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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Oct 16. 2017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웨덴 디자인 스쿨 하이퍼 아일랜드 유학 이야기 #4

What do you think? 우리 반 담당 프로그램 매니저 크리스토퍼 로빈이 자주 하는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한 게 생기면 찾아보거나 생각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묻는다.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그 대상이 선생님이나 멘토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이퍼 아일랜드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궁금한 게 생기면 담임 선생님에 해당하는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물어본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 워크숍을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인턴십은 언제부터 준비하면 되는지, 어떤 툴을 배워야 하는지 등. 그는 친절한 답변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처음에는 황당했다. 내가 그걸 알면 물어보겠냐고 이 양반아. 나뿐만 아니라 같은 과정에 있는 친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학생들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묻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어차피 되물을 텐데 물어봐서 뭐하겠냐며. 누군가 학생들에게 질문하면 모른다는 대답 대신 우스갯소리로 그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물었다. 질문이 아니라 답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대체 왜 질문을 하는 나에게 되묻는 걸까. 하긴, 생각해보면 그렇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 잘하고 있다면 계속 그렇게 하면 되고, 못하고 있다면 개선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다. 워크숍 역시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도 안 해봤기 때문에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해보고 영 아니면 다른 워크숍을 찾으면 된다. 


인턴십 역시 내가 준비하기 나름이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안정적이겠지만,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한두 달 전에 준비하면 불안하지만,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적극적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툴 역시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스케치, 프레이머, 인비전, XD 등 잘 알고 있다. 다만 무엇에 집중할지 결정을 못 내린 거다. 그리고 정말 조언을 구하려면 그가 아니라  업계 실무자에게 물어보는 게 더 정확했을 것이다. 


실실 웃으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 살인마 (나이 미상)


생각해보면 크리스토퍼 로빈의 질문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같다.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하면서 학생 스스로 생각하면서 답을 찾게 만든다. 물론 당장은 답답하다. 하지만 이 선문답 같은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의 논리를 만들게 된다. 그 결과, 정해진 답이 아니라 자기만의 답을 찾게 된다. 


일방적인 수업과 토론 수업 중 무엇이 더 기억에 남는지 생각해보자. 교수님의 일방적인 수업의 경우 당장이야 편하고 모든 걸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시험을 준비하면 처음 보는 단어로 가득하다. 결국, 교과서 첫 장부터 다시 읽으면서 이해해야 한다. 


토론 수업은 조금 다르다. 교수님은 수업과 관련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은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답을 내놓는다. 그러다가 수업이 끝난다. 뭐한 거지. 수업하긴 한 건가. 이 정도면 나도 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험공부를 시작한다. 왠지 잘 모르겠는데, 이해가 잘 된다. 이상하다. 배운 것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이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논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문답법의 힘이다. 하이퍼 아일랜드가 추구하는 교육 방식과도 일치한다.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고, 자기가 무엇을 알고, 어떻게 해야 개선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자기가 겪은 내용에서 배운다는 점이 셀프 리더십(Self leadership), 자기반성(reflection), 경험에 의한 학습(Experiential learning)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이퍼 아일랜드 샵에서 진짜로 파는 가방


크리스토퍼 로빈이 학사 일정, 출입문 번호, 학교 주소를 묻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는 건 아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은 제대로 답을 한다. 그러나 평가, 의사 결정, 선호, 진로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백 퍼센트 다음과 같이 되물을 것이다. What do you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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