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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Oct 16. 2017

오렌지맛 환타

포르투에 눌러앉은 일주일 #7

나는 지금 포르투 해변가 어느 편의점에 서서 1.5유로짜리 오렌지맛 환타를 마시고 있다. 


엄마는 목이 마를 때면 환타를 찾았다. 다른 맛 말고 꼭 오렌지 맛을. 그래서 나는 환타가 오렌지 맛만 있는 줄 알았다. 사실 나는 탄산음료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탄산이 올라오는 그 거북한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달까. 덕분에 내 어린 시절을 주황색으로 물들인 환타도 내 인생에서 한 동안 퇴장했었다. 그 자리는 슬슬 넘어가는 이온음료가 대신했다. 


그러다 환타가 다시 등장한 건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앞에 '비야'라는 부대찌개 집이 있었다. 부대찌개를 먹고 나면 후식으로 꼭 병에 들은 환타를 줬다. 여러 가지 맛이 있었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늘 파인애플맛 환타를 시켜먹었다. 그렇게 몇 년을 환타와 함께했다. 그 부대찌개 집에서 먹은 것 말고 편의점에 들어가 캔으로 사 먹은 적은 없었다. 커피도 있고 술도 있는데 굳이 마실 필요가 없었다. 


또 몇 년이 흘러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 가이드가 걸어가다가 뜬금없이 환타 이야기를 꺼냈다. 이 동네 환타가 그렇게 맛있다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다르다고. 그래서 자기는 여기서 꼭 오렌지맛 환타를 마신다고. 가이드는 꽤나 열정적인 표정으로 이야기했지만, 나는 뭐 얼마나 다르겠냐며 흘려 들었다. 이 나이 먹어서 무슨 탄산음료야. 맥주나 커피 마셔야지. 


그리고 다시 포르투. 바칼라우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맥주만 마셔서 그런가 목이 마르다. 물을 살까. 아니다. 조금 늦었지만 커피를 마시자. 포르투까지 왔는데 커피를 마셔야지.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카페가 안 보인다. 계획 변경. 음료수를 사자. 문득 오렌지맛 환타 생각이 난다. 어릴 적 쇼핑 갔다 돌아오는 길에 목이 마르다며 500ml 페트병에 들은 환타를 벌컥벌컥 들이켜던 엄마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 오늘은 환타다.


카페 말고 슈퍼를 찾기 시작했다. 꽤 큰 슈퍼에 들어갔는데 없다. 맥도날드가 보인다. 핫 플레이스가 따로 없다. 밤 10시에 줄을 무슨 가로수길 에머이처럼 섰다. 조금 더 걷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작은 편의점. 매대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환타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오렌지 맛. 주머니에서 1.5유로를 급하게 꺼내어 환타를 건네받고 그 자리에 서서 캔을 땄다. 한 모금 마셨다.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그대로 캔을 꽉 붙잡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느새 텅 비었다. 


그나저나 엄마가 오렌지맛 환타 참 좋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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