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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Sep 05. 2017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포르투에 눌러앉은 일주일 #6

포르투갈 전체 일정은 1주일이었다. 포르투에 4일, 리스본에 3일 있으려고 했다. 막상 떠나려니 못 가본 곳이 눈에 아른거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은 3일을 보낼 새로운 숙소를 급히 잡았다. 이제 마음이 놓인다. 오늘은 포르투 어디를 가볼까.


북적거리는 도심을 피해 강으로 가자


오늘도 아줄레주는 하늘처럼 파랗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탔다. 강이 보이는 곳에서 무작정 내렸다. 여기도 상벤투 역처럼 북적거리긴 마찬가지. 그나마 강이 있어서 여유롭다. 강을 따라 걸었다. 타파스 바와 음식점이 많다. 좋아 보인다. 누군가와 같이 왔다면 저 복작거리는 무리들 틈에 끼어 포트와인 한 잔씩 시켜놓고, 시간 위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대로 둥둥 떠가는 것도 좋았을 텐데. 


여행책에서 본 것만 같다


힌 발짝 물러서니 사람들이 보인다


와인 싣고 통통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고민 걱정할 틈이 없다


포르투에 도착한 이래 어째 흐린 날이 없다. 공원에는 늘 앉거나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저렇게 누워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도 한적한 곳을 찾아 누웠다. 누워서 바라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해는 따사롭다. 그대로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른건 모르겠고 디저트가 맛있어 보였다


착하기도 하지


강을 따라 시장이 열렸다. 아줄레주가 새겨진 그릇, 작은 장신구, 달달한 디저트를 팔고 있다. 반대편에는 와이너리가 늘어서 있다. 와이너리 투어를 할까, 아니면 그 돈으로 포트와인을 여러 잔 마실까. 누가 있었다면 후자를 택했겠지만, 혼자 마시고 취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전자를 택했다. 어느 와이너리에 가볼까. 


CALEM WINERY


칼----렘!이라고 소리치는 간판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칼렘 와이너리를 추천했다. 좋아한다길래 이유를 따로 묻지는 않았다. 투어는 1시간. 30분 동안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머지는 와이너리 내부를 돌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와인을 전혀 모르는 터라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꽤나 유익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음 타임


달달하니 맛있어서 홀짝이다가 취하기 십상


드디어 와인을 마셔볼 차례. 포트와인은 도수가 높고 달달하다. 한두 번 흔들어 향을 맡고, 입에 조금 가져간다. 입안에는 단 맛이, 코 끝에는 포도 향이 맴돈다. 그대로 천천히 삼켜본다. 목 안으로 향기가 전해진다. 천천히 음미하며 두 잔을 비웠다. 내 입맛에는 화이트가 더 잔잔하니 잘 맞는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금방 취기가 오른다. 옆에 한국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혀가 꼬이는 기분이다. 가만히 있을걸. 입이 방정이다.


겁 없는 녀석들


자세가 묘한 친구


와이너리에서 나와 정신 좀 차릴 겸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다리 위로 1유로에 강으로 몸을 내던지는 겁 없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리 높지는 않았다만,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용감하게 만들었을까. 저건 놀이일까 돈벌이일까. 아니면 그저 구경거리일까. 


마토지뉴스 생선구이 골목


저녁을 먹으러 다시 마토지뉴스에 왔다. 오늘은 반드시 바칼라우 구이를 먹으리라. 해변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생선구이 골목이 나온다. 길거리가 온통 생선 냄새로 가득하다. 흡사 종로 생선구이 골목을 방불케 한다. 어디를 가볼까. 거리를 빙빙 돌며 한참을 망설였다. 하긴 어차피 굽는 건데 뭐 그리 다를까. 다리가 이끄는 가게로 들어갔다.


숯불에 구워야 제맛


나는 메뉴판을 받자마자 바칼라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칼라우. 그릴드. OK?" 종업원은 머리를 끄덕이며 주문을 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종업원이 묻는다. "바칼라우. 빅. 25유로. OK?"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만은 마음껏 쓰리라. 그깟 돈이 대수냐. 이윽고 요리가 나왔다. 2명이 먹어도 남을 정도로 충분히 많았다. 이래서 물어봤구나. 어차피 점심도 대충 때웠고, 숙소 가면서 칼로리 소비하면 되니까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계란이 저렇게 작았나 싶다


푸드파이터가 된 기분이었다


내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했다. 일단 바칼라우 조금, 야채 조금 접시에 덜어 맛을 보았다. 이 정도 맛이면 다 먹을 수 있지. 자신감이 붙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바칼라우와 사투를 벌였다. 살을 덜어내고, 뼈를 걷어내고, 껍질을 발라냈다. 흥건한 올리브 오일 밑으로 접시 바닥이 보인다. 유물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때 발굴단 기분이 이랬을까. 감자는 입에 대지도 못했지만, 바칼라우는 모두 내 배 속으로 들어갔다. 도전 성공.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 


구름이 그림이다
Dancing in the moonlight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밤이 되니까 춥다. 버스 타고 가자.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온다. 밥도 많이 먹었으니 다음 정류장까지만 걸어가자. 그렇게 한 정거장, 두 정거장 걷다 보니 숙소가 코앞이다. 바칼라우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 목이 마르다. 환타 오렌지맛 하나 사 들고 숙소로 들어간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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