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스웨덴까지 온 걸까. 일이 재미없어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설명하자면 길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2014년 여름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경영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이나 타보자고 준비한 제일기획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덜컥 대상을 받았다. 이는 마치 취업하라는 계시 같았다. 공부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취업은 분명 시기가 있으니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방학이 끝나자마자 광고 회사 공채에 지원했다. 결과는 합격. 여전히 공부는 하고 싶었다. 다만 뭘 공부할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회사를 1년 다니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2015년 6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이하 칸 광고제)에 참가했다. 오프닝 파티에서 팝업 에이전시 친구들을 만났다. 팝업 에이전시는 하이퍼 아일랜드 졸업생이 모여 차린 회사로 설립 1년 만에 칸 광고제에 초청받아 워크숍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확고하고, 똑똑하고, 열정이 넘쳤다.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보다 어리거나 동갑내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친구들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데, 나는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시야를 해외로 넓혀야겠다고 다짐했다.
2015년 겨울, 일하는 게 너무 재미없었다. 이직을 해볼까 싶어서 모 회사에 자기반성 가득한 자기소개서에 이력서를 더해 보냈다. 제출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며칠 후 그 회사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메일이 왔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회사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는 내 문제였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해도 재미없을 거였다. 새해를 한 주 앞두고 회의 준비로 해외 광고 회사 사례를 찾고 있었다. 이들은 재미있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 뭐가 그렇게 다를까.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 읽었다. 점점 궁금해졌다. 이건 직접 보고 느껴야 알 수 있는 그런 문화 같은 것이었다. 가봐야겠다. 내 눈으로 봐야겠다. 해외로 나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팝업 에이전시 친구가 알려준 하이퍼 아일랜드 생각이 났다. 무작정 메일부터 보냈다. 답장을 주고받으며 궁금한 걸 물어봤다. 사실 망설였다. 가는 게 맞는 걸까. 더 쉽고 간단한 대안은 없을까. 속는 셈 치고 해외 광고 회사 사람들 인터뷰와 기사를 믿어볼까. 할 수 있을까. 가치 있는 투자일까. 그러다 일이 터졌다. 팀이 없어지고, 몇 명이 나갔다. 하던 일 몇 개가 사라졌고, 직무도 바뀌었다. 나는 재미있고, 좋아하고, 잘 배워서, 오래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회사에 들어왔지 이런 걸 겪으려고 들어온 게 아니었다. 덕분에 확신이 섰다. 나가자. 여기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해외는 어떻게 다른지 구경이나 해보자. 여름 내내 영어 면접, 포트폴리오, 이력서를 준비했고, 가을에 면접을 봤다.
왜 하이퍼 아일랜드였을까. 나는 광고 회사에서 주로 생각하는 일을 했다. 나는 입으로만 떠들고, 만드는 건 늘 프로덕션 몫이었다. 지켜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금세 무기력해졌다. 재미있는 일도 재미없게 하고 있었다. 개발자 선배들은 달랐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드는 사람이었다. 부러웠다. 나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간을 쪼개 혼자 책도 보고, 강의도 듣고, 스터디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문득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이 생각났다. 그도 기타 코드 하나 제대로 못 잡을 때가 있었다. 도무지 밴드를 할 수준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를 밴드 리더라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다 덜컥 공연이 잡혔다. 그는 다급하게 멤버들을 모아 펜션에 모여 합숙 훈련을 시작했다.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그곳에 처박혀 계속 연습했다. 언니네 이발관은 그렇게 탄생했다. 나는 이석원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코드 한 줄 제대로 읽을 줄 모르지만 일단 스스로를 개발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기저기에도 떠벌리고 다녔다. 이제 어딘가에 처박혀서 제대로 만들 때까지 연습할 차례였다.
하이퍼 아일랜드는 그 연습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 같았다. 학교지만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았고, 디자인 스쿨이지만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열린 마음만 있으면 충분했다. 전체 과정은 배우면서 만들고, 만들면서 배우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모르는 분야여도 직접 부딪히면서 연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스포티파이, 이케아, H&M 등의 회사들과 실제 프로젝트도 한다. 학생들은 실무를 체험하면서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석원과 멤버들이 연습하던 펜션에 가끔 공연도 할 수 있는 작은 무대도 있는 셈이었다.
학교가 미국, 영국이 아니라 스웨덴에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스웨덴은 H&M과 아크네 스튜디오, 스포티파이와 마인크래프트, 이케아와 볼보의 나라다. 제조업, 디지털, 패션, 디자인이 절묘하게 섞여 기존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듣기만 해도 쿨하지 않은가.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 제품을 누가 누구를 위해 만들고 있는지. 어떤 문화적 맥락이 숨어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기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수면 아래 이야기들. 그 공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가볍게 시작한 글이 비장해졌다. 한 문장을 쓰는데 몇 날 며칠 밤이 걸렸다. 덕분에 가출이유서가 출사표가 돼버렸다. 기왕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지어보자. 전혀 다른 누군가를 만나, 전혀 다른 무언가를 하다 보면 전혀 다른 고민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고민은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스톡홀름 유학 5주 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며,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새로운 나도 천천히 오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씩 변하는 게 느껴진다. 이제 10개월 남았다. 어떻게 될까. 어떤 사람이 올까. 감이 안 온다. 일단 기다려보자. 분명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타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