 쓴 것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고, 어느 가이드북은 "Cafe Majestic used to be a pearl, now it's a perfect way to see how tourists can ruin a place."라고 씁쓸하게 소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답다. 자리가 많고, 직원들은 친절하며, 인테리어는 고풍스럽다. 나는 카푸치노 하나 시켜놓고 밀린 글감을 정리했다. 언제쯤 이 생각을 글로 완성할 수 있을까. 호흡이 길고 깊이가 있는 내용이라 잘 쓰고 싶은데, 아직은 자신이 없다. 일단 포르투, 헬싱키, 바르셀로나 여행기부터 마무리하고 생각하자.
오늘 저녁은 소소하게 포르투갈식 돼지고기 샌드위치, 비파나를 먹으러 갔다. 비파나는 빵 사이에 양념불고기 같은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껴서 먹는 간단한 샌드위치이다. 메뉴판을 펴니 다양한 종류의 비파나가 있다. 나는 가장 기본을 시켰다. 가격은 2유로. 맥도날드 치즈 버거 정도 된다. 2분 정도 기다리니 작은 접시 하나에 비파나 하나 올려서 가져다준다. 영철버거 스트리트 버거 생각이 나는 무난한 맛. 치즈가 들어가 있으면 조금 더 맛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으로는 조금 모자라지만, 허기진 오후에 간식으로는 가격과 양 모두 적절하다.
드디어 해가 진다. 해가 늦게 지는 동네에 오면 늘 시간을 착각한다. 낮인 줄 알았는데 밤 10시라니. 어쩐지 다리가 아프더라. 오늘도 2만 걸음은 걸었나 보다. 고생했다. 들어가자.
집에 가는 길.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창밖 풍경이 아름답다. 흔한 퇴근길 풍경인데 건물이 낮고 차가 별로 없으니 이렇게나 다르다. 왼쪽에는 뭐가 있을까.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럴 수가. 마침 문이 열렸다. 가방을 손에 그대로 쥐고 빠르게 뛰쳐나왔다.
이번 여행 최고의 순간. 한참을 넋 놓고 걸었다. 포르투는 꼭 다시 와야지. 이런 다짐을 하며 30분을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좋은 하루였다. 6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